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59

만델라 할아버지는 어떤 분일까

넬슨 롤리흘라흘라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 넬슨 롤리흘라흘라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 미국인들에게 50년 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외쳤던 마틴 루터 킹이 있었다면, 만델라는 그 꿈을 실현시킨 ‘세계인의 마틴 루터 킹’이었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들뿐 아니라 백인과 유색인종 모두에게 칭송받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모든 영웅에게는 적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에게는 적은 없었다. 그는 대의를 위해 적들도 끌어안을 수 있음을, 그리하여 적 또한 벗으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남아공 백인정권의 마지막 대통령 F.W. 데 클레르크가 만델라가 출감한 뒤 1994년 흑인정권을 출범시키자 스스로 부통령으로 내려앉아 만델라를 도왔던 것..

스티븐 로런스와 짐머먼 사건, '제도적 인종주의'

스티븐 로런스는 18세의 흑인 학생이었는데, 1993년 4월 22일 저녁 영국 런던 남부 엘덤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백인 젊은이 5명에게 흉기로 찔려 숨졌다. 경찰은 범인들을 모두 붙잡았지만 아무도 기소하지 않았다. 나중에 기소가 됐지만 2명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로런스의 죽음은 영국에서 인종차별을 둘러싼 논란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오랜 기간 식민지를 운용하고 그 결과 수많은 유색인종을 국민으로 받아들이게 된 영국에서, 인종차별은 해묵은 주제였다. 영국은 전세계에 흑인 ‘노예’들을 퍼뜨린 주범이지만 동시에 인종차별이나 노예 매매를 옛 열강 중 가장 먼저 종식시킨 나라라는 자부심 또한 갖고 있었다. 로런스 사건은 식민통치가 끝난 지 반세기도 더 지나 벌어진 일이었기에 영국 사회에서 큰 파장을 ..

스티븐 로런스와 조지 짐머먼 사건

미국의 흑백 인종차별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영국의 사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미국에 비해 들을 기회가 적었던 것 같습니다. 몇해 전 인종주의에 대한 책을 번역하다 스티븐 로런스 사건을 접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영국에서는 크게 논란거리가 됐고 정부 차원의 조사까지 벌어졌던 사건이더군요. 내용은... 많이 듣던 스토리입니다. 억울하게 살해된 흑인 소년, 하지만 백인 피의자들은 처벌받지 않았다는. 스티븐 로런스 Stephen Lawrence (아래 사진)는 18세의 흑인 학생이었는데, 1993년 4월 22일 저녁 런던 남부 엘덤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백인 젊은이 5명에게 흉기로 찔려 죽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범인들을 모두 붙잡아 놓고도 아무도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기소가 됐지만 2명은 증거불충분..

아리안 형제단, 그리고 미국 검사들의 죽음

“아리안계의 혈통을 계승하며 유대인과 유색인종의 피가 섞이지 않게 하라.” 70여년 전 독일 나치당의 선전이 아니다. 지금도 미국에서 버젓이 활동하는 백인 우월주의 집단들이 내세우는 주장이다. 약칭 AB, 혹은 약칭을 따서 ‘앨리스 베이커’, 조직원들 사이에서는 단순히 ‘원투(알파벳 첫번째, 두번째 글자라는 뜻).’ 미국 인종주의 조직 ‘아리안형제단’을 부르는 이름들이다. 1964년 만들어진 이 조직은 미국 전역에 2만명의 회원을 두고 있는데, 그중 대부분은 감옥에 수감돼 있다고 한다. 미 연방수사국에 따르면 미국 내 수감자의 1%가 아리안형제단 멤버이고 재판이 끝난 살인사건의 20%가 이들이 저지른 것이다. 살인, 마약밀매, 강도, 교도소 내 성매매 등 온갖 악행들이 이들의 범죄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

루이스 응꼬씨 '검은 새의 노래'

검은 새의 노래 Mating Birds 루이스 응꼬씨. 이석호 옮김. 창비(창작과비평사). 6/27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설은 존 쿳시의 말고는 본 적이 없다. 문화부 책상에 굴러다니는 것을 주워다놓고 2년 가까이 묵히고 있다가 이제야 읽었다. 확인해보니 원작이 출간된 게 1987년, 아직 백인정권의 서슬이 시퍼럴 때다. 남아공의 대표 작가 격인 쿳시가 백인인 반면, 이 소설을 지은 응꼬씨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흑인이다. 책은 한 흑인 청년의 옥중 고백 형식으로 돼 있다. 한글판 제목은 ‘검은 새의 노래’이지만 영문 제목은 ‘짝짓는 새들’이다. 화자인 청년은 흑인들 중에선 제법 교육받은 사람으로 대학물까지 먹었지만 백인 소녀를 성폭행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된 처지다. 스위스에서 온 정신분석학자는 청년..

