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41

50. 1999년 코소보 위기

50. 1999년 코소보 위기 1966년 티토는 내 세르비아 공화국 안에 위치한 코소보 자치주에 특권을 주어 유고슬라비아 연방 차원에서 공화국들과 동등한 투표권을 갖도록 해줬습니다. 코소보의 자치권이 강화되자,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자치주 정부 참여가 크게 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자치주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세르비아계 정부의 통치를 받으며 차별을 겪어야 했거든요. 상황이 바뀌자 자치주의 새로운 공산당 정부를 장악한 알바니아계는 보복 차원에서 ‘소수민족’이 된 세르비아계에 대한 역차별 조치에 들어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치주를 세르비아와 대등한 별도의 공화국으로 승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티토 사후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되던 유고슬라비아 연방 지도부는 “코소보 자치주의 공화국 승격..

오라두르 쉬르 글란, 진정한 ‘사과’ 보여준 독일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오라두르 쉬르 글란은 프랑스 중서부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죽음의 마을’로 남아 있습니다. 평범한 시골 소읍이던 이 곳에서 참상이 벌어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6월. 당시 유럽 전선의 판세를 바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6월 6일 이뤄졌고, 나흘 뒤인 6월 10일 나치 점령군이 레지스탕스(저항) 운동 세력에게 보복한다며 이 마을에서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로베르 에브라(88)는 당시 19세였습니다. 에브라는 지금도 그 날의 참상을 잊지 못합니다. “군인들이 여성들과 아이들을 교회에 몰아넣고 문을 잠갔고, 남자들은 따로 끌고가 한 헛간에 밀어넣었다. 독일군은 독가스를 살포하고 불을 질렀으며 기관총으로 주민들을 사살했다.” 학살에서 살아..

시리아 화학무기 대량살상, '게임체인저' 되나

지난 4월말 시리아 반정부군이 정부군 측의 화학무기 사용 의혹을 제기했을 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것이 확실하다면 미국 뿐 아니라 국제사회 모두에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극도로 경계해온 대량살상무기(WMD) 사용이라는 ‘금지선(red-line)’을 넘는 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2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부근에서 화학무기로 인해 수백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시리아 사태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시리아 위기의 진정한 ‘게임 체인저’가 되는 셈이다. 사상자 수는 엇갈리고 있지만, 현지 구호단체들과 반정부군 측은 650~13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하고 있다.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분명..

이집트 유혈사태, 외교협상이 실패한 이유

지난달 3일 이집트 군부가 ‘48시간의 최후통첩’ 뒤 무슬림형제단 소속의 모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전격 축출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군부 쿠데타인 이 사건을 미국은 ‘쿠데타’로 규정하길 꺼렸습니다. 지난 14일부터 며칠 째 계속되고 있는 이집트의 유혈사태는 이집트 군부(현 정부)와 무슬림형제단 간의 정치적 타협을 중재하는 데 실패한 미국의 ‘외교적 실패’라는 비난이 빗발쳤습니다. 미국은 왜 실패했으며, 이집트 정국을 둘러싸고 ‘막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17일 이집트 쿠데타 이후 벌어진 막후의 외교협상을 되짚어보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유럽연합 이집트 특사인 스페인 외교관 베르나르디노 레온과 미국의 윌리엄 번스 국무부 부장관이 2주 동안 수차례 이집트를 ..

소수민족, 종교 탄압에 '인종청소'까지... 미얀마 '버마족만을 위한 민주화'인가

얼마전 미얀마 중부 라카인 주정부가 무슬림 주민들을 대상으로 아이를 2명까지만 갖게 하는 선별적 산아제한을 하겠다고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라카인 주 정부는 방글라데시와 인접한 국경지대 무슬림인 로힝자족 2개 마을에 국한되는 조치라고 밝혔다. 그 대상지역인 마웅다우와 부티다웅은 주민 95%가 무슬림인 곳이었다. 종교에 따른 산아제한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다. 주 정부는 ‘종교 간 긴장을 줄이기 위해’ 내놓은 조치라고 주장했다. 로힝자의 출산율이 높아 인구가 급증하면서 다른 주민들이 불안해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뭐라든 이 조치는 나치 같은 인종주의자들의 선별적 산아제한 같은 우생학적 조치를 연상케 한다. 주 정부는 ‘종교 간 긴장’을 운운했지만 실제로는 소수민족인 로힝자에 대한 인종주의적 차별..

버마에서 '인종청소'가...

