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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마이웨이’ 언론인 오찬···세계 정상과 기자의 만남은?

딸기21 2016. 4. 2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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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46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오찬 간담회를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오늘 함께 하신 이 자리가 여러 문제에 대해서 소통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남은 임기동안 “이번 선거에 나타난 민의를 잘 반영해 변화와 개혁을 이끌면서 각계각층과의 협력, 그리고 소통을 잘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열린 대통령과 언론인들의 만남은 자유분방하게 토론이 오가는 자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독재자가 아니라면, 선거로 뽑힌 각국 정상들 누구든 ‘소통’을 강조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널리스트들과의 만남은 수시로 이뤄지고요. 그 중에서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출입기자단의 연례 만찬은 흥미진진한 화제들을 낳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백악관 기자단 만찬은 1920년부터 매년 열리는 워싱턴 언론계의 최대 행사입니다. 이날 대통령은 열심히 준비한 농담들을 선보이면서 유머감각을 뽐내곤 합니다. 대부분은 ‘뼈 있는’ 농담이지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이 만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을 비꼬면서 “요즘은 아무에게나 주는 상이지요”라고 했습니다. 오바마는 2009년 집권 첫 해에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한 일이 없는데 왜 상을 주느냐는 비판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오바마가 ‘셀프디스’를 하면서 은근슬쩍 푸틴을 비꼰 것이지요.


전임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유머도 유명합니다. 그는 2006년 만찬에서 “오늘 밤 기분이 좋습니다, 잘리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습니다. 이 행사에서 부시는 자신과 똑같이 분장한 코미디언 스티브 브리지스와 나란히 서서 농담을 주고받았습니다. 이 행사 전에, 딕 체니 당시 부통령이 사냥을 하다가 변호사 해리 위팅턴에게 오발을 해 중상을 입힌 사고가 있었습니다. 총기 규제 논란이 시끄러운데 총을 들고 사냥을 나간 체니를 놓고 말이 많았습니다. 부시는 백악관 만찬에서 “체니 부통령이 나를 지지하는 단 하나뿐인 변호사를 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올해 백악관 기자단 만찬은 오는 30일 열립니다. 공화당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최근 의회전문지 더힐 인터뷰에서 올해 행사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내가 좋은 시간을 보냈어도 언론은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고 쓰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사실 5년 전인 2011년 행사에서 오바마가 트럼프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오바마는 대선 출마설이 나돌던 트럼프를 향해 “트럼프가 백악관에 변화를 가져오겠다는데 뭔지 봅시다”라면서 ‘트럼프 백악관 리조트·콘도’라 쓰인 백악관 모양의 호텔 합성사진을 올렸습니다. 이번 행사에 불참하겠다고 한 것은, 그 때 그 일을 마음에 둔 트럼프의 ‘뒤끝’으로 해석됩니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신조 총리는 2000년대 중반 이미 한 차례 집권한 적 있습니다. 추상적이고 애매한 어법 때문에 눌변 소리를 들어온 아베는 2006년 ‘독단적인 회견’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질의응답을 하기로 한 기자회견에서 대부분을 자기 발언으로 채우고 정작 질문은 피했던 것이죠.

그 해 12월 아베는 내각 출입기자단과 만나 다음 해의 국정 운영에 관해 설명하는 회견을 했습니다. 그러나 당초 예정돼 있었던 질문과 응답 시간은 없었습니다. 정해진 회견 시간 20분 중 19분 동안 아베 총리 혼자서 준비해온 원고를 읽었고요. 남은 1분 동안 사전에 예정돼 있던 질문 2개를 받은 뒤 “시간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회견을 끝내버렸습니다.

‘차르’로 불리는 러시아의 푸틴도 언론 친화적인 지도자는 아닙니다. 주로 대국민 담화 스타일의 연설을 국영방송들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푸틴도 국민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연출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미리 짜인 극본대로 진행되는 행사이지만요.

지난 14일 푸틴은 ‘국민과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한 12살 소녀가 푸틴에게 ‘터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물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터키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앙숙지간입니다. 이 소녀의 물음 역시 ‘돌발 질문’은 아니었습니다.



‘국민과의 대화’에 출연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러시아 대통령공보실


‘국민과의 대화’는 푸틴이 집권 2년차인 2001년부터 매년 진행해 온 생방송 프로그램입니다. 전국의 시청자가 전화·영상채팅·소셜미디어로 궁금한 것을 물으면 모스크바의 스튜디오에 있는 푸틴이 실시간으로 답하는 형식입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날 푸틴은 약 3시간40분에 걸쳐 경제·외교정책과 해외 정상들에 대한 의견을 망라한 80여개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그러나 외신들은 “방송 이틀 전 모스크바 주변 호텔에서 리허설을 하면서 참석자들은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 미리 지시를 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의 국가주석이 미국 대통령처럼 기자들과 농담을 나누며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게 될 날이 올까요? 여전히 중국 언론들은 관영 일색이고, 정부와 중국공산당의 통제에 따라 움직입니다. 하지만 근래에 변화 조짐이 엿보입니다. 지난달 1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3층 중앙홀에 의자 950개가 놓였습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아니지만,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식 후 이곳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날 홀은 의자 수보다 더 많은 수의 기자들로 채워졌습니다. 리 총리는 주식 파동, 홍콩 소요사태 등 민감한 사건에 대해서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견해를 밝혔습니다. 회견은 2시간 정도 진행됐는데, 질의응답을 할 때마다 매번 100명 가까운 기자들이 손을 들었고, 주목을 끌려고 신문을 흔드는 기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푸잉(傅瑩) 전인대 대변인이 “질문이 많은 줄 알지만 이미 예정된 시간이 지났다”고 했는데, 마이크를 다시 잡은 리 총리가 “가운데 여기자가 ‘농민’이라는 글자를 들고 있어 지나칠 수가 없다”며 농민신문사 기자로부터 추가 질문을 받았습니다. 적어도 ‘각본대로’ 진행되는 박 대통령의 연례 기자회견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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