딸기네 책방 2012.08.24

호주의 '도둑맞은 아이들'과 케빈 러드 총리의 사과

한참 동안 우파 보수당이 정권을 잡고 있던 호주... 그러다가 2007년에 젊은 정치인 케빈 러드 (Kevin Rudd. 1957-)가 노동당을 이끌고 총선에서 승리, 정권교체를 이뤘지요. 그 뒤에 여러모로 신선한 뉴스들이 많이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 중의 하나는 2008년 2월 13일 러드가 "집권 전에 했던 약속을 실천에 옮기겠다"고 발표했던 일입니다.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s)’라 불리는 호주 원주민들에 대한 사과가 그 약속이었습니다. ‘도둑맞은 세대’는 원주민 피가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을 잃고 강제 위탁 속에 자라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호주 정부는 원주민들을 백인 문화 속에서 키워야 한다며 이들을 가족과 부족사회로부터 억지로 떼어내 위탁시설이나 백인 위탁가정에..

모런트 베이 폭동

1865년 10월 11일 영국의 식민지였던 자메이카 동부의 모런트 베이에서 폴 보글(Paul Bogle)이 이끄는 흑인 남녀 200~300명이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이 모런트 베이 폭동 Morant Bay rebellion 은 자메이카 역사의 분기점이 됐으며, 영국에서도 거센 정치적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영국에는 자메이카 등 카리브 지역에서 온 흑인들이 많지요. 얼마전 벌어진 '런던폭동'에도 자메이카계 이민자 가정 출신 젊은이들이 많이 가담했다고 합니다). 오늘날까지도 이 폭동의 성격은 논란거리로 남아 있으며 흑인노예사와 식민지 연구의 주제로 자주 인용됩니다. 폭동을 이해하려면 먼저 당시 자메이카 흑인들의 처지를 살펴봐야겠죠. 1834년 영국에서 노예해방법(Emancipation Act)이 통과됨에 따..

인종주의에 대한 책들

인종주의라는 주제 자체를 전면에 내세워 분석한 책들이 국내에 많이 출간돼 있지는 않다. 박경태의 《인종주의》(개념사, 2009)는 인종·인종주의의 정의와 역사를 소개한 책으로, 한국 사회에서의 다문화주의 논의와 인종주의적인 양상 등을 덧붙였다. 폴 C. 테일러의 《인종: 철학적 입문》(강준호 옮김, 서광사, 2006)은 인종주의의 철학적 측면을 다루면서 인종주의-반인종주의 사이의 윤리학을 다루고 있다. 인종주의가 힘을 발휘하는 양상은 매우 다양하다. 때로는 특정 인구집단에 대한 노골적인 학살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를 띠기도 하지만, 계급적-성적-지리적 차별구조 속에 뒤섞여 있어 골라내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인종주의의 얼굴과 그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차별구조들을 다룬 다양한 책들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아침을 열며] 우리를 돌아보게 한 '작은 뉴스들'

지난달 경기 성남의 시내버스 안에서 외국인 남성이 한국 노인을 폭행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지하철 패륜남, 개똥녀 등 비슷한 사건들이 하도 많으니 이제 이런 종류의 소동은 웹에선 일상이다. 하지만 이번엔 가해자가 ‘흑인남성’이라는 점때문에 시끄러웠다. 언론들은 “거구의 흑인남성이 한국 노인을 폭행했다”며 피부색을 강조했고, 네티즌들은 ‘무례한 흑인’을 욕했다. 이어진 보도에 따르면 이 흑인은 “shut up”하라는 노인의 말에 화가 났고, 뒤이은 노인의 한국말을 흑인비하 발언으로 오해해 폭행했다는 거였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논쟁이 붙었다. 한국에서 흑인이 얼마나 적대적이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왔을지 짐작이 간다, 그렇다고 노인을 때리는 게 정당화되느냐, 영어 같지도 않은 영어 쓰는 흑인은 나가라..

런던 소요, '마이너리티 충돌'로 가나

영국 소요사태가 벌써 엿새 째... 10일 새벽 버밍엄에서 상점을 약탈하려던 것으로 보이는 흑인 남성이, 경비를 서고 있던 파키스탄 청년 3명을 차로 들이받아 숨지게 만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버밍엄은 아시아계 주민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중 하나인데 소수민족 간 충돌과 복수극으로 자칫 비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8일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온 유학생이 런던 북부 해크니에서 폭력배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에 거주하는 아시아계라고 하면, 대개는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계와 파키스탄계입니다. 이들은 영국 내에서 소수민족으로서 카리브·아프리카계(즉 흑인들)와 마찬가지로 일자리 차별 등에 맞서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1992년 로드니킹 사건으로 촉발된 미국 로스앤젤레스 흑인 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