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일기 48

장자일기/ 이해득실에 무관

이해 득실에 무관 24. 설결이 말했다. ‘스승께서는 이로움과 해로움에 무관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至人은 이로움이니 해로움이니 하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까?’ 왕예가 대답했다. ‘至人은 신령스럽다. 큰 늪지가 타올라도 뜨거운 줄을 모르고, 황하와 한수가 얼어붙어도 추운 줄을 모르고, 사나운 벼락이 산을 쪼개고 바람이 불어 바다를 뒤흔들어도 놀라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구름을 타고 해와 달에 올라 四海 밖에 노닐지. 그에게는 삶과 죽음마저 상관이 없는데, 하물며 이로움이니 해로움이니 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聖人의 경지 25. 瞿鵲子(겁 많은 까치 선생)가 長梧子(키다리 오동나무 선생)에게 물었다. ‘내가 큰 스승 [공자님]께 들었네만, 성인은 세상 일에 종사하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거나 손해를..

장자일기/ 사람과 미꾸라지

사람과 미꾸라지 23. 자네에게 묻겠네. 사람이 습지에서 자면, 허리가 아프고 반신불수가 되겠지. 미꾸라지도 그럴까? 사람이 나무 위에서 산다면 겁이 나서 떨 수밖에 없을 것일세. 원숭이도 그럴까? 이 셋 중에서 어느 쪽이 거처(居處)에 대해 바르게 안 것일까? 사람은 고기를 먹고, 사슴은 풀을 먹고, 지네는 뱀을 달게 먹고, 올빼미는 쥐를 좋다고 먹지. 이 넷 중에서 어느 쪽이 맛을 바르게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원숭이는 비슷한 원숭이와 짝을 맺고, 순록은 사슴과 사귀고,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놀지 않는가. 모장(毛嬙)이나 여희(麗姬)는 남자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하지만 물고기는 보자마자 물 속 깊이 들어가 숨고, 새는 보자마자 높이 날아가버리고, 사슴은 보자마자 급히 도망가 버린다. 이 넷 중에서 어느..

장자일기/ 요 임금과 세 나라

요 임금과 세 나라 21. 엣날에 요 임금이 순 임금을 보고 말했다. ‘내가 종(宗), 회(膾), 서오(胥敖) 세 나라를 치려 하오. 내가 왕위에 오른 후 [이 나라들이] 마음에 걸려 꺼림칙하니 웬일이오.’ 순 임금이 대답했다. ‘이 세 나라의 왕들은 아직도 잡풀이 우거진 미개지에 살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꺼림칙해 하십니까? 전에 해 열 개가 한꺼번에 나와서 온 세상을 비춘 적이 있습니다만 임금님의 덕을 비춘다면 어찌 해 같은 데 비길 수 있겠습니까?’ 갑자기 요순이 나와 이상하다 했는데, 워낙 이 문장이 여기 있는 것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고 한다. 요 임금이 순 임금의 말을 듣고 미개지에 살던 세 나라를 너그러이 용납해주고 해같은 은덕을 비춰주었다면 잘 된 일이겠지만. 앎과 모름 22. 설결(이빨 없..

장자일기/ 道에는 경계도 이름도 없다

道에는 경계도 이름도 없다 19. 사실 도에는 경계가 없고 말(言)에는 실재가 없다. 말 때문에 분별이 생겨나는데 이 분별에 대해 말해 보기로 하자. 왼쪽(左)과 오른쪽(右), 논의(倫)와 논증(義), 분석(分)과 변론(辯), 앞다툼(競)과 맞겨룸(爭) 등이 있는데 이를 일러 여덟 가지 속성이라 하지. 성인들은 우주 밖에 있는 [초월적인] 것에 대해 존재 정도는 이야기하지만, 논의하려 하지는 않는다. 성인들은 세상 안에 있는 [내재적인] 것에 대해서도 논의하기는 하지만 논증하려 하지는 않는다. 또 역사적인 기록과 선왕들의 역대기에 대해 논증하기는 하지만 변론하려 하지 않는다. 분석하려 해도 분석할 수 없는 것이 있고, 변론하려 해도 변론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왜 그럴까? 성인들은 [도를] 마음속..

장자일기/ 털끝과 태산

털끝과 태산 18. 세상에 가을철 짐승 털끝보다 더 큰 것은 없으니 태산도 그지없이 작다. 갓나서 죽은 아기보다 오래 산 사람은 없으니 팽조도 일찍 요절한 사람, 하늘과 땅이 나와 함께 살아가고, 모든 것이 나와 하나가 되었구나. 모든 것이 원래 하나인데 달리 무엇을 더 말하겠느냐? 그러나 내가 모든 것은 하나라고 했으니, (내가 한 말의 대상이 생긴 셈이라) 어찌 아무것도 없어서 말을 할 수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라는 것과 내가 방금 말한 ‘하나’가 합하여 둘이 되었고, 이 둘과 본래의 하나가 합하여 셋이 된다. 이처럼 계속 뻗어가면 아무리 셈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그 끝을 따라잡을 수가 없을 것이니 보통 사람들이야 일러 무엇하겠나? 없음에서 있음으로 나아가도 이처럼 금방 셋이 되는데, 하물며 있..