지난달 말 버마 중부의 소도시 메익틸라에서 어린 아이들을 포함해 무슬림 주민들 40여명이 ‘조직적으로’ 살해됐습니다. 범인은 무슬림이 상권을 장악한 데에 불만을 품은 불교도 주민들이었습니다. 버마 민주화의 그늘, 종족-종교 갈등 그런데 경찰은 무슬림 살해극을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으며, 살해 과정을 비디오카메라로 찍기만 했습니다. 무슬림들은 “정부가 학살을 방조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당국은 묵살했습니다. 하지만 BBC방송이 무슬림 살해 동영상을 입수해 22일 공개하면서 버마 경찰의 ‘학살 방조’ 사실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이 동영상에는 무슬림이 운영하는 금은방에 불교도들이 불을 지르는 장면, 무슬림 주민이 ‘화형’을 당하는 장면 등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이 동영상은 버마 경찰이..

도쿄 대공습과 커티스 르메이

1945년 3월 10일 새벽, 미군 B29 폭격기 340여대가 2400톤이 넘는 소이탄을 일본 도쿄에 떨어뜨렸습니다. 몇개월 뒤 히로시마·나가사키 핵폭탄 투하로 이어지는 미국의 일본 패퇴작전의 서막인 ‘도쿄대공습’이었습니다. 일본은 이미 그 몇년 전부터 태평양전쟁을 벌여 아시아 거의 대부분 지역을 전쟁터로 만들었지만 정작 일본 ‘본토’의 국민들은 전쟁 분위기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합니다. 일본이 태평양 주요 전선에서 연일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군국주의 정부의 선전이 사실이 아님을, 미국이라는 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적을 상대하고 있음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킨 것이 바로 이 도쿄대공습이었습니다. 이미 도쿄는 1923년의 간토 대지진으로 한차례 초토화된 뒤였습니다. 20여년 동안 도쿄를 재건하면서 일본 당국은 ..

사막에 묻힌 카다피

리비아의 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막에 묻혔습니다. 카다피와 네째 아들 무타심, 그리고 카다피 측근 한 명이 사막에 매장됐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보도했습니다. 방송은 과도국가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카다피가 25일 새벽 사막에 매장됐고 이 자리에는 카다피가 속한 부족의 일원들과 이슬람 지도자가 나와 기도를 했다고 전했습니다. 원래 아랍·이슬람권에서는 사람이 숨지면 하루이틀만에 금세 매장을 하는데, 카다피는 지난 20일 사망한 지 닷새만에 묻혔습니다. 고향 시르테에서 사살된 카다피의 시신을 미스라타로 옮겨 상업용 냉동창고에 보관했다 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지요. 미스라타 지역 군 대변인인 이브라힘 베이탈말은 알자지라 방송 인터뷰에서 “묘지가 파괴되는 걸 막기 위해서 무덤에 아무 표식을 하지 않고 매장..

믈라디치, 헤이그 구치소로

얼마전 붙잡힌 보스니아 학살자 라트코 믈라디치에 대한 뒷얘기들이 나오고 있네요. 유고 내전 당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의 세르비아계 군인들이 무슬림 남성 및 소년 약 8000명을 무자비하게 죽인 ‘스레브레니차 학살’이라는 것이 있었죠. 학살이 벌어진 날은 1995년 7월11일. 그런데 학살 몇시간 전에, 당시 세르비아계 군 지도자로 ‘학살 책임자’였던 라트코 믈라디치가 스레브레니차 마을에 나타났습니다. 믈라디치가 미소를 띤 채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다독이던 모습은 당시 TV 화면을 통해 방영됐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대학살이 저질러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TV에 방영됐던, 믈라디치에게 초콜릿을 받아먹은 소년이 어제 AP통신과의 인터뷰를 하면서 당시 상황에 대해 입을..

시리아, 제2의 '하마의 비극' 될까

시리아 정부군이 25일 탱크를 앞세워 진압에 나선 이후 수십명이 목숨을 잃고 500여명이 체포됐다고 합니다. 시리아 인권운동단체인 ‘사와시아(Sawasia)’는 정부가 25일 시위대 거점도시인 다라에 탱크를 투입한 이후 다라에서만 최소 20명이 살해됐고, 시리아 전역에서 500여명이 체포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도 다라에서 최소 23명이 숨졌다고 전했습니다. 시리아 정부는 “강경 이슬람주의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을 배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와 똑같은 언술이네요. 정부군은 25일 오전 6시쯤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워 병력 3000여명을 투입해 주택과 주민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또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이 집들을 일일이 뒤지며 도시를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