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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 노조운동가 바웬사, 폴란드 대통령 되다

딸기21 2009. 12. 8.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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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흐 바웬사는 1943년 폴란드의 포포보에서 태어났다. 목수의 아들이었던 그는 초등학교와 직업학교 교육만 받고 67년 그단스크에 있는 레닌조선소에 전기공으로 취직했다. 70년 식량폭동 때 공산당 정권이 시위대에 발포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그는 반정부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지만 몇 년 못 가 해고됐다.

80년 레닌 조선소에서 식료품값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다시 일어나자 바웬사는 담장을 넘어들어가 노동자들에 가세했다. 파업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그는 경영진과의 협상에서 요구사항을 관철시켰다. 고무된 인근 지역 노동자들도 합세해 ‘공장간 파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바웬사는 이 위원회를 이끌며 파업권과 자유 노조 결성권 등을 요구하는 총파업에 들어갔다. 당국은 시위가 전국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정부와의 협정에 따라 파업위원회는 그 해 10월 ‘연대 자유노조’로 이름을 바꾸고 전국 노동조직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협정은 말뿐이었다. 이듬해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했다. ‘연대’는 불법화됐고 바웬사를 비롯한 노조 지도부는 체포됐다. 바웬사는 8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입국이 불허될 것을 우려, 부인 다누타를 시상식에 대신 보내야 했다.





소련의 몰락이 가속화하면서 폴란드 경제사정이 악화되자 정부는 바웬사 측과의 협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노조가 다시 합법화된 가운데 치러진 89년 선거에서 ‘연대’ 세력이 압승을 거뒀다. 바웬사는 공산당과의 연립정부 구성을 거부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90년 치러진 첫 대선에서 바웬사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다. 그해 12월 9일 바웬사는 역사적인 ‘민주 폴란드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바웬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후하지 못했다. 5년 임기를 마칠 무렵엔 권위주의적 태도와 정치적 무능에 대한 비판이 고조됐다. 재선에 실패한 그는 95년 옛 공산당 출신인 알렉산데르 크바스니에프스키에게 권좌를 내줬다. 


최근에는 바웬사가 노조 지도자 시절 공산당의 스파이 역할을 했느냐를 놓고 논쟁이 붙었다. 우파인 레흐 카친스키 현 대통령이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바웬사가 70년대 공산당 스파이 활동을 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바웬사가 카친스키를 고발함에 따라, 전·현직 대통령이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형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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