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82

2010 위기의 유럽

올해 유럽은 한 마디로 ‘위기’였습니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유럽의 금융중심지였던 영국, 그리고 복지국가로 명성을 날렸던 아이슬란드가 타격을 입은 것이 2년 전이죠. 그 뒤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타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유럽은 유독 심했습니다. 그리스와 아일랜드가 긴급 구제금융을 수용하고 다음 순서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거론되는 등 경제위기 여파로 유로권 전체가 흔들거린 한 해였습니다. 재정위기 발단이 됐던 그리스 사태 2009년 10월22일 신용평가사 피치가 그리스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A→A-)했습니다. 긴 협상 끝에 유럽국들이 그리스에 재정긴축안을 강제하는 대신 구제금융을 내주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 재정적자가 GDP 대비 13%를 웃돈다는 집계가 나오면서 사태가 ..

거리로 나선 프랑스 고교생들

오늘 국제부 기사창고를 뒤지다 보니... 프랑스에서 고교생들이 가두시위에 나섰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최민영 기자의 글에 따르면-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프랑스 노동계의 총파업이 현지시간 14일로 3일째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프랑스 전역에서 수만 명의 고교생들이 처음 가두시위에 동참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은 셈입니다. 아직 사회생활에 뛰어들 나이가 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 노동자들과 연대를 하겠다고 거리로 나온 것인데요. 심각한 청년실업과 사회보장제도의 약화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는 겁니다. 프랑스 전국학생연합(UNL)은 1100개 고등학교가 이번 총파업에 동참했으며 이중 700곳에서 수업이 중단됐다고 밝혔습니다. 남부 툴루즈에서 1만명, 보르도 70..

세계 어디서나 괴로운 난민들

난민촌이라는 말 자체가 ‘수난을 당한 사람들’을 모아놓은 마을이라는 뜻인데, 난민촌 자체를 공격하거나 2차적인 재난을 퍼붓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난민촌의 어린이들이 극도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유엔이 경고를 했네요. 유엔 특별조사관 라디카 쿠마라스와미는 14일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난민촌 어린이들에 대한 보호조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습니다. 쿠마라스와미 조사관은 “특히 아프리카 동부 수단과 차드, 중부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난민촌 어린이들이 심각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면서 무장조직들이 난민촌에 들어가 궁핍한 어린이들을 소년병으로 데려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수단, 차드에는 다르푸르 분쟁 피란민들의 난민촌이 몰려 있고, 민주콩고에는 북·동부 국경지대 유..

사르코지 "집시 나가라"

프랑스의 우파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집시들한테 칼을 빼들었습니다. 시작은 지난 19일의 추방 조치였지요. 프랑스 정부는 지난달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치안불안을 불법 이민자들 탓으로 돌리며 단속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19일 파리와 리용 등지에서 집시들을 붙잡아 90명을 출신국인 루마니아로 내보냈습니다. 20일에도 132명을 추방했고, 26일에 다시 루마니아로 집시 169명을 내보낼 계획이라고 합니다. 집시들은 추방령을 받으면 한 달 안에 떠나야 합니다. 그동안에는 집시들한테 생활보조금을 줘왔던 모양인데 사르코지의 강경 조치에 따라 보조금도 중단되고 출신국가로 송환 당하게 됐습니다. 루마니아로 돌아가는 집시에게는 300유로 정도씩을 지급한다고 합니다. 45만원 정도 쥐어주고 내보내는 셈이네요..

독립언론 반세기 접고 '좌파 컨소시엄' 대주주로 맞은 르몽드

극심한 경영위기에 몰렸던 프랑스의 대표적인 신문 르몽드가 28일 좌파 성향 기업인들로 이뤄진 컨소시엄을 새로운 주인으로 맞게 됐습니다. 독립언론 르몽드의 신화는 반세기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르몽드는 28일 경영감독위원회 회의를 열어 라자르 투자은행 최고경영자 마티외 피가스, 이브생로랑 패션하우스 창업주인 피에르 베르제, 인터넷사업가 자비에 니엘로 구성된 컨소시엄을 대주주로 맞기로 결정했습니다. 프랑스텔레콤의 자회사 오랑주, 프랑스의 미디어그룹인 누벨 옵세르바퇴르, 스페인 미디어그룹 프리사도 르몽드에 눈독을 들였으나 르몽드의 주주인 기자들과 임직원은 베르제-피가스-니엘 컨소시엄을 택했습니다. 3자 컨소시엄은 르몽드에 1억유로(약 15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긴급수혈되는 투자자금 대부분은 르..

