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16

[요르단]전쟁 시작, 암만에서

전쟁 시작, 암만에서 3.20. 암만. 이라크전쟁 개시와 함께,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요르단도 급격하게 긴장된 분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암만 시민들은 몇 달 전부터 침체를 겪어온 경제가 이번 전쟁으로 붕괴하지 않을까 걱정했으며, 미군을 지원한 것에 대한 이라크의 보복공격이 있을까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세이프웨이 수퍼마켓에서 만난 라지다는 "무슨 이유로든 전쟁을 하는 것은 나쁘다"면서 전쟁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했다. 반면 기독교도라고 자신을 소개한 잘랄은 "자국민을 죽이는 정권은 사라져야 한다"며 "사담 후세인은 제거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암만 시민들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지만,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비판적이었다. 경제적으로 보면 이미 암만은 수개월 ..

[요르단]국경 지대 난민촌에서

CNN 방송은 '불타는 바그다드'의 모습을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다. 불과 며칠전에 방문했던 바그다드가 폭격음과 화염에 휩싸여 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누가 바그다드를 저렇게 파괴하는가. 바그다드가 어떤 도시인가. 지구상에서 몇 안되는, 수천년의 문명을 간직해온 도시 아닌가. 바그다드는 사담 후세인만의 도시가 아니라 셰라자드와 알리바바의 도시, 카디미야의 황금돔과 알 주베이다의 탑을 가진 도시이기도 하다. 바그다드 시내에는 도시를 만들었다는 위대한 칼리프 아부 자파르 만수르의 거대한 두상(頭像)이 있다. 만수르는 자신의 도시가 저렇게 파괴되는 것을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을까. 미군의 바그다드 본격 공습이 시작된 뒤로 암만에서 만난 외국 기자들 사이에서 단연 화두는 '바그다드'였다. 폴란드 기..

[요르단] 살림 준비.

장기전 태세에 들어가다. 자발 암만 4써클(로마가 7개 언덕에 세워진 도시라고 하는 것처럼, 암만도 7개 언덕에 세워져 있다. 언덕을 '자발'이라고 하는데 자발 암만이니 자발 뭐시기니 하는 이름들이 붙어 있다)에 있는 대형 할인마트 세이프웨이에 들러서 마요네즈와 샌드위치 빵, 컵라면, 치즈, 소세지, 물통 등등을 샀다. 호텔에 돌아와서 빨래를 하고 기사를 대충 정리했다. 프레스센터에는 라가드 알 하디라는 24살짜리 아가씨가 있는데 진짜 귀엽다. 만나는 모든 사람과 수다를 떨고, 노상 웃는다. 깔깔깔깔. 내 프레스카드를 두고 왔다고 해서 제2 프레스센터가 있는 셰라톤 호텔까지 같이 차를 타고 갔다. 운전수(같은 공보부 직원)를 가리키면서 "koo, 이 사람이 로열 호텔 안에서 길을 잊어버렸대, 호텔이 너무..

[요르단]암만으로 '탈출'

아침도 못 챙겨먹고 짐을 싸들고 호텔에서 나왔다. 미국의 공습이 임박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바그다드의 긴장도가 하루하루 높아지고 있다. 주유소에 기름을 잔뜩 넣어두려는 차량들이 줄을 이었다. 풍요로운 것이라고는 석유 밖에 없는 이라크에서 시민들이 석유를 사기 위해 늘어서 있다니. 중산층 주민들은 전쟁과 함께 빈민들의 폭동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재산을 타지로 옮기고 있고 상점들도 상품을 창고에 집어넣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16일 미국, 영국, 스페인 3국 정상회담 소식이 전해진 뒤부터 시민들의 동요가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라크 정부는 시내 곳곳에 모래주머니를 쌓으며 참호를 만들고 있다. 대사관의 박웅철 서기관 말에 따르면 시내에 참호를 구축하는 것은 미군에 맞서 저항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요르단]페트라, 그리고 돌아오는 길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 요르단에 2박3일간 머물면서 '좋은 구경' 정말 많이 했는데, 여행기를 쓰다쓰다 지쳐서...제대로 곱씹을 여력이 없다. 요르단의 압권은 역시나 페트라였다. 인디애나 존스 1편을 찍었던 곳이라는데, 별로 가본 데는 없지만 앞으로 어디를 가든 평생 잊지 못할 곳이라고, 마음 속에 도장을 콱 박아놨다. 협곡을 사이사이 누비고 지나가면 바위틈새로 눈앞에 갑자기 어마어마한 크기의 암벽사원이 턱 허니 나타난다. 붉은 바위를 파들어간 석실이 있고, 윗부분은 앞면(facade)만 있는데 그 등장하는 방식이 가히 충격적이다. 협곡과 사막과 바위산이 섞여 있는 페트라는 너무나 대단하고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하루 종일 모래바람 마시며 입을 벌리고 다녔다. 페트라에 간 날, 이날 하루 동안 14km 정도를..

[이라크]암만에서 바그다드까지

요르단의 암만에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까지는 총 950km. 거의 대부분 사막으로 이뤄진 이 길을, GMC밴을 렌트해 달려가기로 했다. 밴의 운전사는 이라크 국경이 가까워오자 가게에 들러 바그다드의 가족에게 가져갈 물건들을 잔뜩 사들였다. 콜라와 초콜릿 따위를 하나 가득 실은 차는 요르단-이라크의 접경인 케라메에 도착했다. 허름한 단층건물로 된 입국심사장에 들어서 맨 처음 부닥친 것은 에이즈 검사였다. 에이즈를 '동성애자들의 죄악의 결과물'로 간주하는 이슬람권에서도 유독 이라크는 입국시 에이즈 검사를 위한 채혈을 의무화하고 있는 나라다. (지난해 세계에이즈 총회에서 이슬람권은 총회결의안에 동성애가 지탄받아야 할 도덕적 죄악임을 명시하자고 주장했었다. 북유럽 등의 거센 반발로 결이안에 그런 문구가 들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