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만한전석에서 엘리제궁 '두끼 식사'까지, 국가 만찬의 역사

딸기21 2015. 12. 1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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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는 말이 있지요. 고대 중국의 하(夏)나라 걸왕(桀王), 은(殷)나라 주왕(紂王), 주(周)나라 유왕(幽王)은 모두 폭정과 방탕한 연회로 유명합니다. 걸왕은 매희에게, 주왕은 달기에게, 유왕은 포사에게 빠져서 술잔치를 벌이다가 나라가 망했다는 스토리들입니다. 매희, 달기, 포사는 모두 당대의 미녀들이고요. 고대의 중국 왕들이 술로 못을 만들고 나무에 고기를 매달아 흥청망청 먹고 마셨다고 해서 주지육림이라는 말이 나왔다지요.


너무나 먼 옛날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지만, 황제와 왕과 대통령들의 만찬은 늘 호기심을 부추깁니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가 오가고, 외교와 밀담이 이뤄지는 것이니까요. ‘정상들의 만찬’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면 당대의 사회상과 단면도 보입니다. 

만주족과 한족이 모이다, 강희제의 만한전석

청나라는 한족이 대부분이던 중국 땅에 만주족이 들어와 세운 나라입니다. 지배층인 만주족은 한족을 견제하면서도 끌어안아야 했습니다. 이런 정치적 상황이 담긴 만찬장이 있었습니다. 강희제가 만든 만한전석(滿)입니다. 말 그대로, 만주족과 한족이 함께 하는 자리입니다.

원래 만석은 만주족의 연회, 한석은 한족의 연회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청나라 초창기에는 연회도 만석과 한석이 구분돼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강희제가 예순 살을 맞아 특별한 연회를 열었습니다. 중국 곳곳에서 65살이 넘은 노인 2800명을 황궁으로 초청한 겁니다. 이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면서 강희제는 만석과 한석을 한꺼번에 차리게 했습니다. 그것이 만한전석입니다.

만한전석은 하루에 2번, 사흘 동안 이어진다고 합니다. 제비집, 상어지느러미. 해삼, 전복, 곰발바닥, 사슴힘줄 같은 산해진미가 올라왔다고 합니다. 


만한전석 상차림의 예. <출처: timefortaiwan.tw>


현대 중국의 국가연회는 어떨까요. 중국 요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게 바로 국가연회일 것 같지만 사실 공산당 집권 뒤 중국의 국가연회는 그리 화려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공산정권 수립 뒤 처음 국가연회가 열린 것은 국경절인 1949년 10월1일이었습니다. 연회를 총괄한 사람은 저우언라이() 총리였습니다. 저우언라이 총리는 화이양() 요리를 국가연회의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화이양 요리는 중국 4대 요리 중의 하나인데 해산물을 위주로 하며,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특징입니다. 이 첫 국가연회에는 익힌 요리 6가지와 불도장() 탕이 나왔습니다. 

런데 1960년대에 마오쩌둥() 주석이 국가연회가 너무 호사스럽다고 지적하면서, 외국 귀빈이 와도 요리 4종, 탕 한 가지를 내놓는 것으로 메뉴를 줄였다고 합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메뉴를 더 줄여서 요리 가짓수가 3가지, 2가지로 줄었습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요. 그래서 시 주석 집권 뒤에는 더욱 간소해졌습니다. 그래서 2015년 9월 전승절 국가연회도 검소하게 치렀습니다.

네로 황제의 회전식 연회장

이번엔 서쪽으로 옮겨 가 보겠습니다. 2009년 9월 고고학자들이 로마 제국의 악명 높은 황제 네로의 만찬장을 발굴했습니다. 로마의 팔라티노 언덕에 세워진 서기 1세기의 황금궁전 ‘도무스 아우레아(Domus Aurea)’ 유적지에서 발견된 만찬장, 이름 하여 ‘코에나티오 로툰다(coenatio rotunda)’는 놀랍게도 회전식 연회장이었습니다. 이 만찬장에 대해서는 당대의 역사학자 수에토니우스 등이 기록으로 남겨놨지만 실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0년 가까이 지나서였던 겁니다.

