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92

[정동길에서]우리는 나아지고 있다

항공모함을 만들고 우주탐사선을 띄우고 노벨상 수상자가 잇달아 나와도 소용 없었다. 시장에서 야생동물을 사고팔고 전염병이 번지는 것은 못 막았다. 21세기 양강(G2)의 한 축이라는 중국의 모습이다. 코로나19가 통제불능으로 치닫자 열흘만에 응급병원을 뚝딱 지었지만, 사람을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는 정부와 사회인식과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지금 중국에선 1억5000만명, 인구의 10분의1이 방역 통제 하에서 지낸다. 미국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고 인공위성을 띄우고 미사일을 쏘지만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는 보장하지 않는 이란. 이란의 신정과 군부 지도자들은 미국과 적대적 공생 관계다. 청년들의 투표 무관심 속에 보수파 압승으로 끝난 21일의 총선 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코로나19 사망자가 늘어나는데..

[정동길에서]호르무즈에서 뭘 할까

군대를 보내야 할 때가 있다. 남의 나라 군인들이라도 가서 도와주는 게 필요한 곳들이 있다. 1990년대에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에서 내전이 일어났다. 참혹했다. 영국군이 나중에 들어가 상황을 진정시켰지만 너무 늦었다. 옛 유고연방 내전 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은 현장에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동아프리카 르완다에서도 학살극이 벌어졌다. 벨기에와 프랑스는 개입할 수 있었는데 방치했다. 학살자들을 돕기도 했다. 미국도 관심이 없었다. 영화 로 유명해진 밀콜린스호텔 직원이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팩스를 보내 도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클린턴은 모든 상황이 다 끝난 뒤 1998년 3월 르완다에 들렀다. 아프리카 순방길에 잠시 비행기를 르완다 수도 키갈리 공항에 착륙시키고 학살 당시 도움을 거부한 것을 ..

[기협 칼럼] '기레기'라는 문제

11.13 기자들이 하도 ‘기레기’로 지탄을 받으니 이젠 그 말이 그리 신랄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기자들은 볼멘소리를 내고 싶어도 대놓고 어디에 쓰거나 말하지는 않아왔다. 내심 언론이 지은 죄를 알기에 대꾸하지 않거나 혹은 ‘저들은 반대편이야’ 하면서 자기들끼리 독자들을 욕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요샌 “기자들 모두를 기레기 취급하면 오히려 좋은 기사를 쓰려는 이들이 설 자리를 잃는다”며 반격하는 기자들이 보인다. 최문선 한국일보 기자의 지난달 칼럼 같은 게 그런 예다. 미디어 수용자들 사이에서도 기자들에 대한 그런 무차별 공격보다는 핵심을 찌르는 핀포인트 비판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국 사태’로 ‘전 언론의 기레기화’ 비판이 일어난 뒤에 소셜미디어에서 역설적으로 ‘모두를 기레기로 몰지 말자’는..

[기협 칼럼] 다른 목소리

나라가 둘로 갈리는 건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하나로 합쳐지는 것보다는 낫다. 신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식에서 한몸처럼 팔다리를 휘두르는 군인들, 국가주석의 말에 로봇병정처럼 구호로 응답하는 인민해방군의 모습에 서늘한 느낌을 받은 건 ‘하나가 된 전체’가 얼마나 위압적이고 무서운지 알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조국 (법무장관) 얘기 꺼내면 싸움 난다”고 하면서 다들 그 이야기를 한다. 소셜미디어에서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선 글 안 올리려고 했지만”이라는 서두를 달며 글을 올린다. 서초동에 100만, 200만 명이 모였다고 하더니 곧이어 광화문에 300만 명이 모였다고들 한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선택을 강요한다. 이번 사태 덕분에 물 위로 떠오른 계급적 사회적 이슈들은 거리의 힘 대결과 숫자싸움 때문에 ..

[기협 칼럼] 필리핀의 위안부 동상

‘필리핀 위안부’. 마닐라 록사스 거리의 베이워크에 전시됐던 동상이다. 2017년 12월 8일 필리핀국가역사위원회(NHCP)와 시민단체들의 지원 속에 만들어졌다. 우리의 ‘평화의 소녀상’처럼, 이 동상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성노예로 강제동원됐던 여성들을 기억하고 전쟁범죄를 되새기기 위해 세워졌다. 호나스 로세스라는 조각가가 만든 2m 높이의 동상은 필리핀 여성들이 많이 입는 ‘마리아 클라라 드레스’ 차림에, 베일을 쓰고 눈을 가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작가의 설명을 빌면 여성의 눈을 가린 것은 “일본 정부로부터 만족할만한 공식 사과나 보상을 받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는 생존자들의 정의를 향한 열망”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었다. 몇 달 지나지 않은 2018년 4월 27일에 동상은 사라졌다. 로세스는 ..

