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로그인] 망각 협정  

딸기21 2015. 11. 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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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과거를 고치자고 하고 아베 신조는 과거를 잊자고 한다. 지나간 일들을 싹 지우고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관계로 바꾸는 게 가능할까?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 그렇게 과거를 바꾸는 게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사람의 기억, 더군다나 집단의 기억을 바꾸는 일인데 말이다. 


정치인들이 집단기억상실증을 만들어내려고 협약까지 맺은 사례도 있기는 했다. 1977년 스페인에서 ‘사면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좌우협정이 그런 예다. 이 사회적 협정은 엘 팍토 델 올비도, ‘망각협정’이라 불린다. 장기집권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1975년 죽은 뒤 스페인 정치권은 과거를 잊자는 약속을 했다. 민주주의로 평화롭게 이행해가기 위해서라는 것이 명분이었다. 과거는 잊고 미래에 집중하자, 많이 들어본 소리다. 


프랑코 시절 40만명이 고문·살해를 당했고 교도소와 강제 노동수용소에 끌려갔다. 잊자고 약속한들 그 기억이 없어질까. 프랑코의 범죄들뿐 아니라 과거를 덮으려던 망각의 협정까지 역사에 새겨졌다. 프랑코 정권에 희생된 이의 손자인 에밀리오 실바-바레라라는 사회학자는 2000년 ‘역사적 기억의 회복을 위한 협회’를 만들고 과거를 되새기는 작업에 들어갔다. 작가 하비에르 세르카스는 <살라미나의 병사들>이라는 소설을 통해 내전 막바지 집단 총살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을 그렸다. 


그렇게 개인사가 민족사와 만나고, 예술이 역사를 복원한다. 2006년 여론조사에서는 스페인인 3분의 2가 내전 참상과 프랑코 시절의 문제들을 재조사해야 한다고 답했다. 인권재판관으로 유명한 발타사르 가르손 판사는 2010년 사면법을 독재정권 범죄자들의 방패로 삼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우익들은 “프랑코 시대는 이미 역사가 됐으므로 법으로 판단할 수 없다”며 맞섰다. 그러나 2012년과 2013년에는 유엔까지 나서서 스페인에 사면법을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정치집단들의 합의로 만든 협약조차 기억을 가둬둘 수는 없었다.


High Society - Rene Magritte


과거를 지우거나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시간의 연속성을 모르는 백치들이다. 모래더미에 머리를 파묻는 닭들이다. 시간은 이어져 흐른다. 영국 좌파 지식인 타리크 알리는 “역사는 현재다”라고 단언한다. 그는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과의 대담에서 그리스 내전을 거론하며 이렇게 말한다. “사실상 모든 가족이 연루된, 잔인하고 지독한 전쟁이었어요. 이런 사건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남아 있죠. 사람들이 기억하니까요.”

 

역사에는 여러 층위가 있고, 교과서는 그 표층일 뿐이다. 그걸로 가치관이 통일될 리도 없거니와 삶 속에 새겨지는 역사는 교과서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나는 국정교과서로 ‘가짜 김일성’과 88서울올림픽 유치의 위업에 대해 배우고 자랐지만 나에게 와닿은 ‘역사적 경험’은 교실에서 배웠던 것들과는 결이 다르다. 할머니에게서 한국전쟁 때 납북된 할아버지 얘기를 들었던 일, 라디오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을 들었던 날 놀라워하던 아버지의 얼굴, 올림픽에 맞춘 서머타임으로 9시까지 날이 환하던 기억, 강경대군의 죽음을 알리던 대학생의 목소리, 남북 정상이 만난 날 도라산 전망대에서 북쪽을 바라봤던 일, 그런 것들이다. 책에 적힌 역사는 그런 파편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공동체의 기억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체적 감각으로 받아들인 모든 것들이 합쳐져 만들어지고 이어진다.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잊지 말아달라”고 외친다. 역사를 지우려는 자들은 위세가 하늘을 찌르고, 잊지 말라는 피해자들의 호소는 애절하다. 기억의 ‘독재’다. 억압을 되풀이하는 순간 과거는 ‘괴물’이 되어 현재와 미래를 잡아먹는다. 하지만 끝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괴물 같은 이 순간마저 기록될 것이므로. 힘있는 이들의 목소리만 적힌 역사책보다 더 오래 전승되는 건 필부필부가 겪고 느끼고 기억 속에 새겨넣은 것들이므로. 망각협정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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