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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공주 밍키와 추억의 마법소녀들

딸기21 2004. 10. 1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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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테레비 만화영화 안 좋아했던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특히 내 몇년 아래위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다른 오락거리가 거의 없는 형편에 텔레비전 만화 많이도 보았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아마도 나는 그중에서도 텔레비전 만화에 몹시 몰두해가며 보았던 축에 들지 않을까 싶다.

오늘 되돌아보는 것은, 요술공주의 테마. 다음은 내가 보았던 요술공주(혹은 변신소녀) 만화들에 대한 짤막한 소개다.

 

요술공주 새리.


요술공주 새리(魔法使いサリー 마법사 샐리)

촌스런 시대상황에 맞는 촌스런 화면, '꺼벙이' 수준으로 교훈적인 결말, 내용 단순 그림 단순 초단순 애니임에도 불구하고 요술공주라는 모티브의 원조가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에 남을만함.

요술천사 꽃분이(魔女っ子メグちゃん 마법소녀 메구짱)

이름만 들어도 우리는 이 애니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꽃파는 처녀' 의 주인공하고 이름이 같은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시대의 반영일 것이다. 물론 이건 일본 애니이지만 지금같으면 '꽃분이'라는 이름은 안 나왔을테니까. 솔직히 이 만화는 내용은 전혀 생각 안 나고 주제가만 기억난다. 요술천사 꽃분이, 착한 꽃분이 세상사람 가슴에 길이 남거라~~ ♪

 

꽃천사 루루


꽃천사 루루(花の子ルンルン 꽃의 아이 룬룬)

헤어스타일(일명 '그랜다이저 스타일')이 인상적이었음. 재미는 없었지만 반짝반짝 보석 모티브는 맘에 듦.


요술공주 밍키(魔法のプリンセス ミンキー モモ 마법 공주 밍키-모모)

완벽한 스토리 구조, 다소 엽기적인 분위기, 특히나 변신소녀에 남성팬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쇼킹한 '누드 변신'...

 

샛별공주


샛별공주(魔法の妖精 ペルシャ 마법의 요정 페르샤)

꽃미남 스타일의 '오빠들'이 나와서 몹시 열심히 봤던 만화. 파란 머리 휘날리던 샛별공주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생태적 자연주의적 감수성을 결합시킨, 변신소녀 만화의 수작.


꽃나라 요술봉(魔法のアイドルパステルユーミ 마법의 아이돌 파스텔유미)

이거 보느라고 자율학습 다 빼먹었을 정도. 나에게 '추억의 테레비 만화' 를 꼽으라고 하면 이 만화는 반드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수채화풍의 아름다운 그림, 과감하게도 테레비 만화에 '여백의 미'를 주었던 대담한 연출...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찾아서 쓰다듬어주기라도 하고 싶다. 

파스텔 유미

 

이거 첫회부터 한번도 안 빼먹고 봤었는데, 마지막회 하는날-- 역시나 자율학습 땡땡이 치고 집에 왔건만, 너무 일찍 튀었던 탓에 그만 초저녁잠이 들고야 말았다. 눈을 떴을 때에는 '어린이여러분~ 감사합니다' 어쩌구 하는 자막 나오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천사소녀 새롬이(魔法の天使クリィミーマミ 마법 천사 크리미-마미)

제반 작품의 아류작임이 분명하다.

카드캡터 체리(カードキャプターさくら 카드캡터 사쿠라)

사쿠라를 체리로 바꾼 국내 방송업계 여러분의 노력이 돋보인다. 요술공주의 현대식 버전, 타로 카드를 유행시킨 주범... 근데 난 이거 재미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상은 말 그대로 '촌평'이었고...

실은 밍키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냥 혼잣말이지만. 밍키는, 여러모로 내게 충격을 주었던 만화다. 세련된 그림, 완결성을 갖춘 스토리, 파스텔톤, 이런것들은 분명 '새리' 수준에서 질적 전화를 이룬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내가 이따금씩 생각을 하는 것은 밍키라는 만화가 소녀만화 치고는 꽤나 이상한 줄거리였다는 점이다.

밍키는 피나리아 왕국의 공주다. 피나리아는 한때 지구랑 샴쌍둥이처럼 붙어있었지만 지구인들이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탓에 우주 저 멀리 떠나가버린다. 그러니까 피나리아는 지구인들이 잃어버린 '꿈과 희망'이 간직된 잠재의식 같은 것이다.

 

요술공주 밍키


피나리아의 왕은 뚱땡이 난장이이고, 왕비는 메테르 몸매에 어른 밍키 얼굴을 한 미녀다. 그들의 딸은? 당근 밍키다... ^^;; 아무튼 왕은 밍키에게 지령을 내린다. 지구에 가거라, 가서 그들에게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찾아주거라... 왕의 곁에는 그 유명한 삐까번쩍 뺑뺑이가 있다. 밍키가 하나하나 과업을 완수할 때마다 이 뺑뺑이의 불이 한개씩 켜지고(이 때 왕은 뾰쪽~해져라, 뾰쪽~해져라 라는 황당한 구호를 외침) 피나리아는 지구에 다가간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인류 구원의 사명을 주고 내려보낸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티브를 그대로 닮았다. 뺑뺑이의 반짝이는 불은 12개다.

밍키가 지구의 부모에게 처음 찾아올 때의 방식은, 이 만화가 얼마나 독창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밍키는, 그저 인간의 기억의 빈틈을 이용해 소리소문없이 어느날 '등장해있다'. 바보같기로 소문난 지구의 부부에게는, 마치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처럼 딸 하나가 떡하니 생겨 있는 것이다. 그걸로 끝이다.

 

밍키 만화책.


이 만화는 특이하게도 죽음이라는 소재를 정면으로 다룬다. 긍정적 낙관적 유미주의적 아동만화의 틀을 여지없이 깨버리는 것이다.  다름아닌 주인공 밍키의 죽음을 예견케 하는 에피소드(공포스러웠던 '운명의 촛불' 씬)가 나왔을 때 어린 나는 그만 경악해버렸다. 이거야말로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깨뜨리는 쇼킹한 줄거리가 아닌가!

밍키는 교통사고로 확 죽어버린다. 이 만화의 마지막회는 지금도 머리 속에 선명하다. 밍키는 지구에 왔을 때처럼 바로 그렇게, 지구에 사는 부모와 친구들의 머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들은 밍키가 왔었다는 사실도, 사라졌다는 사실도 모른다. 기억이 새하얗게 지워진 것처럼. 눈물의 이별 따위 청승맞은 절차는 없다. 이 만화에는 어떤 신파도 없다.


그리고 밍키의 부모였던 이들은 딸을 낳는다. 이 아기가 태어난 뒤의 장면들에는 대사가 없고 음악만 있을 뿐이다. 상당히 긴 시간동안 뮤직비디오처럼 '그 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밍키(그리스도)의 희생(순교)을 바탕으로 재탄생한 어린 아기가 자라나 (밍키보다 훨씬 큰) 아가씨가 되고, 피나리아는 지구 곁으로 돌아온다. 두 개의 별 사이에 하늘다리가 이어진다. 피나리아가 어떻게 지구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결말로 보아서 지구인들은 밍키의 희생 덕에 꿈과 희망을 되찾았다.

...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애니메이션 밍키의 스토리인데, 사실은 전부 다시 태어난 아기 밍키의 꿈이었다는...

아무튼 당시 밍키를 볼 나이였던 어린 여자애들의 상식의 틀을 깨는 스토리, 죽음/섹시 등등 '어른스런' 코드들, 그리고 저 결말까지-- 밍키라는 만화는 지금도 내게는 '궁금증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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