[기협 칼럼] 100년의 불신

소셜미디어에는 날마다 언론보도를 팩트체크하는 글들이 올라온다. 팩트를 점검하는 것은 언론의 기능인데, 다른 무엇도 아닌 언론이 점검의 대상이 돼버렸다. 팩트가 틀린 기사가 너무 많으니 이젠 기자들이 어떤 의도로 뭘 어떻게 틀렸는지 시민들이 체크한다. 정치적 분열과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언론 기사와 팩트체크가 한쌍으로 묶여버렸다.. 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에서 한국의 언론 신뢰도가 38개국 중 최하위로 나타났다는 보도를 봤다. ‘뉴스 대부분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 비율이 한국에선 22%에 그쳤다. 5명 중 4명은 언론을 안 믿는다는 게 놀랍지도 않다. 이 조사결과에 아무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야말로 언론인들이 놀라야 마땅한 현실이다. 틀리고 왜곡된 보도가 너무 많다는 것을 ..

[기협 칼럼] 기자의 윤리, 기자의 범죄

기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윤리의식 혹은 도덕성이 필요할까. 윤리의식의 절대적인 양을 측정할 수는 없으니 질문을 좀 다듬어보자. 기자에게는 ‘보통 사람들’ ‘독자들’보다 더 높은 윤리의식이나 도덕성이 필요할까. 기자의 윤리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보편적인 윤리의식이 있는가 하면, 취재와 보도를 하면서 지켜야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윤리가 있다. 둘은 분리될 수도 있고, 때로는 하나일 수도 있다. 기자들이 취재나 보도를 하면서 금품을 받아선 안 되고, ‘취재 편의’라는 명목으로 합당하지 않은 대우를 요구하거나 받아서도 안 된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보도를 해서도 안 된다. 사실이 아닌 내용을 보도해서도 안 되고, 특정 사실을 부풀리거나 왜곡해서도 안 된다. 이론적으로 기자들이라면 이쯤은 안..

[기협 칼럼] 불편해져라 민감해져라

‘미투’가 뜨거운 이슈였던 지난해, 기획시리즈의 하나로 ‘남성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만들었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한국 남성들이 여성을 ‘물건 취급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을 담은 글이었다. 그 뒤 1년, 더 나아진 사회에 대한 희망적인 소식 대신 버닝썬과 연예인들의 불법촬영이 사회를 달군다. 버닝썬 클럽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술집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그런 일을 당한다니. 하지만 이 뉴스의 ‘밸류’를 평가하는 데에서 확실히 여성과 남성의 체감도는 다른 것 같다. 언론은 어떤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매체는 일련의 사건을 놓고 피해자들을 찾아낸다며 2차 가해를 하고, 또 어떤 쪽에서는 성범죄 보도의 원칙을 가다듬는다. 소셜미디어에는 사건의 흐름 못잖게 보도 행태를 주시하는 ..

[기협칼럼] 불과 글, 기자와 글

뉴미디어로 뉴스의 형태가 바뀌면서 신문기자들도 영상을 고민하고, ‘인터랙티브’한 ‘콘텐츠’를 고민해야 한다. 20여 년 동안 글을 쓰는 것으로 먹고살았지만 글이 아닌 무언가 다른 형태로 생각을 내놓는 것에 아직 나는 익숙하지 않다. 글이 아닌 무언가를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렇다 해서 딱히 ‘글쓰기’를 놓고 고민을 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내가 말하는 ‘고민’은 대학 시절 일본 적군파 다미야 다카마로가 책에 썼던 것처럼 ‘일주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면서 생각하는’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글쓰기를 치열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고, ‘글쟁이’라든가 ‘글을 쓰는 걸 업으로 삼은 사람’이라는 인식도 없다. 신문기자이지 작가나 시인은 아니니까. 그렇게 나는 기자의 글과 시인의 글 사이에 분..

[구정은의 세상]아고라와 유치원···국회의원들을 벌 주려면

다음이 아고라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한다. 다음 뉴스는 사이트에 “그동안 ‘대한민국 제1의 여론광장’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습니다. 이제 15년간의 소임을 마치고 물러납니다”라는 안내글을 올렸다. 여론광장의 큰 축이던 게시판들은 ‘게시물 백업’이라는 최후의 서비스와 함께 사라진다. 아고라도, 한때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미네르바’도, 이젠 지나간 이름들로 남게 됐다. 싸이월드나 프리챌처럼 한 시절 사람들을 끌어모으다가 쇠락하는 인터넷 서비스들이 적지 않지만 아고라의 소멸은 ‘빛이 바래기 마련인 추억’을 넘어선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기자 초년병 때, PC통신이 막 유행하고 있었다. “나우누리 아이디 @koje***는 무엇무엇이라고 지적했다”는 식으로 유저 반응이 기사에 인용되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