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민주화 53

[라운드업] 연표로 보는 중동·북아프리카의 역사

▶ 서방 제국의 ‘중동 분할’과 아랍민족들의 투쟁 20세기 초반 중동·북아프리카의 역사는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와해의 역사'와 일치합니다. 수백년 동안 오스만을 넘보지 못했던 유럽은 늙고 쇠락해진 동방의 거대제국을 이리 뜯어내고 저리 뜯어내며 '땅따먹기'를 하지요. 아랍어/이슬람/오스만 지배지역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던(이란이나 쿠르드족 같은 예외는 있습니다만) 중동·북아프리카 이슬람권 국가들은 20세기 오스만 제국이 현재의 터키로 쪼그라드는 사이 서양 열강에 침탈당하고 갈갈이 찢긴 끝에,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들로 나뉘게 됩니다. [참고] 중동·이슬람에 대한 책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연표는 여기에 1906 모로코 통치권이 프랑스·스페인에 이양됩니다. 프랑스와 독일은 이집트..

시리아 상대 군사행동 들어가나... 비행금지구역 거론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결국 시리아에 대한 군사행동에 나설 것인가. 미국 정부와 의회, 나토 회원국들 사이에 시리아 대공방어망 파괴 등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시리아 정부가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의 위험성, 점점 커져가는 난민문제 등이 ‘행동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미군 유럽사령부의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사령관이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19일 “나토 회원국들이 만일에 대비한 군사작전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스타브리디스는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시리아 정규군의 제공능력을 없애기 위해 방공시설을 공습하는 방안을 나토국들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토는 2011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리비아를 공습, 비행금지구역으로 만든 ..

중동 최강의 군대라던 시리아군, 결국 무너지나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의 버팀목인 정부군이 무너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네요. 반군들이 이미 여러 지역을 손에 넣은 상황에서, 반격에 나서기는커녕 군대 충원도 못 하는 상황으로 전해졌습니다. 시리아 사태가 분기점을 맞는 걸까요. AP통신은 12일 “시리아 군이 탈영·전사 등으로 무너지고 있다”며 ‘병력 부족’이라는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친 것 같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조짐이 가시화된 것은 지난 10일입니다. 그랜드무프티(이슬람 대법관)인 아흐마드 하순이 국영방송에 나와 “시리아인들은 국제적인 음모에 맞서 나라를 지켜야 한다”며 정부군에 지원해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하순은 아사드 충성파로 정부가 임명한 최고위 성직자다. 그의 발언은 정부군이 숫자 부족으로 고전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틀 ..

미국은 여전히 독재자들 편

튀니지의 지네 벤 알리,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지금은 쫓겨났지만 과거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독재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들이죠. 얼마전 사망한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도 미국과 겉으로는 앙숙이었지만 물밑에서 거래하던 인물이었고요.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최근까지도 미국의 대테러전에 협력하면서 미국의 경제원조와 군사적 지원을 받았는데요. 미국이 입으로는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척하지만 뒤에서 독재정권을 지원해준 예는 너무나 많습니다. 심지어 ‘아랍의 봄’으로 중동·북아프리카 군사독재정권들이 타격을 입은 뒤에도 미국은 여전히 여러 곳에서 독재자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미국 외교잡지 포린폴리시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8곳의 독재정권에 대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America's Unsavory Al..

사우디 새 왕세제... '노인천하'네.

사우디아라비아 압둘라 국왕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압둘라 국왕의 이복동생인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내무장관이 책봉됐습니다. 지난 22일 술탄 전 왕세제가 지병으로 숨지면서 다음번 계승자가 공석이 됐고, 그 자리를 나이프 왕자가 메우게 된 겁니다. 술탄 전 왕세제가 맡고 있던 제1부총리직도 함께 이어받았습니다. 내무장관을 계속 할 것이기 때문에, 내무장관 겸 제1부총리 겸 왕세제가 되는 거지요.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의 차기 국왕이 될 나이프(Nayef bin Abdul Aziz Al Saud)... 나예프라고도 하고 나이프(Naif)라고도 하는데요. 1933년생입니다. 어릴 적에는 울라마라고 하는 이슬람 공동체에서 이슬람 지도자들로부터 전통 교육을 받았고요. 1953년에 리야드 주지사가 됐는데 이듬해 바..

