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비싼 경고음, 방글라데시를 깨웠다" 현지 언론인 경향신문 기고

딸기21 2013. 5. 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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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일어난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사고로 현지의 열악한 노동현실과 거대 의류 브랜드들의 책임이 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다행이라면 이번 사건 뒤 방글라데시 정부와 국제기구, 기업들이 모처럼 협력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개선책이 이번에도 말로만 끝날지,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는 글로벌 경제의 사슬에 매여 있는 모든 이들의 노력에 달려 있다. 

다카에서 발행되는 시사잡지 ‘프로브매거진’의 아예샤 카비르 편집장(아래 사진)이 경향신문에 사건의 파장을 짚어보는 특별기고를 보내왔다. 카비르는 이번 사건이 방글라데시 전체에 ‘값비싼 경고음’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지선 기자


숫자만 가지고는 지난달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사건이 안겨준 공포를 설명할 수 없다. 수도 다카 외곽 사바르에 있는 8층짜리 라나 플라자 건물이 무너져 내리면서 수백명이 죽었고 수천명이 다쳤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실종상태에 있다. 희생자들 대부분은 이 건물에 입주한 의류공장 노동자들이다. 나라 전체가 슬픔과 공포로 마비됐다. 돌무더기 아래 산 채로 갇힌 이들의 기도에, 희생자 가족들의 절규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트라우마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말로도 나라 전체가 입은 마음의 상처를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건물은 ‘죽음의 덫’이었다. 8층 건물은 애초에 5층으로 건축허가를 받았다. 벽에는 균열이 생겼을 때 건물에 입주해있던 은행이나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그러나 의류공장 주인들과 건물 주인은 뻔뻔하게도 위험 정도가 과장됐다면서 노동자들을 공장에 들여보냈다. 그렇게 해야 수출 선적날짜에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고 사망자는 7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인도주의적인 측면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 사고는 엄청난 여진을 일으켰다. 의류산업은 방글라데시 국가 수입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의류산업이 급속히 커지면서 이 나라 경제는 전례 없는 성장을 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는 약 4500개의 의류 공장이 있고, 350만명이 고용돼 있는 데 이 가운데 80%가 여성이다. 연간 수출량은 180억달러(약 20조원)에 이른다.

 

최근 중국에서 제조비용이 증가하면서 외국 바이어들이 방글라데시로 많이 옮겨왔다. 그러나 지난해 말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큰 의류공장에 불이 난 데 이어 이번 재앙이 일어나자 안전에 대한 의문이 일기 시작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지금 외국 기업들이 철수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주로 유럽과 미국에 본사를 둔 외국 기업들은 자신들의 손에 노동자들의 피를 묻혀 ‘더럽혀지기를’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월트디즈니는 이미 방글라데시에서 주문을 모두 빼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라나 플라자의 물품을 납품받아 팔아온 월마트, 프라이마크, 타미힐피거, H&M 등은 방글라데시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브랜드의  일부일 뿐이다. 이들은 공장주들에게 안전 규정을 지키라고 압력을 넣는 것에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왜 노동자들이 공장주들의 불법행위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가. 더 낮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이윤을 내겠다는 탐욕 때문에 많은 공장들의 열악한 상황에 눈을 감아 버리는 외국기업들은 이런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방글라데시에 진출한 의류업체들이 모두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집이나 의무실 등을 포함해 좋은 작업 환경을 만들어준 업체들도 있다. 그런데 사바르 사고는 방글라데시 의류산업 전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워버렸다. 의류산업이 붕괴한다면 그에 따른 비극은 사바르 사고를 넘어설 것이다. 방글라데시 전역에서 5000만명이 직·간접적으로 이 산업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신호가 있다면 방글라데시 의류제조·수출업협회(BGMEA)가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제노동기구(ILO)와 손잡고 노동자 인권 및 안전 개선책을 마련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 합의는 이행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서류에 사인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장주와 업체, 의류산업 관계자 모두가 사고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태도를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도주의적 측면에서도 이번 사건은 매우 비싼 경고음이 되고 있다. 의류산업이 라나 플라자의 무너져 내린 잔해 속에서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으려면 이 산업과 관계있는 모든 분야에서 깊은 자기 성찰이 꼭 필요하다. 한 푼의 돈을 아끼는 것이 한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가. 공장주에서 기업과 정부와 소비자들까지, 모든 이들의 집단적인 자각에 의해서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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