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14

48. 냉전 시기의 동유럽

48. 1948-1991년의 동유럽 흑... 이제는 '가물에 콩 나듯'도 아니고... 근 반년 만에 정리하네요. 대체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시리즈, 그러나 어느새 20세기의 뒤쪽 절반으로 후딱 넘어왔습니다! 1943년 히틀러의 나치 독일, 그리고 독일에 점령된 동유럽은 동부 전선의 스탈린그라드와 쿠르스크에서 막대한 전력을 앞세운 소련군에 패하며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1944년이 되자 나치 제국의 붕괴는 가속화됐습니다. ‘붉은 군대’는 독일 군을 소련 땅에서 폴란드로 몰아냈습니다. 서부전선에서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역시 독일 군이 밀리고 있었습니다(201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 기념식이 떠오르네요. 프랑스에서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열렸는데, 옛 동맹국이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문제로 사이가..

44, 트란실바니아를 둘러싼 헝가리와 루마니아의 갈등

44. 트란실바니아 문제 43회 올린 지 석달이 지났네요. 이럴 수가. (이건 제가 게으른 게 아니라 시간이 너무 빨리 가기 때문이라고 우겨봅니다;;) 이리하여 이 동유럽 연재는, 정리해 올리는 저조차 매번 앞의 내용을 다시 읽어봐야 하는 건망증 유발 시리즈로 전락해버렸... 아무튼 다시 기억을 되새겨 보지요. 땅 빼앗기고 등 떼밀려 '민족국가' 된 헝가리 헝가리는 트리아농 조약으로 빼앗긴 ‘역사적인 영토’들을 빼앗겼고, 마자르 민족주의자들은 이 때문에 분통이 터졌습니다. 그들은 베르사유에서 이 문제를 들고 나와 국제사회의 이슈로 만들어 조약 재협상에 들어가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또 국제연맹의 소수민족문제 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계속 제기했으며 국제사회를 압박하기 위해 여러 언론들에도 호소를 했습니다. 위..

42. 땅 빼앗기고 등 떼밀려 '민족국가' 된 헝가리

42. 트리아농 조약 이후, 1920-1939년의 헝가리 동유럽사에서 틈틈이 등장하는 트란실바니아... 이 지역이 어디인지 대충 감을 잡으시려면 이 '상상여행'의 첫 회, '동유럽이란'을 참고하시고요~ 다뉴브강 유역의 드넓고 비옥한 땅, 트란실바니아는 늘 여러 세력의 먹잇감이 됩니다. 1916년 루마니아인들은 트란실바니아를 공격했다가 소득도 없이 물러섰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패배를 한 탓에 그들은 통 목소리를 내지 못하다가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무너지면서 다시 기회를 잡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트란실바니아를 집어삼킨 루마니아 루마니아는 트란실바니아 공국을 공격, 이번에는 큰 저항 없이 점령했습니다. 트란실바니아 공국 안에 있던 루마니아계 민족주의자들이 아예 나라를 루마니아에 갖다 바친 꼴이..

40. 1차 세계대전 시기의 동유럽

40. 1차 세계대전 시기의 동유럽 7월 28일이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100년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요즘 1차 대전에 대한 외신들을 종종 접하게 되네요. 유럽 사람들은 어떤 눈길로 100년 전의 전쟁을 되돌아보고 있을까요. 1차 대전. 세르비아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계승자였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암살하면서 시작됐다고들 하지요. 전쟁을 불러온 '사라예보의 총성'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합니다만, 초간단 설명으로 요약하자면...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장차 물려받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점령통치하고 있었고,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는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자기네를 탄압한다며 독립국가인 세르비아와 합쳐서 자기네 민족의 나라를 만들고 싶어했고, 그래..

36. 1908년의 발칸

36. 1908년의 발칸 1860년대 서유럽의 영향을 받은 오스만 투르크 내 개혁파들이 전통적인 제국 운영방식과 술탄의 허울뿐인 개혁을 비판하며 민족주의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술탄의 탄압을 받아 곧 해외로 추방됐습니다. 1902년 이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청년투르크 Jön Türkler’라는 이름의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청년투르크 조직은 이내 두 파벌로 갈렸습니다. 한 쪽은 투르크족 중심으로 오스만 제국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다른 한쪽은 제국 내 모든 신민(臣民)들이 민족에 따라 자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분권화를 주장했습니다. 파리에서 청년투르크가 정치토론을 하고 있을 동안 마케도니아에서는 투르크 장교들이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제국 전역에 흩어져 있던 장교들은 테살로..