수에토니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주연회장은 둥근 방으로, 천체의 회전(고대인들은 하늘이 돈다고 여겼으니까요)을 본떠 돌아가게 돼 있다”고 합니다. 만찬장의 천장은 상아로 장식돼 있고, 꽃이 비처럼 벽을 타고 내려오며, 숨겨진 분무장치에서 향수가 뿜어져 나왔답니다. 얼마나 호사스러웠을까요. 방 전체가 돌아가는 방식이었다니, 당시 로마 공학기술의 총아였다고 봐도 되겠지요. 이 만찬장에서 아마도 네로는 포패아 사비나와 함께 파티를 벌였을 터이고요. 

하지만 네로의 말로는, 알다시피 그리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이거 아시나요? 네로는 결혼기념일에 황후를 처형했고, 다시 결혼기념일에 자살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네로는 서기 53년 6월 9일 옥타비아라는 여성을 황후로 맞았습니다. 그러나 네로는 이내 옥타비아에게 싫증을 냈고, 이 여자 저 여자와 바람을 피우다가 폼페이 태생인 포패아에게 폭 빠졌습니다. 포패아가 아기를 갖자 네로는 옥타비아를 아예 쫓아내고 포패아를 황후로 맞았습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62년 6월 9일 옥타비아를 처형했습니다. 악행을 일삼던 네로는 결국 쫓겨났고, 옥타비아가 숨지고 6년 뒤인 68년 6월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답니다. 

페르시아 영광 되살리려던 파흘라비의 연회 

고대 서방에 로마 제국이 있었다면 동방에는 페르시아 제국이 있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파르시 말을 쓰는 사람들’이라 해서 페르시아라 불렀다는데, 오늘날의 이란을 가리키지요. 

이란은 고대 제국이었지만 오랜 세월 아랍, 몽골, 투르크 등의 지배를 받다가 현대에 들어와 다시 대국으로 우뚝 섭니다. 그 주역은 파흘라비(팔레비) 왕조였습니다. 이란의 왕은 ‘샤’라고 부릅니다. 1971년 10월 12일부터 16일까지 닷새 동안 파흘라비 왕조의 모함마드 레자 샤는 ‘페르시아 제국 창건 2500주년’을 기념하는 거창한 연회를 열었습니다. 

레자 샤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립니다. 한쪽에서는 이란을 근대화, 서구화한 인물이라 칭송합니다. 반대편에서는 미국, 영국을 등에 업고 국민을 억누르면서 공포정치를 자행한 독재자라 비난합니다. 어찌 됐든 확실한 건 그가 자국민에게 쫓겨났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을 테러나 되는 듯 백안시합니다만, 아야툴라 호메이니 한 사람의 선동에 의한 것이 아닌 민중혁명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1971년 이란 페르세폴리스에서 열린 ‘페르시아 제국 건설 2500주년 기념 연회’. <출처: iranpoliticsclub.net>

레자 샤는 몇 년 뒤 쫓겨나게 될 줄도 모르고, 키루스(Cyrus) 대제가 제국을 세운 지 25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온 세계 힘깨나 쓰는 정상들을 초빙해 연회를 열었습니다. 이 이벤트를 기획하는 데에만 1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연회장은 오늘날의 시라즈 부근에 있는 고대 도시 페르세폴리스였습니다. 연회를 위해 페르세폴리스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까지 깔았습니다. 또 황량한 유적 주변에 손님들을 모시기 위해 천막 도시까지 만들었다니, 가뜩이나 시달리고 배곯아온 국민들이 좋아라 했을 리 없지요. 