장자일기/ ‘있음’과 ‘없음’

‘있음’과 ‘없음’ 16. 이제 말 한 마디 해보자. 이 말이 ‘이것’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같든지 다르든지 그것들과 한가지임이 분명하므로, 사실 그것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도 한번 말해보자. 17. ‘시작’이 있으면 아직 ‘시작하기 이전’이 있게 마련이다. 또 ‘아직 시작하기 이전의 이전’이 있게 마련이다. ‘있음(有)’이 있으면 ‘없음(無)’이 있게 마련이다. 또 ‘있음 이전의 그 없음’이 아직 있기 이전이 있어야 한다. 또 없음이 아직 있기 이전이 아직 있기 이전, 그것이 아직 있기 이전의 없음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데 갑자기 있음과 없음의 구별이 생긴다. 있음과 없음 중에 어느 쪽이 정말로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제 내가 뭔가 말했지만 이렇게 말한 것이 정말로 뭔..

장자일기/ 세 가지 지극한 경지

세 가지 지극한 경지 14. 옛 사람들 중에는 지혜가 지극한 경지에 이른 이들이 있었다. 얼마나 깊은 경지에 이르렀을까? 아직 사물이 생겨나기 전의 상태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 이것은 지극히 완전한 경지로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었다. 그 다음은 사물이 생겨나긴 했으나 거기에 아직 경계가 없던 상태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 그 다음은 사물에 구별은 있으나 아직 옳고 그름이 없던 상태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면 道가 허물어진다. 도가 허물어지면 욕망(愛)이 생겨난다. 그러나 이루고 허물어지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일까? 이룸과 허물어짐이란 따로 없는 것 아닐까? 15. 이룸과 허물어짐이 있다는 것은 소문(昭文)이 거문고를 타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룸과 허물어짐이 없다는 것은 소문이 거문고를..

장자일기/ 조삼모사(朝三暮四)

조삼모사(朝三暮四) 13. 사물이 본래 하나임을 알지 못하고 죽도록 한쪽에만 집착하는 것을 일러 ‘아침에 셋’이라 한다. ‘아침에 셋’이라 한다. ‘아침에 셋’이 무슨 뜻인가? 원숭이 치는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셋, 저녁에 넷을 주겠다’고 했다.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러면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겠다’고 했다.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명목이나 실질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원숭이들은 성을 내다가 기뻐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옳고 그름의 양극을 조화시킨다. 그리고 모든 것을 고르게 하는 ‘하늘의 고름(天鈞)’에 머문다. 이를 일러 ‘두 길을 걸음(兩行)’이라고 한다. 원래 열자(列子)에도 있는 얘기라고 하고 워낙 많이 알..

장자일기/ 손가락과 말

손가락과 말(馬) 11. 손가락이 손가락을 가지고 그 손가락이 손가락이 아님을 밝히는 것은 손가락 아닌 것을 가지고 손가락이 손가락 아님을 밝히는 것보다 못하다. 말을 가지고 말이 말 아님을 밝히는 것은 말 아닌 것을 가지고 말이 말 아님을 밝히는 것보다 못하다. 하늘과 땅도 하나의 손가락, 만물도 하나의 말. [일반적으로] 되는 것을 일러 됨이라 하고 되지 않는 것을 일러 되지 않음이라 한다. 길은 다녀서 생기고 사물도 그렇게 불러서 그렇게 된다. 어찌해서 그렇게 되는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찌해서 그렇지 않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고 하니까 그렇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물에는 본래 그럴 까닭이 있고, 그럴 가능성도 있지. 그렇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고, 그럴 수 없는 것도 하나도 없..

장자일기/ 이것과 저것

‘이것’과 ‘저것’ 10. 사물은 모두 ‘저것’ 아닌 것이 없고, 동시에 모두 ‘이것’ 아닌 것이 없다. 자기를 상대방이 보면 ‘저것’이 되는 줄을 모르고, 자기가 자기에 대한 것만 알 뿐이다. 그러기에 이르기를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은 ‘저것’ 대문에 생긴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이것’과 ‘저것’이 서로를 생겨나게 한다는 ‘방생(方生)’이라는 것이지.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됨이 있기에 안 됨이 있고, 안 됨이 있기에 됨이 있다. 옳음이 있기에 그름이 있고, 그름이 있기에 옳음이 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일방적 방법에 의지하지 않고 [전체를 동시에 볼 수 dT는] 하늘의 빛에 비추어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를 그렇다 함(因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