카다피의 행방과 리비아 시나리오

리비아 반군이 격전 끝에 무아마르 카다피(69·아래 사진)의 요새인 바브 알 아지지야를 23일 점령했다. 그러나 카다피와 그 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 등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카다피의 행방과 향후 움직임은 리비아의 민주화 및 새 국가수립 전 과정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반군은 요새를 장악한 뒤 “그들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 “도망갔다”고만 밝혔다. 과도국가위원회 압델 하피즈 고가 대변인은 24일 로이터통신 등에 “카다피가 리비아 중부나 남부로 피신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외신들은 요새 지하의 ‘비밀터널’을 통해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카다피가 여성과 어린이들을 ‘인간방패’ 삼아 ‘호화벙커’에 숨어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서방 언론들의 추측일 뿐이다. 사실상의 과..

리비아 군사개입 '성공적', 국제사회 앞으로의 과제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리비아 군사개입은 트리폴리 함락과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축출이라는 ‘성공’으로 귀결되는 양상이다. 당초 나토군이 내세운 것은 벵가지 등 반군 지역 주민들에 대한 카다피 군의 대량학살을 막는다는 인도적 차원의 목적으로 국한돼 있었지만, 이런 ‘제한된 개입’ 덕에 오히려 가장 성공적인 인도적 군사개입 사례로 기록되게 됐다. ‘제한된 개입’ 성공사례 리비아 사태의 모든 과정에서 독재권력 축출을 주도한 것은 리비아 반정부세력이었다. 리비아 국민들이 총을 들고 ‘반군 부대’를 만들어 정부군에 맞서 피를 흘리고 과도국가위원회를 만들어 새로운 국가를 수립할 준비를 하는 사이, 서방국들은 공습이라는 외곽지원만 했다. 나토의 개입에는 절차적으로도 하자가 없었다. 리비아 반군을 대표하는 ..

무바라크, 법정에 나오다

지난 2월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에 밀려 30년만에 권좌에서 쫓겨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마침내 법정에 섰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누워 있습니다만... 무바라크는 부패, 시위대 진압 등 여러가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기소됐지만 건강악화를 이유로 카이로 시내 자택에 머물며 수감을 피했습니다.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였고요. 지난 4월 이후로는 홍해 휴양지 샤름 엘 셰이크의 병원에 주로 머물러 왔습니다. 무바라크의 장남 알라아, 차남이자 후계자로 꼽혔던 가말, 그리고 전직 내무장관 하비브 알 아들리 등도 함께 기소돼 재판을 받습니다. 무바라크는 혐의가 인정되면 최고 사형선고까지 내려질 수 있습니다. 가장 큰 관심사는 무바라크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낼까 하는 점이었는데... 법정에 나왔군요. 조금..

시리아에도 칼 뽑아들까

시리아 난민들이 터키로 탈출하기 시작했네요. 시리아 당국의 시위 유혈진압을 피해 122명의 시리아인들이 국경을 넘어 터키로 탈출해왔다고 터키 국영 아나톨리아통신이 오늘 보도했습니다. 넘어온 이들은 시리아 북부 터키와의 접경지대에 살던 사람들인데, 그중 30여명은 부상을 입어 터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한 명은 부상이 심해 사망했다고 합니다. 터키는 시리아 난민들이 대거 유입될 것으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요. 시리아 북부의 상황이 지금 어떤지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우려했던 난민 탈출이 시작된 걸로 보아 유혈충돌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위대와 정부군이 충돌한 시리아 북부 지스르 알 슈구르 지역에서는 정부군도 1명 숨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리비아에는 나토군이 인도적 개입 차원..

오바마 "이스라엘, 이젠 땅을 돌려줘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동평화정착 플랜을 발표했네요. 오바마가 2009년 취임하고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슬람권과의 화해를 설파했고 또 이란에도 화해의 손을 내민 적이 있지만 중동평화 문제, 즉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로드맵을 밝힌 것은 처음입니다. 오바마는 미국시간 19일 국무부 청사에서 연설하면서 “이-팔 양측간 국경선은 1967년 당시의 경계선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못박았습니다. 그러면서 “양측이 그 기준에 따라 서로 영토를 주고받는데 합의하면 분명하고 안정적인 국경선을 그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1948년 건국됐죠. 그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아랍계 주민들 수백만명이 난민이 되고 숱한 피해가 있었지만 어쨌든 이스라엘의 건국은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