주연회장인 초대형 천막은 가로 24m에 세로 68m 크기였습니다. 텐트 주변은 프랑스 등에서 가져온 꽃과 나무들로 이뤄진 정원이었습니다. 음식 준비도 프랑스 쪽에서 맡았고,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랑방이 직원들의 유니폼을 디자인했습니다. 공항서부터 연회장으로 손님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동원된 메르세데스벤츠 리무진 차량이 250대, 식기는 역시 프랑스산 리모주. 호사스러운 연회의 절정은 10월 14일의 갈라 디너였습니다. 파흘라비 왕실 가족 60명과 각국 정상들이 연회장을 메우고 1959년산 돔페리뇽 로제 와인으로 건배를 했습니다. 메뉴는 카스피해산 캐비어, 구운 공작 같은 진귀한 음식들과 유럽산 고급 와인들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 건설 2500주년 기념 연회 참석자들을 위해 준비된 천막도시. <출처: aryamehr.org>



연회에 초청받아 참석했던 이들의 면면도 화려합니다.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덴마크의 프레데리크9세 국왕 부부, ‘줄타기 외교’로 유명했던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과 무나 공주, 네팔의 마헨드라 국왕 부부, 노르웨이의 올라프 5세 국왕, 영국의 필립 공과 앤 공주, 스웨덴의 칼 구스타프 왕자 등등 중동과 아시아와 유럽의 왕족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왕족들뿐 아니라 현직 국가원수들도 페르세폴리스를 찾았습니다.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티토,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지성이었던 세네갈의 레오폴드 셍고르 대통령, 뒤에 사형당한 루마니아의 니콜라이 차우세스쿠 대통령, 이탈리아의 에밀리오 콜롬보 총리, 미국의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 등등입니다. ‘신발의 여왕’으로 유명한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 부인 이멜다도 참석했네요. 한국에선 누가 갔을까요? 김종필 총리가 갔답니다.

석유 팔아 번 돈을 그렇게 헛되이 써대던 파흘라비 왕조는 키루스 대제 흉내내기에 몰두하다가 결국 축출됐지요.

오바마가 시진핑에게 대접한 것은?

미국 대통령들은 중요한 외빈이 오면 백악관에서 국빈 만찬을 엽니다. 혹시나 만찬을 하면서 외교적 결례라든가 물의를 빚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엄격한 절차와 규정을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국무부의 의전담당관(The Chief of Protocol)과 백악관 집사장(The White House Chief Usher)이 국빈만찬을 준비합니다. 

손님들의 이름을 카드에 써서 자리에 비치하는데, 이것을 쓰는 사람도 정해져 있습니다. 백악관 공식 서예가(White House Chief Calligrapher)라 해야 할까요. 백악관 셰프와 페이스트리 셰프가 요리와 빵 종류를 나눠서 맡습니다. 

당초엔 대통령이 각료나 의회 지도부와 먹는 저녁을 통칭해 국가 만찬(state dinner)이라고 불렀는데, 19세기 후반부터 외국 국가수반을 접대하는 것을 가리키는 만찬으로 바뀌었습니다. 첫 국빈 만찬의 손님은 1874년 12월 12일 율리시즈 그랜트 대통령의 접대를 받은 하와이의 데이비드 칼라카우아 국왕이었습니다. 

최근의 미국 국빈만찬들 중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저녁식사를 한번 보지요. 2015년 9월 시 주석은 집권 뒤 처음으로 미국을 국빈 방문했습니다. 9월 25일에는 백악관에서 오바마가 주재하는 국빈만찬을 즐겼습니다.

2014년 1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 백악관 (whitehouse.gov)>


2015년 9월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가 국빈만찬에 앞서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부와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출처: 백악관 (whitehouse.gov)>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는 중국계 미국 디자이너 베라 왕의 검은 드레스를 입었고, 시 주석 부인 펑리위안은 자수가 수놓인 담청색 실크 드레스 차림이었습니다. 만찬이 열린 백악관 이스트룸에는 두 송이 장미가 수놓인 5m 길이의 실크 천막이 드리워졌습니다. 메뉴는 검은 송로버섯을 곁들인 수프, 백악관 정원에서 직접 기른 호박 에피타이저, 중국 저장()성 샤오싱()의 명주 소흥주(), 콜로라도산 양고기 구이 등이었다고 합니다. 

오바마와 시진핑이 함께 한 만찬장에는 또 누가 앉았을까요. 정보기술(IT) 업계의 거물들이었습니다. 시 주석과 동행한 중국 경제인들뿐 아니라 미국 정·재계 거물들, 전현직 관리 200명이 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헤드테이블에 두 정상과 나란히 앉은 사람은 상하이에 테마파크를 짓고 있는 월트디즈니 최고경영자 로버트 아이거, 애플의 팀 쿡,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등이었습니다. 저커버그의 중국계 부인 프리실라 챈은 당시 임신 중이었습니다. (11월 말에 아기를 낳은 뒤 이 젊은 거물 부부는 거의 전 재산을 기부하기로 하는 놀랍고 아름다운 결정을 내렸지요.) 