200여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마오리 전사들의 미라

해외 ‘약탈 문화재’를 되돌려주는 데에 극히 인색했던 프랑스가 뉴질랜드 마오리족 전사들의 미라를 반환하기로 마침내 결정했습니다. 200년 넘게 머나먼 대륙을 떠돌던 미라들은 드디어 고향으로 되돌아가게 됐습니다. AFP통신, BBC방송 등은 프랑스 하원이 4일 마오리 전사들의 머리로 만든 미라들을 뉴질랜드로 반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채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원은 이날 법안을 표결에 붙여 찬성 437, 반대 8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습니다. 프랑스가 특정 소장품목 전체에 대해 반환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요. 의회 입법으로 이어진 것도 최초랍니다. ‘토이모코’라 불리는 마오리족 전사들의 머리 미라는 18~19세기 뉴질랜드를 약탈한 영국·프랑스 등 서양 ‘탐험가’들의 주요 거래품목이었습..

두바이 암살, 그리고 모사드

지난달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서 일어난 하마스 지도자 마흐무드 알 마부흐 살해사건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습니다. 두바이 경찰이 영국 등 유럽 여권을 소지한 11명의 암살단 소행이라는 수사결과를 밝히자 영국은 이스라엘 측의 여권위조를 의심하고 나섰네요. 외교마찰로 비화되자 이스라엘 내에서도 모사드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19일 런던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소환, 두바이 살해사건과 관련된 여권 위조 문제를 추궁한 뒤 이스라엘 측에 수사에 적극 협력할 것을 요구했다고 BBC방송 등이 보도했습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전날 이 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지시했지요. 앞서 두바이 경찰은 알 마부흐 살해용의자 11명 중 6명은 영국, 3명은 아일랜드, 나머지 2명은 각각 프랑스와..

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인가 -약탈문화재에 대한 쉬운 해설서

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인가 이보아 저 | 민연 약탈 문화재 논란에 대해 쉬우면서도 개념 있게 설명한다. 엘긴 마블스, 로제타스톤으로 시작되는 고대 유적·유물, 나치의 치밀한 문화재 약탈·파괴공작, 약탈 문화재를 둘러싼 ‘문화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대립, 그리고 외규장곽 도서를 비롯한 한국의 빼앗긴 문화재 실태와 반환운동에 대해서까지 폭넓게 다뤘다. 약탈 문화재 그림들과 유명 박물관에 대한 설명들이 곁들여져 있어 읽을거리 겸 볼거리가 된다. 단점이 있다면, 저자가 자기 박사논문을 풀어서 좀 손쉽게 책으로 만들었다는 느낌. 어떤 때는 ‘보론’ 해가면서 학술서적 쓰듯이 했고, 어떤 때는 ‘미술 읽어주는 여자’ 식으로 편안히 썼다. 그래도 내용은 꽤 알차고 좋다. 파르테논 신전은 13세기엔 그리스 정교회,..

딸기네 책방 2010.02.01

부르카엔 반대하지만...

또 부르카 얘깁니다. 유럽에서 이슬람을 상징하는 종교적 요소들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습니다. 스위스가 모스크의 첨탑(미나레트)을 금지시키기로 한데 이어(이건 증말 웃기는 결정이라고 봅니다), 프랑스가 이슬람 머리쓰개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부르카 금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보편적 인권과 프랑스적 가치”를 옹호하는 반면, 무슬림 국민들은 “마이너리티(소수) 문화에 대한 핍박”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의회 산하 특별조사위원회는 26일 “얼굴을 포함한 전신을 다 가리는 부르카는 우리 공화국의 가치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라면서 “모든 병원·학교·관공서와 대중교통시설 등 공공장소에서 부르카 착용을 금지시킬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습니다. 일명 ‘부르카위원회’로 불리는..

어제의 오늘/ 자유의 시인, 엘뤼아르 숨지다

“하늘이 나를 버렸을 때, 나는 불을 만들었다/동지가 되기 위한 불/겨울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불을.”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사람인 폴 엘뤼아르는 사랑과 열정의 시인, 그리고 ‘정치적인 시인’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평을 듣는다. 엘뤼아르는 1895년 파리 북쪽 생드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외젠 에밀 폴 그랭델. 태어난 곳은 노동자 거주지역이었으나 엘뤼아르 자신은 회계사 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라났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폐결핵으로 공부를 중단했고 스위스의 산골마을 다보스에서 요양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소년의 영혼에 시적 감수성이 새겨진 것은 1911~13년 요양소에서였다. 보들레르, 아폴리네르 등 프랑스의 시인들과 휘트먼을 비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