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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초유의 '마이너스 유가', 미 셰일업계 '줄파산' 오나

딸기21 2020. 4. 2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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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석유화학공장 굴뚝 위로 불길이 올라가고 있다. 이날 미국의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유(WTI) 선물가격은 -37달러로 떨어졌다. 휴스턴 AFP연합뉴스

 

미국 서부텍사스유(WTI) 선물가격이 20일(현지시간)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사실상 마비되고 항공교통까지 대부분 중단돼 석유 수요가 급감한 탓이다. 그동안 빚을 내 생산용량을 늘려온 미국 셰일업계의 줄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마이너스’ 유가? 실제는 20달러대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WTI는 -37.6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1983년 선물거래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21일 선물 인도 시한을 앞두고 투자자들이 대거 인도를 포기한 채 6월물로 갈아탔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거래가 거의 사라지면서, 웃돈을 얹어줘가며 팔아야 하는 시장 상황이 이론상의 ‘마이너스 유가’로 표현된 것이다.

 

WTI의 만기일이라는 변수 때문에 일시적으로 마이너스가 됐지만 국제유가는 대체로 배럴당 20달러 선에 형성돼 있다. WTI와 함께 글로벌 벤치마크 유종인 북해산 브렌트유는 25달러선이다. WTI 값이 폭락했을 때 영국 런던 선물거래소의 6월물 브렌트유도 떨어져 배럴당 26달러가 못 미치는 가격에 거래됐다.

 

시장에서는 6월 이후 유가가 서서히 회복될 것으로 본다. WTI 6월물은 20달러, 7월물은 27달러, 8월물은 29달러, 9월물은 30달러, 10월물은 31달러, 11~12월물은 32달러 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하반기 유가 반등은 코로나19 확산이 멈추느냐에 달려 있어, 아직은 섣불리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전략비축유’ 활용하겠다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유가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비축유를 채울 예정”이라고 했다. 7500만 배럴을 더 사들일 계획이라고 했다. 미국은 오일쇼크 뒤인 1975년 ‘에너지정책보호법(EPCA)’을 만들어, 전략비축유(SPR)라는 이름으로 석유를 저장해두기 시작했다.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주의 멕시코만 일대에 4곳의 전략비축유 저장고가 있으며 총 8억배럴을 보관할 수 있다. 미 에너지정보국(EIA) 웹사이트를 보면 지난 1월 기준으로 6억3500만배럴이 비축돼 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만, 미 정부가 시장의 유가를 조절할 때 활용하는 완충재 역할도 해왔다. 유가가 치솟으면 비축유를 풀고, 유가가 너무 떨어지면 저장고를 더 채우는 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대로라면 비축량은 7억배럴 이상으로 늘어난다. 금융위기 여파가 이어졌던 2009~2011년에는 7억3000만배럴 수준으로 비축량을 늘렸다.

 

자료: 미 에너지정보국(EIA)

 

하지만 지금 미 석유업계가 맞고 있는 위기는 비축유를 더 쟁여두는 것만으로 해소하기엔 훨씬 구조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가 급락은 비단 코로나19 때문만이 아니며, 미국 석유산업의 고질적인 문제가 터져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빚 투자’ 셰일업계, 줄파산 오나

 

미국은 세계적인 산유국이자 석유 수입국이면서 동시에 수출국이다. 2014년 무렵부터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1위 석유 수출국이 됐으며 지난해에는 67년만에 처음으로 수출량이 수입량보다 많은 ‘순수출국’이 됐다. 이는 원유보다는 암반층을 뚫고 파내는 셰일 오일 열풍에 따른 것이었다. EI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는 28억배럴, 하루 770만배럴의 셰일 오일이 생산됐다. 미국 전체 산유량(44억6000만배럴)의 63%를 셰일이 차지했던 것이다.

 

‘비재래식 석유’ 혹은 ‘타이트 오일(tight oil)’이라 불리는 셰일이 너무 많이 생산되면서, 미국 내에서는 이미 물류·저장시설이 부족해지고 있었다. 거기에 코로나19가 겹치면서 땅 위의 저장소들은 물론, 바다의 유조선들마저 꽉꽉 채워져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전했다. 그런 터에 올들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가격 떨어뜨리기’ 경쟁을 벌이면서 미국 업계가 타격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활황기에 은행빚을 내 생산규모를 늘린 미국 셰일회사들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게 됐다는 뜻이다.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이동통제령이 계속되면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주유소가 텅 비어 있다.  뉴욕 EPA연합뉴스

 

CNN비즈니스는 이를 ‘이중 블랙 스완(double black swan)’이라고 표현하면서, 미국 에너지업계가 ‘운명의 날 시나리오’에 직면했다고 했다. ‘블랙 스완’은 예상하지 못한 극단적인 상황을 뜻한다. 리스태드에너지의 셰일부문 연구책임자 아템 아브라모프는 CNN에 “30달러도 상당히 낮은 가격인데 20달러나 10달러는 완전히 악몽”이라고 말했다.

 

리스태드에너지는 WTI가 배럴당 20달러일 때 미국의 유전 탐사회사나 원유 생산회사 533곳이 내년 말까지 파산보호신청을 낼 것으로 전망했다. 10달러로 떨어지면 파산하는 회사가 1100개가 넘을 것으로 봤다. 이 회사의 분석에 따르면 WTI ‘20달러 시나리오’에서 미국 석유회사들의 총 부채는 700억달러가 넘는다. 2021년에는 총 부채가 무려 1770억달러(약216조원)로 불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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