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스타 과학자도 속수무책…중·미 질병통제 시스템은

딸기21 2020. 1. 2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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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 병원에서 50대 환자가 25일 폐렴 검사를 받고 있다.  우한 로이터연합뉴스

 

전염병 전문 스타 과학자도 속수무책이었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 그렇게 데었는데도 여전히 중국의 전염병 대응 능력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우한에서 시작된 폐렴 사태가 그대로 보여줬다. 전염병이 순식간에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시대에, 중국의 질병 통제 역량은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행정당국에 맡겨져 있음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중국질병예방통제센터(CCDC)는 후베이성 우한에서 지난해 12월 31일 폐렴 환자가 처음 확인되고 사흘만에 변종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데에 성공했다. “CCDC가 중국 내에서 신종 전염병 바이러스 분리에 처음 성공했으며 곧바로 백신 개발에 나설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하지만 사스 때와 비교해 대응체계가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이후 중국 전역으로 퍼지고 주변국들로 확산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베이징 중앙정부의 안일한 판단 탓이 컸지만 CCDC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1998년 중국은 국무원에서 보건의료 분야를 담당하는 관료급 기구인 국가위생건강위원회 산하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본뜬 CCDC를 만들었다. 위건위 산하에는 CCDC와 국가의료보장국이 있는데, 의료보장국은 건강보험 관리를 맡는 기구이고 CCDC가 질병 연구와 통제의 주축이다. CCDC는 산하에 11개 연구기관을 두고 있고 전염병 대응 등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연구소·국립센터 12곳의 관리를 맡고 있다.

 

출범한 지 몇 년 안 됐을 때인 2002~2003년 사스 대란이 일어나면서 이 기구는 한 차례 시험대에 부딪쳤다. 평가는 형편없었다. 초반 대응에 실패했다는 안팎의 질타가 이어졌다. 이후 2004년 감염성질환·공중보건비상사태 보고시스템을 띄웠고 2005년에는 전염병담당국을 신설해 대응체계 개선에 나섰다.

 

CCDC를 이끄는 가오푸(高福·58)는 베이징농업대학을 졸업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전염병·면역학 전문가다. 옥스퍼드와 미국 하버드대, 캐나다 캘거리대 등에서 강의해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높다. 2004년 귀국한 뒤로 중국과학원에서 일하다 2011년 CCDC에 합류했다. 2012년 개도국 과학자들에게 주는 TWAS 과학상을 수상했고 2014년에는 지역사회에 기여한 이들에게 수여하는 니케이아시아상도 받았다.

 

가오푸 중국질병예방통제센터(CCDC) 소장.  CCDC 웹사이트

 

그의 주전공은 조류 바이러스의 이종간 전염이다. H5N1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동물 간 전염을 밝혀낸 인물이었으며 사스와 H7N9 조류독감 바이러스 연구서도 펴냈다. 2014년 에볼라 사태 때에는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에 두 달 동안 체류하면서 중국 과학자들의 현장연구를 진두지휘, 미국과학원이 전염병과 싸운 “영웅”으로 칭송하기도 했다. 가오푸는 2017년 CCDC의 소장으로 임명됐다. 공중보건의 여러 분야 중에 전염병 전문가가 이 기구를 맡은 것은 사스, 신종플루, 조류독감 등을 거치며 중국에서도 글로벌 전염병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졌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오푸의 전문성조차 불투명하고 권위적인 행정체계에서는 빛을 발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21일 환구시보 등 중국 언론들은 “이번 폐렴은 사스처럼 환자 사망률이 높지 않고 전염 위험도 적다”며 파장을 진화시키기 위한 기사들을 줄줄이 내놨다. 당시 언론들에 인용된 CCDC의 전염병 전문가는 “사스 때에는 외국 전문가들이 석달 만에 바이러스를 발견했는데 이번엔 우리 힘으로 발견했다”며 성과 홍보에 치중했다. 중국 행정당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보여준 것이었다. 중앙정부의 안일한 판단 속에 CCDC의 전국적 비상조치도 늦어졌다. 전국 센터의 실무팀을 동원해 통제에 나선 것은 지난 20일 무렵으로 알려졌다.

 

27일 프랑스 파리 근교 루아시 공항에 도착한 여행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걸어가고 있다.  파리 EPA연합뉴스

 

가오푸는 22일 기자회견에 나와 “이번 폐렴을 일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사스 바이러스와 매우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발표한 CCDC 조사보고서에서 이번 폐렴 바이러스의 매개체가 박쥐일 가능성이 지적됐음에도, 당국은 27일에야 야생동물 거래를 금지시켰다. 사스 때에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주석이 ‘전염병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에야 당과 관료들이 움직였듯이, 이번에도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단호하게 확산을 억제하라”고 지시한 후부터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행사들이 취소되고 전면적인 통제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폐렴 사망자는 벌써 100명을 넘어섰다.

 

CCDC의 역사가 짧고 중국 인구규모에 비해 인력도 부족한 것 또한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다. 이 기구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2016년말 기준 직원은 2120명이고 그중 연구·전문직은 1876명이다. 예산은 공개되지 않았다. 반면 세계 전염병 통제의 기준이 되는 미국 CDC는 1946년 창립돼 70여년 역사를 갖고 있다. 직원은 약 1만1000명이며 내년 예산은 66억달러(약 7조8000억원)로 잡혀 있다.

 

미국 뉴욕의 차이나타운에서 27일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걷고 있다.  뉴욕 EPA연합뉴스

 

미 CDC는 출범 초기인 1951년 ‘전염병정보서비스(EIS)’를 만들었는데, 당시 시대적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생물학 무기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결과적으로 21세기에 맞는 글로벌 전염병 대응시스템을 구축한 셈이 됐다. 탄저병, 한타바이러스, 에볼라 위기 등에서 활약해온 EIS 역학조사관들은 ‘질병탐정(disease detectives)’이라 불린다. 애틀랜타의 CDC 본부에서 한 달 동안 교육받고 2년간 현장에서 실전경험을 쌓으며 데이터를 축적한다.

 

이밖에도 CDC는 천연두와 홍역에서부터 독감, 에볼라까지 400여종의 전염병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가 간 협력도 강점 중 하나다. CDC 웹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60여개국에 직원을 파견하고 있다.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등 ‘3대 전염병’과 함께 글로벌면역과(GID)를 두고 전염병 확산에 대응한다.

 

유럽은 국가마다 질병관리센터가 있지만 사스 이후 유럽연합(EU) 차원에서 2005년 유럽질병통제센터(ECDC)를 만들었다. 회원국마다 담당기관이 있기 때문에 스웨덴 스톡홀름의 ECDC 본부에는 직원 300명만 두고 있다. 연간 예산은 500만유로(약 65억원) 정도이며, 전염병이 퍼질 때마다 확산·예방정보를 공유하는 데에 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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