“중국에 고두를 했다” 영국의 ‘과잉 접대’ 소동

시 주석은 미국 국빈방문 다음 달인 2015년 10월 영국을 국빈방문했습니다. 영국 왕실 3대가 다 나와 시 주석을 맞았지요. 심지어 ‘지나친 접대’로 영국 안에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영국이 중국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과거 중국 황제 앞에서 사절들이 했던 것처럼 머리를 조아리는 고두()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이 때 시 주석을 위해 준비한 버킹엄궁 국빈 만찬에는 스코틀랜드 밸모럴에서 나온 사슴고기 요리와 영국산 와인이 나왔습니다. 사슴고기에는 그 비싸다는 송로버섯 소스를 얹었다지요. 그 외에도 넙치와 바닷가재 무스, 삶은 양배추, 감자, 셀러리, 초콜릿, 망고, 라임 등이 식탁에 올랐고 영국산, 포르투갈산, 프랑스산, 남아프리카공화국산 와인들이 차례로 선보였습니다. 

시진핑이 내놓은 ‘실크로드 만찬’

2014년 5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중국 상하이를 찾았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뭘 대접했을까요. 시내 중심가 푸동에서 만찬이 열렸는데, 4성급 호텔의 셰프들이 출동했습니다. 만찬 전날 리허설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합니다.

베테랑 요리사 9명이 푸틴과 하미드 카르자이 당시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330여 명의 손님들을 위해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요리는 전채 6종류, 탕 하나, 메인 5종류였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정상들이 모인 자리였고 만찬의 테마는 ‘실크로드’였다고 합니다.

<출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메뉴는 해산물과 송이버섯을 넣은 수프, 새우 볶음, 쇠고기 튀김, 가리비 튀김, 넙치 조림, 딤섬과 과일 등이었습니다. 중국 전통요리에 서양식 조리법을 결합시킨 퓨전 메뉴였다고 신화통신은 전했습니다. 다만 너무 화려하지 않게 한다는 시 주석의 방침에 따라 재료는 모두 현지 시장에서 파는 것들, 보통 사람들이 먹는 것들로 골랐다고 하네요. 그래서 상어지느러미 같은 값비싼 요리들은 빠졌습니다. 

과거 소련 지도자들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크렘린의 밥상에 대한 글들을 간혹 외국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블라디미르 레닌은 통 먹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질문을 받으면 “별로 똑똑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러시아 음식사가 빌럄 포클레브킨은 썼습니다. 레닌이 좋아한 것을 굳이 꼽자면 맛있는 맥주 정도였다고 합니다. 

요시프 스탈린은 좀 달랐나봅니다. 스탈린은 그루지야, 오늘날의 조지아 태생이죠. 기후가 좋고 풍요로운 지역이어서 요리의 전통도 화려한 곳입니다. 와인, 달콤한 말린 과일, 절인 치즈, 온갖 국물요리와 닭고기, 쇠고기, 양고기 요리가 두루 발달해 있으며 잔치 문화가 강한 지역입니다. 스탈린은 러시아 혁명과 시베리아 망명을 거치면서도 고향의 입맛을 잊지 않았고, 미식 취향이 있었습니다.

크렘린 만찬에 지렁이 출몰

스탈린 집권 시절 크렘린에도 물론 여러 손님이 왔습니다만, 특이하게도 서양식 식사법에 따라 코스 순서대로 음식을 내는 대신 전채부터 디저트까지 모두 한번에 냈다고 합니다. 들락날락 하면서 도청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게 아니었느냐는 분석도 있고요. 

