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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킬링필드에 가다

딸기21 2009. 8. 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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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유적지 앙코르와트가 있는 캄보디아는 해마다 각국에서 온 20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특히 한국 관광객은 매년 20만명 정도로, 캄보디아 전체 관광객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캄보디아는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덜 알려진 나라’다.


프놈펜과 앙코르와트 유적지에서 10분만 벗어나면 수도와 전기도 없이 사는 사람들로 가득한 나라, 남한의 2배에 이르는 비옥한 땅에 1년의 절반이 우기인데도 관개수로가 모자라 벼농사를 망치기 일쑤인 나라, ‘킬링 필드’의 악몽과 베트남의 점령통치에서 벗어나 힘겹게 민주주의와 개발의 길을 걷고 있는 나라.  


‘아시안브릿지’와 함께하는 ‘착한여행-메콩강 시리즈’의 세번째 여행지인 캄보디아에 다녀왔다(앞서 이뤄진 두 여행은 베트남과 라오스편). 이 나라의 아름다운 경치, 찬란한 앙코르 문화유산의 이면에 숨겨진 역사와 현실을 마주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그 시작점은 관광여행에서 열이면 아홉은 들춰보지 않고 지나쳐버렸을 ‘킬링필드와의 대면’이었다.


패키지 관광에서 놓치기 쉬운 캄보디아의 참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들여다보겠다며 나선 15명의 일행과 함께 지난 14일 프놈펜 시내의 뚤슬렝(Toul Sleng) 교도소를 찾아갔다. 


1975~79년 악명 높은 크메르루주의 폴 포트 정권 시절 이 곳은 ‘S21’이라는 약칭으로 불리던 구금시설이었다. 폴 포트 정권은 원래 여학교였던 이 곳을 고문·구금소로 만들엇다. 수많은 지식인, 관리, 학생들이 영문도 모른 채 이곳에 갇혀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 뚤슬렝 정문에 들어서자 당시 구금소의 풍경과 폴 포트 정권 주요 인물들을 담은 사진이 보였다. 너른 마당에는 고문기구로 쓰였던 나무 기둥과 무덤들이 보였다. 



아시안브릿지 나효우 선생의 안내로, 어린이들을 포함한 여행단은 교도소 건물에 들어섰다. 구금시설로 쓰였던 3층짜리 건물 3개 동은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고, 휑하니 텅빈 감방들 안에는 철창과 낡은 침상이 과거사의 유물로 남아 있었다. 어두컴컴한 계단 위쪽에는 박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책을 앞에 두고 들어보라 한 뒤 똑바로 들면 지식인이라며 죽였다고 해요.” 나선생의 설명이다. 외국어를 아는 사람, 안경을 쓴 사람, 배운 사람들은 모두 죽이고 도시민들은 농촌으로 내쫓아 ‘농민공산국가’를 만들려 한 것이 폴 포트 정권이었다. 당시 캄보디아 인구 700만명 중 200만명 이상이 정권의 학살에 죽고 기아로 숨졌다.  




한쪽 건물에는 학살 희생자 사진들, 고문 참상을 다룬 벽화들이 있었다. 하나하나 눈여겨보며 지나가기엔 너무 잔인한 이미지들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최유진양에게 느낌을 물었다. “불쌍해요. 그런데 이해가 안 가요.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모르겠어요.” 박물관의 사진 속 크메르루주 소년병들도 유진이처럼 어린 아이들이었다. 


유진이에겐 이해하기 힘든 일인 것이 당연했다. 어른들도 이해하기 힘든 역사의 비극이니 말이다. 캄보디아 정부와 유엔이 지원하는 특별전범재판소는 2006년부터 크메르루주 학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재판을 하고 있다. 일명 ‘두치’로 불리며 악명을 떨쳤던 뚤슬렝의 소장 카잉 구엑 에아브도 전범으로 기소됐다. 캄보디아에서 과거와의 대면은 현재진행형이다.

관심은 자연스레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졌다. 고등학교 교사인 류래호씨는 박물관을 돌아본 뒤 캄보디아인 안내원 찬산씨에게 “캄보디아인들은 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찬산은 “지금도 살아있는 전범들이 재판을 받고 있지만 모두 자신들은 위에서 시킨대로 했을 뿐이라고만 주장한다”고 말했다. 역사의 상흔을 치유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쉽지 않은 일인 듯했다. 찬산은 “우리 국민들 중에도 우리 역사를 잘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뚤슬렝에서 버스로 30여분을 가면 프놈펜 외곽의 총엑(Choeung Ek) 마을에 닿는다. 뚤슬렝에서 고문당한 이들이 처형된 ‘킬링필드’다. 여느 시골마을처럼 보이는 곳에 학살기념관과 거대한 유골탑이 있었다. 탑 안에는 유리 선반에 층층이 해골이 가득했다. 어린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엔 너무 끔찍한 장면이라는 판단에 따라, 이 곳에서는 어른들만 차에서 내려 유골탑과 집단 매장지를 둘러봤다.  



