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92

[공감] 넬슨 만델라... 그에 대한 기억도 박제가 될까

“만델라 할아버지에게선 지혜로운 냄새가 나요(smells wise).” 몇 해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해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만난 미국 10대들이 했던 얘기다. 국제뉴스를 전하는 일을 한 지 오래됐지만, 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늘 미소짓게 되는 것이 만델라에 대한 소식들이었다. 만델라가 1998년 지금의 부인인 그라사 마셸과 결혼하면서 “나는 지금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고 했던 일도 기억난다. 그 때 만델라는 80세, 그라사는 53세였다. 여든 살 할아버지의 핑크빛 고백은 보는 이들의 마음도 따뜻해지게 만들었다. 내가 만나본 남아공 사람들은 흑인이든 백인이든 모두 만델라에 대한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서거한 전 교황 요한바오로2세를 비롯해 모든 지도자들은 공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만델라..

[공감] 역사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

오래전 인터넷에 바칼로레아(프랑스 대학입학 자격시험)의 철학 문제들을 소개한 글이 유행했다. 프랑스의 수준 높은 철학교육은 우리에게만 관심거리인 게 아닌 듯하다. 영국 BBC방송 기자가 프랑스에 살면서 그곳 교육을 보고 느낀 것들을 지난 주말 웹사이트에 올렸다. 제목이 “왜 프랑스는 학생들이 철학을 알아야 한다고 고집하는 걸까”다. 기자가 소개한 프랑스의 철학시험 문제는 이런 것들이다. ‘진실은 평화에 도움이 되나’, ‘폭력 없이 권력이 존재할 수 있나’‘사실(facts)에 위배되면서도 옳은 입장에 설 수 있나’.철학 교과서의 주제들은 의식, 타자, 예술, 존재, 시간, 물질과 정신, 사회, 법, 의무, 행복 같은 것들이라고 한다. 고교 시절 나도 철학 과목을 배웠다. 주로 철학자들의 이름과 시대를 외우..

[공감] 윤창중과 인턴 직원... 성범죄 막을 '게임 체인저'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 화학무기 사용 의혹이 나오자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판세를 뒤바꿀 변수라는 얘기다. 국제정치에 큰 파장을 가져올 6월 이란 대선에 현 대통령의 대리인과 리버럴들의 대부 격인 전 대통령이 출마를 선언했더니, 외신들이 “게임 체인징 후보들”이라고 평했다. 며칠 전 치러진 파키스탄 총선에서 ‘반미’ 노선의 정치인이 승리하자 ‘대테러전의 게임 체인저’라는 기사가 나왔다. 요즘 이 말이 유행인가보다. 우린 국내에서 그보다 더 충격이 큰 게임 체인저를 보고 있다. 며칠 사이에 한국의 모든 뉴스가 윤창중으로 도배되는 것 같다. 근엄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일간지 1~3면 톱기사 제목에 ‘노팬티’와 ‘알몸’이 줄줄이 등장할 줄이야. 이대로라면 ..

[공감] 보라매병원과 진주의료원-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

벌써 오래 전 일이지만 머릿속에 남아 있는 사건이 하나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위탁운영하던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한 환자가 숨졌다. 정확히 말하면 ‘퇴원 직후’에 숨졌는데 상황이 간단치 않았다. 환자는 위중했고, 인공호흡기를 떼는 순간 곧바로 사망하리라는 걸 의사들은 알았다. 시립 보라매병원은 돈 없는 이들이 많이 가는 곳이었다. 숨진 사람은 50대 남성으로 기억한다. 첫부인과의 사이에 아이가 있었지만 젊었을 때에 이혼했다. 재혼한 부인이 만삭이었을 때에도 폭행을 한 나쁜 남편이었다. 수사기록만 보면 그렇다. 그는 더 이상 입원해있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고, 먹고살 길이 막막한 부인은 호흡기를 떼어달라고 의사들에게 부탁했다. 의사들은 처음엔 말리며 거절하다가 부인의 요청에 못 이겨 퇴원을 시켰다. 수련..

[공감] 머리 위에 B-2가 날고 F-22가 난다

B-2라는 이름을 들은 것은 10여년 전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면서 이 전투기를 동원했다고 했다. 이 전투기는 그 때도 화제였다. 축구장 절반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와 가격이 압도적이었다. 관리비용과 공간 문제 등등의 이유로 주기장을 설치하기 쉽지 않아 미국에서 아프간까지 ‘도시락 출퇴근’을 하며 폭격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어떤 신문은 그걸 재미난 화제 기사로 썼다. 아무튼 사진으로 본 B-2는 근사했다. 내가 좋아하는 큰 가오리 ‘만타레이’를 닮은 검은 삼각형에, 빛과 전파를 흡수한다는 무광택의 위압적인 외양. 이라크전 때 미군은 사상 최초로 B-2를 미국 밖으로 빼내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 섬에 배치했다. 제공능력도 없는 탈레반이나 사담 후세인을 상대로 저 비싼 무기가 왜 필요했을까. 레이..

