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감옥에서 보낸 편지- 읽기에 괴로운 편지

딸기21 2006. 9. 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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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보낸 편지 Lettere dal Carcere
안토니오 그람시 (지은이) | 린 로너 (엮은이) | 양희정 (옮긴이) | 민음사



이 편지에 대해 리뷰를 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람시라는 사람에 대해 아는 바는 별로 없지만 그람시라는 이름이 던져주는 무게에는 질식할 것만 같은 것이 내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람시, 그람시, 그람시. 그람시는 철옹성같은 자본주의 앞에서 지레 질식하지 말라고, 냉철한 지성으로 철옹성을 뚫는 방법을 연구했던 사람인데 정작 나는 그 이름 앞에서, 장르가 편지가 됐건 문학이 됐건 숨막히는 느낌을 받으면서 조금은 괴로워했다.

그람시는 많이 잊고있었던 무언가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고, 포기해버린 무언가를 아쉬워하게 만들고, 게으르고 나약한 자신을 질타하게 만든다. 이런 것은 책 읽으면서 참 도움되는 효과인 동시에 지금에 와선 참 지겨운 느낌이기도 하다. 무력한 내게 돌을 던져라! 한때 '진지전'이라는 말에 혹했던 적이 있었다. 그땐 그게 시류, '트렌드'인 줄만 알았다. 굳이 내 따위가 돌이켜보지 않아도 그람시는 천재다!

그 때 그 '시류'는 여전히 흐르고 있는데, 그람시가 지적했다는 내용들, 틀린 것 하나 없어뵈는데... 자본주의가 복잡해져갈수록 저항도 복잡해져야 한다. 복잡적응계에 맞춘 저항이랄까, 그런 것이 있어야 하고, 그 단초는 결국 그람시에게서 찾을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세상은 변한 것 같으면서 안 변하고, 그 사이에 그람시가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기분.

엮은이인 린 로너의 해설이 앞부분에 꽤 길게 들어가 있다. 그람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터라(옥중수고도 안 읽어봤다;;) 도움이 많이 됐다. 옥중수고가 그람시의 ‘사상’이라면 이 책은 그람시의 ‘냄새’다. 그람시라는 사람이 감옥에서 주변 사람들, 주로 처형인 타티아나와 아내 율리아, 어머니와 남동생 등에게 보낸 편지들이 엮여 있고 마지막 부분(그람시가 죽기 얼마전)은 아들 델리오에게 보낸 것들 중심으로 돼 있다.

그람시라는 ‘대륙’의 그림자, 냉철했던 그러나 불행했던 한 사상가의 인간적 면모를 보기 위해 책을 꺼내들었는데 엮은이는 그람시의 편지들이 ‘문학’으로서도 매우 훌륭하다고 소개를 해놨다. (하지만 이따위 번역이라면-- 욕만 나옴. 요즘 사람들 글 쓰는 걸 보면, 잘 쓰나 못 쓰나 판가름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자신의’라는 말을 불필요하게 쓰는 사람은 글 못 쓰는 사람일뿐더러 아둔한 인물이다. 예를 들면 ‘조용필은 자신의 데뷔 **주년을 맞아 기념콘서트를 가졌다’ 당연히 조용필의 데뷔지 누구의 데뷔겠어? 이 책의 번역은 온통 그런 식이다.)

헤게모니와 유기적 지식인에 대한 그람시 생각의 단초나마 엿볼수 있었던 몇 구절은 재미있었고,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갇힌 자의 신경질이 한껏 묻어나는 대목들은 마음이 아팠다. 엮은이의 설명에 따르면 그람시는 “아이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지만 그들을 위해 아동교육의 이론들을 만들어냈고, 독서 목록을 작성하였으며, 놀이들을 고안해 냈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책에 실린 몇몇 편지에 나와 있는 것들만 가지고는 ‘환상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지 다소 의문이 들지만.

그람시는 크로체를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역사가 자유의 역사, 달리 말해 자기 창조적 정신의 역사라면 왜 19세기의 유럽 역사만이 자유의 역사여야 하나요? 이 시기의 유럽 역사는 철학적 의미에서의 자유의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가 스스로를 인식해가고 지식인들을 위한 하나의 종교이자 하나의 미신으로 변형되는 역사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을 지식인들과 동일시하고 자신들이 정치적 ‘블럭’의 부분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미신입니다. 정작 정치적 블록의 기수들과 제사장들은 지식인들인데 말이지요. 그렇다면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즉 하나의 실제적인 통치수단인 셈이지요.”

서문에 설명된 체포 당시의 그람시는 ‘5피트도 채 되지 않는 키, 구부러진 등뼈, 커다란 사자머리, 금속 빛의 푸른 눈을 가진’ 35세의 지쳐있는 정치인이었다. 꺼져가는 몸에서 타올랐던 통찰력과 지성, 의지의 불꽃은 너무 강렬하다. 시들어가는 몸과 미처 꽃피우지 못한 두뇌 사이에서 마치 산화하는 것처럼 타들어가는 정신을 지켜보는 것은, 편지를 읽는 이에게조차 버거운 일이다. 그람시를 연구하는 이들, 그람시에게서 영향을 받은 이들은 어쩌면 채 익지도 못했던 그의 정신의 부스러기만을 잡고 씨름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고뇌에 빠진 갇힌 영혼을 보는 것은 지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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