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23년만에 드러나는 '두자일의 비극'

딸기21 2005. 10. 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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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90㎞ 떨어진 두자일은 티그리스강의 지류인 나흐르디잘라 강변의 작은 마을이다. 20여년 전만 해도 이곳은 인구 3만9000명의 부유한 농촌도시였다. 주민들은 강의 물줄기를 끌어들여 과수원을 만들고 대추야자를 키웠다. 수백년 간 이어져온 이들의 삶은 23년 전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 마을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라크에서 철권통치를 휘둘러온 사담 후세인 전대통령의 재판을 계기로 두자일 마을에서 당시 벌어진 무참한 학살과 파괴의 전모가 공개되기 시작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18일 이라크특별재판소에 기소된 후세인의 죄목, `두자일 마을 학살사건'의 전말과 살아남은 주민들의 비참한 삶을 전했다.

두자일이 위치한 이라크 중동부는 이슬람 시아파가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수니파 정권을 이끌던 후세인은 이란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1982년7월8일 이 마을을 방문했다. 주민들은 거리로 나가 예의 공화국 혁명군 복장으로 마을을 찾은 후세인을 환영했다.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반군들이 후세인의 행렬을 공격했고, 관제 환영행사는 모두 중단된 채 작은 읍내는 공포의 도가니로 돌변했다.
환영 나온 주민들에게 한껏 미소를 지어 보내던 후세인은 무서운 독재자의 본색을 드러냈다. 호위병들과 비밀경찰들은 거리와 주택가를 돌며 젊은이들을 찾아내 학살하기 시작했다. 후세인은 "이란인들이 주민들 틈에 섞여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마을 전체에 대한 무차별적인 보복작전이 펼쳐졌다. 두자일은 오래전부터 시아파 정치조직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여온 곳이었다. 60년대에는 뒤에 후세인의 바트당에 의해 불법화된 공산당원들이, 70년대에는 시아파 반후세인 조직인 다와 당(黨) 무장반군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했다. 주민들은 이런 연유로 후세인이 두자일 전체를 보복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나흐르디잘라 강변에 있는 알리 후세인 무사위(68)의 진흙벽돌집 거실에는 세 청년의 빛바랜 사진들이 걸려 있다. 무사위는 당시 학살 때 후세인의 호위대와 비밀경찰들에게 아들 셋을 모두 잃었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학살된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148명이고 체포된 이들은 400명에 달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적어도 500명 가량이 희생됐으며 1500명 이상이 붙잡혀갔다고 주장한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은 철저히 파괴됐다. 후세인의 군대는 주민들의 생활터전인 과수원과 대추야자 농장을 갈아엎고 주택가를 불도저로 밀었다. 식수공급도 끊겨 지옥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라크에서는 아무도 `두자일'을 말할 수 없었다. 무자비한 진압작전 뒤 국영신문 타우라는 "두자일이 재개발됐다"고 선전했다. 서방 언론 중 유일하게 당시 사건을 보도한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철저히 파괴된 마을을 보고 "두자일은 지도에서 사라졌다"고 썼을 정도였다. 군대는 마을로 들어오던 강의 흐름도 끊었다. 두자일 출신들은 심지어 후세인 시절에는 취직도 할 수 없었다.

재작년 후세인이 체포되자 비로소 주민들은 울분의 세월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두자일 학살사건이 후세인 재판의 첫 케이스로 꼽힌 것은, 후세인이 당시 마을을 방문해 직접 주민 체포와 학살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많은 주민들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자일 사건보다 훨씬 큰 인명피해를 낳았던 1980년대말 쿠르드족 대량학살 사건이나 1991년 시아파 학살 등이 모두 재판에 붙여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두자일 마을의 비극은 이라크인들에게 후세인 시절의 악몽을 일깨울 것이며, 시아-수니의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도 있다. 이번 재판은 `이라크판 진실과 화해'의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채널4와 BBC 등 방송들은 1982년7월8일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대통령이
두자일을 방문했을 당시의 모습이 들어있는 필름을 입수, 18일(현지시간) 공개했다.
이 필름은 후세인 정부측 촬영기사가 찍은 것으로, 후세인의 순시 모습과
암살기도 뒤의 연설 장면 등을 담고 있다.



두자일 시내를 둘러보는 후세인



후세인을 환영하는 인파



다정하게 주민과 인사하는 후세인



암살을 모면한 뒤 "외부인들이 혼란을 부르고 있다"고 선동하는 후세인


◆ 후세인 재판은 어떻게 되나

오는 19일(현지시간)부터 시작될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반인류범죄에 대한 재판이 출발도 하기 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첫 공판을 하루 앞둔 18일 후세인을 면담한 변호인 칼릴 알 둘라이미는 "변론 준비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서 공판을 석달 간 연기할 것을 재판부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후세인측은 재판을 맡은 이라크특별재판소가 설치 단계에서부터 불법성을 안고 있으며, 공판 일정을 정할 때 변호인의 요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재판 연기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19일 재판은 시작하자마자 휴정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후세인은 19일 오전10시(한국시간 오후 4시) 법정에 서게 된다. 법정은 과거 후세인이 외국 지도자들에게서 받은 선물을 보관하던 바그다드 시내의 한 장소로 알려졌다. 바그다드 시내 모처의 미군 시설에 구금돼온 후세인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2003년 12월 체포된 뒤 처음이다. 후세인은 핵심 측근 7명과 함께 1982년 두자일 지역 학살사건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유죄가 입증되면 최고 교수형까지 받을 수 있다. 재판소 주변은 미군과 이라크군, 경찰 수백명이 경계하고 있으며, 법정에는 X레이 검색과 안구-지문 스캐너를 통과한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다. 증인은 커튼에 가려진채 증언을 하게 되며 취재진과 입회인석은 방탄유리로 법정과 분리돼있다고 로이터통신 등은 전했다.

한편 이란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후세인이 자국민들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하고 학살하는 등 반인류 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의 기소장을 작성, 이라크특별재판소에 전달했다고 자말 카리미-라드 이란 법무장관이 18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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