총엑 마을과 프놈펜을 잇는 길 옆은 온통 메꽃밭이었다. 나팔꽃과인 메꽃은 미나리처럼 늪에서 자라는 덩굴식물이다. 고구마처럼 생긴 땅속 줄기는 식용으로 쓰인다. 폴 포트 정권은 국민들을 내몰아 벼농사를 시킨 뒤, 쌀을 내다팔아 무기를 사들였다. 강제노동과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쌀겨와 메꽃으로 연명했다고 한다. 뜨거운 햇살 아래 푸르게 빛나는 메꽃잎들조차도 그렇게 슬픈 과거를 안고 있었다.


크메르루주는 78년 베트남군의 공격을 받고 밀림으로 도주했고, 프놈펜은 89년까지 베트남군의 점령통치를 받았다. 90년대 국제사회의 지원 속에 여러 차례 총선이 치러졌고 여야 공동정부가 세워졌다. 친베트남계 훈센 총리가 이끄는 집권 캄보디아인민당(CPP)은 지난해 총선에서 처음으로 단독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그후 훈센 총리는 정국운영의 ‘자신감’을 넘어 우려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권단체들에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가 하면 “종신 총리를 하고 싶다”는 공개발언까지 했다고 한다. 프놈펜 시내는 물론, 농촌에서도 몇백m 간격으로 CPP 사무소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니 행여 ‘독재 준비’에 들어간 것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생겨났다.  


여기가 프놈펜 시내 중심가에 있는 훈센의 관저다. 지금은 수리 중.


프놈펜 중심가 프레아시아누크 거리를 지나면 독립광장이 나온다. 거대한 독립기념탑이 세워진 광장 옆에는 북한대사관과 나란히 훈센 총리 관저가 자리잡고 있다. 찬산에게 훈센 정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더니 농반 진반 “총리 집앞이라 말 못한다”는 대답이 나왔다. 근래 반정부 서적 등에 대한 검열이 심해졌고, 시골에서는 야당 지지자들이 장사를 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캄보디아 야당인 삼렝시 당의 상징은 촛불이었다. 군데군데 보이는 야당의 촛불 팻말은 한국의 촛불집회를 떠올리게 했다.



캄보디아는 아시아에서도 비정부기구(NGO)가 활발히 움직이는 곳이다. 인권·구호단체 200여개가 프놈펜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NGO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을 찾을 기회가 많았다. 


그 중 한 곳은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과 그 가족들을 돕는 ‘미트쌈란(친구들)’이라는 단체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이 단체는 갓난 아기에서부터 24세 청소년까지 약 700여명을 보살피며 초등교육과 기술교육을 해주고 있다. 15세까지의 아이들은 미트쌈란을 통해 글읽기와 쓰기 등 기본교육을 받는다. 15세부터는 요리, 기계, 미용·이발, 봉재 등의 기술을 배워 자립을 준비한다. 여행단이 방문한 식당은 미트쌈란에서 요리를 배운 아이들의 일터이자 사업장이었다. 


미트쌈란에서 운영하는 재활용 상품 가게 FRIENDS 'n' STUFF


캄보디아는 인구 절반이 21세 이하다. 공식 인구증가율은 1.76%이지만 농촌에서는 출생신고를 잘 안 하기 때문에 실제 출산율은 훨씬 높다. 프놈펜과 관광도시 시엠립, 항구도시 시아누크빌 등지에 약 2만5000명에 이르는 거리 아이들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몇년간 캄보디아는 연평균 10%에 육박하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인구의 3분의1은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다. 



‘시클로’라 흔히 불리는 자전거 기사에게 하루 얼마를 버느냐 물었다. 보통 4~4.5달러를 버는데 그 중 1달러는 밥값으로 들어가고 0.5달러는 시클로 소유주에게 임대료로 낸다고 했다. 돈을 아끼려고 끼니는 하루 두 끼만 먹고, 잠도 자전거에 좌석을 붙여만든 시클로에서 잔다고 한다. 



프놈펜 시내를 달리는 시클로. 멀리 보이는 건물은 프놈펜에서 가장 높다는 중국계 카나리아 은행 건물이다. 곧 있으면 한국 기업이 짓는 42층짜리 건물이 '캄보디아 최고층 건물'이 되겠지만.



프놈펜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시클로 기사가 1500명 가량 있다. 대부분 우기에 돈을 벌러 도시에 나온 농민들이다. 빈민가와 멀지않은 시내 중심가에서는 한국 기업과 투자회사가 42층짜리 초고층 빌딩을 짓고 있었다. 나효우선생은 “겉으로 드러난 것에서 한걸음만 더 들어가면 ‘불편한 진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 캄보디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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