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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에 가라앉은 '유러피안 드림'

딸기21 2009. 4. 2.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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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러피안 드림'을 꿈꾸던 아프리카 이주자들이 또다시 지중해에 폭풍우에 희생됐다.
리비아를 떠나 이탈리아로 가려던 밀항자들을 실은 이민선이 가라앉아 수백명이 사망·실종한 사건을 계기로, 목숨을 걸고 사막을 지나거나 바다를 건너는 불법 이주자들 문제가 다시 국제 이슈가 되고 있다. 국제기구들은 경제위기 때문에 빈국에서 부국으로 가는 불법이민 행렬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인도적 참사를 우려하고 있다.



지중해 작은 섬의 ‘난민 수용소’


리비아 항만당국은 지난달 31일 강풍에 뒤집혀 이민선들이 침몰한 것으로 알려진 트리폴리 북부 해상에서 생존자 구조와 시신인양 작업을 계속했으나 여전히 300명 이상이 실종상태이고, 해안으로 떠내려온 시신 23구를 수습하는데에 그쳤다고 밝혔다. 불법 이민자들을 싣고 불법 항해에 나선 밀항선들이 가라앉아 수많은 이들이 고기밥이 됐지만, 몇 명이 희생됐는지 확인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고 CNN 방송 등이 전했다.
밀항자들의 목적지는 시칠리섬 남쪽, 북아프리카 리비아 해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탈리아의 람페두사 섬이었다. 이 곳은 최근 몇년 새 유럽으로 가려는 아프리카인들의 중간 거점이 되고 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뒤 이탈리아 정부는 “불법이민자 단속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리비아와 우호협정을 맺으면서 불법이민자 공동단속에 합의했다. 이탈리아의 우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리비아에 밀항선들을 단속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 이탈리아 내무부는 이번 사건 뒤 “리비아측과 계속 협상해 5월 말까지는 밀항선들을 뿌리 뽑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뜻대로 될지는 알 수없다. 람페두사 섬의 밀입국자 수용소 2곳에는 현재 700명이 갇혀있고, 수용소에서 나와 유럽 본토로 갈 길을 찾는 사람들이 1500명이 넘는다.
지난해 북아프리카에서 람페두사로 들어간 사람은 3만6000명으로, 전년 1만7000명에 비해 급증했다. 이들은 수용소에 구금되지만 신분도 불확실하고 돌아갈 곳도 마땅치 않은데다 여비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당국은 일시 수용 뒤 사실상 무대책으로 풀어놓거나 난민 신청을 받아들여주는 수 밖에 없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UNHCR)은 31일 CNN방송 인터뷰에서 “목숨을 건 불법 이주는 북아프리카만의 국지적인 현상이 아니다”라면서 “분쟁, 박해,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서아프리카에서 카나리섬으로, 미얀마(버마)에서 태국으로, 터키에서 그리스 등으로 가는 이동의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론 레드먼드 UNHCR 대변인은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등 분쟁에 휩싸인 나라들에서 미국·유럽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전세계적으로 난민 신청자 수가 크게 늘었다”면서 “경제위기까지 겹쳐 빈국에서 부국으로의 이주 움직임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제이주기구(IOM)의 장-필리페 쇼지 대변인도 “경제위기로 선진국 이주자들이 보내오는 송금액이 줄면서 아프리카의 빈곤이 심해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불법월경을 시도하는 아프리카인들은 더욱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각국이 불법월경 단속을 강화하면서 과거에는 이용되지 않았던 더욱 위험한 루트들에도 이주자들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죽음을 부르는 ‘피의 루트’들

선진경제권으로 가기 위한 이런 루트들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아프리카 동부 소말리아나 지부티를 걸쳐 중동으로 가는 길이다. 동·남부 아프리카인들은 이 ‘아덴만 루트’를 통해 걸프 산유국으로 가 하층노동자가 되거나, 중동에 몇년간 체류한 뒤 다시 유럽으로 이동한다.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 사하라 사막을 넘어 리비아·모로코에서 선박을 타고 지중해를 건너는 사람들도 많다. 리비아에서 몰타 섬이나 이탈리아 섬들로 가는 것이 흔히 이동되는 경로다. 이번에 가라앉은 배들도 이 루트를 따랐다. 

리비아 내에는 100만~150만명의 아프리카계 불법 이주자들이 최하층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유럽으로 갈 날만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가나, 나이지리아, 니제르, 부르키나 파소 같은 서아프리카 빈국에서 온 사람들이다.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 북부로 가려면 죽음의 사막을 건너야 하지만 바닷길보다 이동 수수료가 싸다는 점 때문에 모험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서아프리카에서는 대서양 연안 스페인령 카나리섬을 거쳐 지중해의 지브롤터로 이동한 뒤 유럽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중앙아시아 루트’와 체코,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발칸 루트’, 말레이 해협을 지나는 동남아시아 이주자들의 ‘말라카 루트’ 등도 불법이주자들의 주요 이동경로다.


이런 노선들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피의 루트’들이다. 이주 희망자들은 보통 전재산을 팔아 밀입국 알선조직들에 돈을 주고 불법 월경을 시도한다.
몇해전 BBC방송이 이들 밀입국 조직들 문제를 조사한 결과, 이들은 이주자들로부터 적게는 1000유로에서 많게는 4000유로 가량의 ‘수수료’를 뜯어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주자들 상당수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아프리카 최빈국의 빈곤층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다.


밀입국 조직들이 이들에게 제공하는 운송수단은 낡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리비아 항만당국은 이번 침몰사고가 일어난 배의 경우 사실상 운항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낡은 배에 정원의 몇 배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탑승했다가 배가 가라앉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리비아 근해에서는 지난해 6월에도 150명이 수장(水葬)됐다. 올해 첫날에도 람페두사 근해에서 이주자들을 실은 선박이 침몰해 450여명이 구조됐다. 리비아 근해에서 지난 10년간 인양된 시신만 1만3000구에 이른다. 소말리아와 예멘 앞바다 아덴만도 숱한 밀항자들의 무덤이 되곤 한다. 유럽으로 가지 못하고 인신매매단에 속아 노예로 팔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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