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아프리카의 역사- 낯선 역사에 대한 알찬 길잡이

딸기21 2006. 7. 2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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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역사 Africans: The History of A Continent  | 히스토리아 문디 2  
존 아일리프 (지은이) | 이한규 | 강인황 (옮긴이) | 이산 | 2002-12-27


'이브의 일곱 딸들'에서 넬슨 만델라까지 아프리카의 역사를 종으로 횡으로 엮은 이 책은 참 알차다. 맛뵈기 개론서로서 알찬 것은 좋은데, 책 읽는 동안 너무 많은 것들이 머리 속에 들어와서 정신이 없었다. 세계 곳곳 낯설지 않은 땅이 어디 있으랴마는, 때로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역사도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마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참 낯설었다. 낯선 고유명사들을 기억에 남기는 것은 아예 포기했다. 


머리 속이 복잡했던 것은 이 곳의 사정이란 것이 워낙 그동안 내가 몰랐던 것들인지라 이해하고 외우기에 벅찼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과정은, 내가 쥐꼬리의 털 하나만큼 알고 있었던 아프리카의 역사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과정이기도 했다. 

책은 열 두 개의 챕터로 이뤄져 있는데, 인류의 선조들과 진화, 농경의 전래 등을 다룬 앞부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현대사를 다룬 맨 뒷부분까지, 저자는 인구학적 분석을 중요한 틀로 삼고 있다. 1~3장은 인간의 출현에서 고대 이집트 문명까지를 다룬 것이어서 그냥 슬렁슬렁 책장 넘기듯 읽었는데, 4장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부터는 허투루 넘기기가 어려웠다. 아프리카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래 및 확산 과정은, 이들 종교가 탄생한 유라시아에서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그 ‘특수성’을 설명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다. 


간단히 정리하면 아프리카에서는 유일신앙들이 현지의 기복적이고 주술적인 토착신앙과의 융합과정을 겪어야 했다는 것. 저자가 꾸준히 강조하는 것은, 어떤 역사적 과정도 ‘아프리카가 미개했기 때문에’라는 식으로 해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거다. 담담하게 ‘사실(史實)’들만 정리하는 것 같으면서도 객관성을 유지하려 하는 서술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종교 부분을 지나 나오는 3개의 장(章)들은 아프리카를 북아프리카/서부 아프리카/동부아프리카로 나눠 지역별로 약사(略史)를 정리해놓고 있다. 아프리카의 역사라고 했지만 오래되고 큰 대륙의 역사를 이렇게 한 권에 담으려니 복잡해 보인다. 아프리카가 유난히 부족이 많고 복잡하고 역사에 일관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프리카 각 지역의 독자성보다 ‘아프리카’라는 덩어리를 놓고 보는 내 잘못된 시각 때문에 이 곳의 역사가 중구난방처럼 들리는구나, 하는 생각도 해봤다. 


책이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지는 것은 7장 노예무역에서부터다.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시작되는 ‘노예사냥의 시대’와 서양 열강의 침략, 식민통치, ‘독립의 시대’를 아주 빠른 속도로 읽어가면서(머리에 박히지 않는 부분들은 쓱쓱 지나갔다) 이 지역의 역사가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과는 참 많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놀랐다. 


서양 열강이 아프리카를 침략했다, 노예들을 잡아갔다, 아프리카는 폐허가 됐다, 그러다가 독립을 했는데 식민지 폐해 때문에 여전히 못 살고 있다... 내 머리에 들어있던 아프리카의 역사는 이런 구도였다. 그런데 저자는 식민제국이 남긴 기록들과 인구학적 분석을 통해 이런 단순무식한 편견을 뒤집는다. 


아프리카에는 원래부터 노예경제가 있었고, 포르투갈이 14~15세기 이후 이른바 상아해안 황금해안(기니만 일대)에 요새를 세우고 노예들을 사갔지만 노예밀매의 주축은 아프리카인들이었다. 대서양 노예무역이 시작되면서 기니만 일대에 시류를 탄 여러 왕국들이 명멸했다. 서양만 나쁜 것도 아니었고, 아프리카인들이 피동적으로 당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아프리카인들이라 해서 똑같은 흑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부족이 있고 저런 왕국이 있고 강자도 있고 약자도 있었다. 


정작 서양 열강이 아프리카 전역을 제멋대로 갈라 마구잡이 착취를 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이었다. 아프리카가 오늘날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 같이 기근과 내전으로 갈라진 ‘절망의 대륙’이 된 것은 거의 20세기 중반 이후의 일로, 거기에는 식민지의 잔재들과 환경인구학적 요인이 함께 작용했다. 어느 것도 ‘상호작용’이 아닌 일방의 형태로 이뤄진 것은 없었다. 그것은 지구상 어떤 지역에서나 마찬가지이고 아프리카도 예외가 아니었다. 


“노예수출은 적어도 2세기 동안 서아프리카의 인구성장을 가로막았다. 노예무역은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조직형태가 생겨나도록 자극했고,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광범위한 노예 사용을 부추겼으며, 고통에 대해서 더욱 야만적인 태도를 갖게 했다.... 역설적이게도 이 치욕의 시기에 아프리카인은 가장 용감하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인간의 힘을 보여주었다.” (230쪽) 


요는, 아프리카는 농업하기 힘든 기후조건을 가진 곳이 많고 질병 같은 ‘자연의 도전’이 많아 현대에 들어서기까지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아프리카의 역사는 ‘머릿수를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었으며, 힘센 자들이 약한 자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쓰는 구조였다. 그것이 서양 노예사냥꾼들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면서,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노예상인들이 기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많은 사람이 노예로 다른 대륙에 끌려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아프리카의 ‘인구재앙’을 가져올 정도의 숫자였던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극소수일지라도, ‘노예가 되느니 죽음을’ 택해 서양인들이 끝내 노예화를 포기하게 만들었던 부족도 있었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은 아프리카가 ‘당하는 대륙’이었던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구만 가지고 역사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정치적인 사건들에 가려진 것들을 보게 해주는 효과는 있다. 인구학적인 역사 설명은 아마도 요사이 과학과 역사를 결합시켜 보는 학자들 사이에 유행하는 방식인가 보다. 


열 두 번째 챕터는 남아공을 비롯한 남부 아프리카 일대의 근대 이후 역사를 다루는데, 요사이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을 보고 있는지라 그것과 연관지어가며 흥미롭게 읽었다.


책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역사가 ‘재미만 있는’ 역사는 결코 아닌지라 머리가 맑아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들의 역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현재 때문인지도 몰라. 아프리카가 피동적으로 강자에게 당하고만 있던 대륙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적어도 역사의 여러 시점에서 그들이 지구상의 많은 사람보다 앞선 물질적 문명을 갖고 있었다고도 하지만, 내 눈에 현.재. 비치고 있는 아프리카의 모습은 좌절스럽다. 시에라리온의 그 절망스런 거리, 폭력과 고통에 인이 박힌 불량스런 눈빛들, 재앙이 겹치고 겹쳐 희망의 싹을 찾아보기 힘든 그 땅의 사람들이 앞으로 어떤 역사를 꾸려갈까. 내 일도 아닌데 내 머리가 아프다. 쉽사리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현실은 너무 무겁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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