33. 저물어가는 합스부르크, 헝가리와 '대타협'을 하다

33.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대타협(Austro-Hungarian Ausgleich) 유럽 민족주의의 부상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봉건적인 합스부르크 치하의 오스트리아 제국에는 암운이 드리워졌습니다. 오스트리아는 1848-49년의 격변을 간신히 헤치고 나오기는 했지만 이 성공은 합스부르크가 민족주의자 그룹들을 이간하고 내분을 일으켜 간신히 얻어냈던 것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돼 있어, 반 제국 세력들이 단합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에 가서 봉건적인 제국을 밑바닥에서부터 흔든 것은 합스부르크 왕조 내 비 독일계 가신들의 반발이 아니라, 독일계의 민족주의였습니다. 19세기, '민족주의의 시대' 동유럽의 변화 1848-1849년 오스트리아 제국을 휩쓰는 혁명의 물결 자유주의-민족..

32. 1848-1849년 오스트리아 제국을 휩쓰는 혁명의 물결

32. 1848-1849년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일어난 혁명들 1848-49년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연달아 혁명이 일어납니다. 그 씨앗을 뿌린 것은 요제프2세 Joseph II (1780-90년 재위)였습니다. 요제프는 다른 유럽의 왕실들처럼 지리적으로 통일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비엔나 중앙정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조치들을 취했습니다. 그 중에는 독일어를 제국의 행정에 쓰이는 공식 언어로 만드는 것도 들어있었습니다. 이것이 제국 내 비독일계 국민들의 반작용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민족'의 시대... 민족을 구성하는 핵심 중의 하나가 바로 '언어'죠. 귀족들과 지식인들은 지방분권과 전통문화를 강조하며 반발했습니다. 요제프가 죽자마자 그가 취했던 조치들은 다시 무효로 돌아갔습니다. 오히려..

26. 합스부르크가, 동유럽의 '새로운 태양'

26. 16-17세기 합스부르크가의 부상 어릴 적 읽은 순정만화나 역사책에 많이 나오던 합스부르크.... 꽤나 오랜 기간 유럽을 지배했던 왕실이죠. 합스부르크가가 형성된 것은 11세기 무렵. 합스부르크가는 14-16세기 중·동부 유럽의 패권을 놓고 경쟁한 여러 왕가들 중에서는 시기적으로는 마지막으로 부상한 세력입니다. 원래 합스부르크가는 신성로마제국 시절 오늘날의 스위스 동부 일대에 봉토를 갖고 있던 독일계 귀족 가문 중 하나였는데, 영주들 중에서도 무명인 축에 속했다고 합니다. 이 가문이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273년 루돌프 백작 Rudolf I 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1273-91년 재위)가 되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 독일의 선거후들은 루돌프가 특출난 인물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그를 황..

22. 나라를 넓힌 폴란드와 '야기에워 체제'

22. 14-15세기 폴란드의 팽창 오늘은 14~15세기 폴란드로 가봅니다. 이 시기에 폴란드는 정치적으로 그럭저럭 안정됐고, 문화적으로도 번영을 구가합니다. 하지만 북쪽에 걱정거리가 있었으니... 발트 해 연안에서부터 내려오는 튜턴 기사단과 점점 늘어나는 독일계 이주민 집단으로 인해 혼란이 조금씩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독일계 이주민이 세력화하면서 폴란드의 포메라니아(폴란드어로는 Pomorze- 여기를 참고하세요) 통치권을 위협했을 뿐 아니라, 폴란드 내륙에서 발트 해로 접근하기도 점점 어려워지게 됐습니다. 갈수록 강해지는 튜턴 기사단과 폴란드인들 사이에 14세기 내내 충돌이 심해졌지만 폴란드 정부는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름이 예쁜 포메라니아... 이런 곳이로군요 ^^ 지도, 사진..

19. 14세기, 체코의 카를 대학이 세워지다

19. 14세기 중반의 동유럽 다시, 가물에 콩나듯 업그레이드되는 동유럽 상상여행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아 쑥스러워라;;) 비잔틴의 후계자 격인 군소 국가들(이 나라들엔 미안하지만)이 등장, 서유럽에서 온 깡패 십자군을 몰아낸 것까지 얘기했지요. 그 시기 폴란드 보헤미아(체코) 등에선 각각 여러 왕들이 할거를 했고요. 그럼 체코로 다시 가볼까요. 바츨라프3세(1305-06년 재위)의 죽음으로, 1290년 바츨라프2세(1278-1305년 재위) 이래 폴란드 왕좌를 차지해온 체코계 프제미슬 왕조는 끝났습니다. 왕좌가 비자 보헤미아 귀족들은 룩셈부르크 공 요한(1310-1346년 재위)을 왕으로 선출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왕은 다시 한 번 귀족들에게 특전을 주는 헌장을 공표해야 했습니다. 당시 상설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