[아침을 열며] '무살만'을 보며 생각해보는 2012년 신문의 소통법

인도에 ‘무살만(Musalman)’이라는 신문이 있다. 타밀나두주의 대도시 첸나이에서 매일 오후에 나오는데 분량은 4쪽에 불과하다. 1927년에 창간된 유서 깊은 신문이고, 인도·파키스탄의 주요 언어 중 하나인 우르두(Urdu)어로 발행된다. 초창기 신문을 이끈 무크타르 안사리는 인도국민회의에서 활동하며 영국 식민통치에 맞서 인도 내 무슬림 투쟁을 이끈 저명한 독립투사였다. ‘더 타임스 오브 인디아’가 2008년 무살만을 소개한 적이 있고, 지난해에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또 이 신문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무살만을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다. 그 흔한 웹사이트도 없으니, 신문을 찍어올린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본 것이 전부다. 이유는 단순하다. 무살만은 ‘손으로 쓰는 신문’이다. 무살만은 컴..

[아침을 열며] 죽는 10대, 죽이는 10대... 올 것이 왔을 뿐이다

엄마가 중학생 아들의 책상을 톱으로 썰었다고 했다. 성적이 좋지 않다고. 어떤 아이는 “아이팟과 함께 묻어달라”며 목숨을 끊었다. 넉 달 전 청주에서는 한 남학생이 차마 인용하기도 힘든 충격적인 행위를 했다. 지난해에는 동남아의 국제학교에 다니던 한국 학생들이 귀국해 행인을 폭행, 살해했다. 그리고, 가혹한 폭행을 당하던 남학생이 친엄마를 살해했다. 언론에선 우리 사회의 성적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다. 끔찍하긴 하지만, 충격적이라기보다는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다. 패륜 존속살해사건의 효시 격인 ‘박한상 사건’이 떠올랐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었다. 부유층 집안에서 자라 미국에 유학했던 학생이 도박에 빠져 집으로 다시 끌려온 뒤 부모를 살해했다. 부잣집 유학파 아들이 저지른 경악스러운 사건에..

[아침을 열며] 안철수, 최중경, 아인슈타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참 대단하다. 돈을 1500억원이나 벌었다는 것도, 그걸 내놓겠다는 것도 대단하다. 그런데 그의 기부를 놓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재산 사회환원은 주로 ‘꼼수’ 부릴 일이 생긴 사람들이 하는 일, 궁지에 몰린 이들이 면피용으로 던지는 말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안 원장에게도 ‘혹시 딴생각 있는 거 아냐’ 하는 의구심이 쏠린다. 이해는 된다.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MS)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자선재단 일에 매달린다고 했을 때 미국 일부 언론들도 ‘등떼밀려 털고 나온 것’이라는 둥의 보도를 했던 기억이 난다. 기부를 했다가 오히려 위신 깎인 사람도 많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갑부 알 왈리드 왕자는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뒤 피해자 구호기..

[아침을 열며] 잡스도 안철수도 영웅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기사를 읽거나 쓴 적은 많았지만, 그가 숨졌다고 이렇게 허전함을 느낄 줄은 몰랐다. 애플 제품을 직접 써본 것은 국내에 아이폰이 들어온 뒤였으니 얼마 되지 않는다. 잡스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한 뒤 열흘 동안, 허전하면서도 신기했다. ‘잡스 없는 세상’이 화두가 됐고, 잡스 이야기가 넘치고 흘렀다. 나는 그의 죽음에 왜 허전해진 걸까. 우리는 잡스에게 무얼 투영하고 있었나. 디지털기기를 만들어 팔던 남의 나라 경영자에게 무얼 기대하고 있었고, 무얼 얻고 있었던 걸까. 하도 잡스를 놓고 떠드니, 반작용처럼 그가 뭐 대단하냐 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자기네 기업 이익을 위해 매진한 것밖에 없는 사람을 두고 신화를 만들어 좋을대로 써먹고들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맞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한..

[아침을 열며] 우리를 돌아보게 한 '작은 뉴스들'

지난달 경기 성남의 시내버스 안에서 외국인 남성이 한국 노인을 폭행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지하철 패륜남, 개똥녀 등 비슷한 사건들이 하도 많으니 이제 이런 종류의 소동은 웹에선 일상이다. 하지만 이번엔 가해자가 ‘흑인남성’이라는 점때문에 시끄러웠다. 언론들은 “거구의 흑인남성이 한국 노인을 폭행했다”며 피부색을 강조했고, 네티즌들은 ‘무례한 흑인’을 욕했다. 이어진 보도에 따르면 이 흑인은 “shut up”하라는 노인의 말에 화가 났고, 뒤이은 노인의 한국말을 흑인비하 발언으로 오해해 폭행했다는 거였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논쟁이 붙었다. 한국에서 흑인이 얼마나 적대적이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왔을지 짐작이 간다, 그렇다고 노인을 때리는 게 정당화되느냐, 영어 같지도 않은 영어 쓰는 흑인은 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