스탈린이 선호한 메뉴는 신선한 양배추나 사워크라우트(양배추 절임)로 만든 시치(shchi)라는 수프와 유라시아 내륙 캅카스 전통음식인 양고기와 쌀과 토마토로 만든 하르초(kharcho) 스튜였습니다. 스탈린이 또 한 가지 좋아한 것은 보드카입니다. 10여 종의 보드카와 브랜디를 즐겼는데 그 중 키즐랴르라는 것은 스탈린이 개인적으로 윈스턴 처칠에게 선물까지 했다고 합니다. 

20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건립 300주년 기념 연회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 <사진: 크렘린(kremlin.ru)>

니키타 흐루셰프는 스탈린의 신화를 깨부수기 위해 앞장섰던 인물이었고, 먹는 문제에서도 스탈린의 취향을 비판했습니다. 멋진 요리보다는 쇠고기를 좋아한 ‘고기마니아’였던 모양입니다. 흐루셰프의 요리사였던 안나 디슈칸트에 따르면 버섯과 함께 조리한 쇠고기, 자두를 넣은 쇠고기 요리, 안심 같은 것들을 즐겼습니다. 소련의 유일한 ‘대통령’이자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고칼로리 음식을 즐기지 않았고, 연회 때에도 기름진 것을 피했다네요.

그럼 푸틴 대통령은 연회에 무엇을 내놓을까요. 크렘린의 국빈만찬도 검은 정장, 화려한 자기 그릇, 진수성찬으로 채워집니다. 푸틴의 만찬에 얽힌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2010년 10월 크리스티안 불프 당시 독일 대통령이 크렘린에 초대받아 갔는데, 만찬 식탁의 샐러드에서 지렁이가 나온 겁니다. 친환경 유기농 채소로 만든 샐러드였나 봅니다. 

만찬 두 번 먹은 올랑드

2014년 6월, 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 기념식이 프랑스에서 열렸습니다. 2차 대전 때에는 독일에 맞서 미국 프랑스 러시아(소련) 등이 동서 진영이 모두 손을 잡았기 때문에 이 기념식에도 미국과 러시아 대통령이 모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시기가 묘했습니다. 프랑스는 2011년 러시아에 미스트랄급 상륙함 2척을 판매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2014년 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면서 서방과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미국이 프랑스를 향해 상륙함 판매를 중단하라고 압박한 것이죠. 프랑스는 난감한 처지가 됐습니다.

그 와중에 불거진 것이 ‘두 번 만찬’ 해프닝입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6월 5일 만찬을 두 번 했습니다. 오바마, 푸틴과 각각 따로 만나 저녁을 먹었던 겁니다. 먼저 올랑드는 파리 시내 레스토랑에서 오바마와 2시간 동안 ‘비공식적인 저녁식사’를 하며 우크라이나 사태와 시리아 문제 등을 논의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는 러시아에 상륙함을 팔겠다는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올랑드는 오바마와 식사를 한 뒤 엘리제궁에서 푸틴과 다시 해산물로 잘 차려진 ‘노르딕(북유럽) 메뉴’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두 번 모두, 올랑드에게 그리 맛있고 흔쾌한 식사 자리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참고문헌

경향신문, “사흘 동안 180개 요리가 나오는 잔칫상 만한전석” (2015.9.22.)
경향신문, “중국 요리의 요체는 불 기술과 칼 솜씨” (2015.10.7.)
BBC, “Nero's rotating dining room discovered” (2009.9.30.)
경향신문, “로마 황제 네로와 황후 옥타비아의 비극” (2010.6.08.)
AP, “State dinner: All about big business, and bringing Mom” (2015.9.25.)
뉴시스, “오바마-시진핑, 국빈만찬서 양국 우호관계 강조” (2015.9.26.)
가디언, “Kowtowing to China’s despots is morally wrong and makes no economic sense” (2015.10.18.)
연합뉴스, “시진핑 국빈만찬 메뉴는 사슴고기와 영국산 와인“ (2015.10.21.)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What Xi gave Putin for dinner” (2014.5.21.)
러시아&인디아리포트, “The Kremlin menu through the Soviet days” (2014.5.29.)
슈피겔, “In Honor of the German President: Earthworm Makes Appearance at Kremlin State Dinner” (2010.10.14.)
스푸트니크뉴스(리아노보스티), “Hollande dines in Elysee Palace with Putin and in private with Obama“ (20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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