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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바라크, 법정에 나오다

딸기21 2011. 8. 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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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에 밀려 30년만에 권좌에서 쫓겨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마침내 법정에 섰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누워 있습니다만... 

무바라크는 부패, 시위대 진압 등 여러가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기소됐지만 건강악화를 이유로 카이로 시내 자택에 머물며 수감을 피했습니다.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였고요.
지난 4월 이후로는 홍해 휴양지 샤름 엘 셰이크의 병원에 주로 머물러 왔습니다. 무바라크의 장남 알라아, 차남이자 후계자로 꼽혔던 가말, 그리고 전직 내무장관 하비브 알 아들리 등도 함께 기소돼 재판을 받습니다. 무바라크는 혐의가 인정되면 최고 사형선고까지 내려질 수 있습니다.



가장 큰 관심사는 무바라크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낼까 하는 점이었는데... 법정에 나왔군요. 조금 전 알자지라방송 보도를 보니, 샤름 엘 셰이크의 병원에서 군용기로 호송돼 재판이 열리는 카이로 시내 경찰학교로 왔습니다. 막 재판이 시작되어 알 아들리 내무장관 변호인이 휴정을 해달라 어쩌구 했고, 무바라크 순서는 아직 되지 않은 모양이네요.

무바라크 재판 / 알자지라 방송 Live Blog 


당초엔 83세 고령인 무바라크가 어떻게 해서든 법정에 서는 일만은 피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집트 군부와 과도정부 인사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워낙 거셉니다.
무바라크 체제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고 개혁은 지지부진하다는 불만 때문에 카이로를 비롯한 이집트 곳곳이 다시 시위의 물결로 덮이는 양상인데요. 무바라크를 법정에 세우는 편이 국민들의 반발을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국민들의 힘이 무바라크를 법정에 세우는 데에도 다시한번 힘을 발휘한 것이죠.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올해 초 카이로 시위 유혈진압 책임 여부입니다. 시위가 시작되고 무바라크가 퇴진하기까지 18일 동안 최소 840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것을 무바라크가 직접 지시한 것으로 드러나면 사형선고가 이뤄지겠죠.
하지만 그 명령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졌는지 입증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문서로 남겨놓았을 리는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당시의 유혈사태 때 시위대를 살해한 자들 중에는 유니폼을 입지 않은 괴한들, 무바라크 측의 사병이라든가 돈을 받고 움직이는 폭력배들 같은 자들이 많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합니다. 군·경 지휘계통에 따라 진압작전이 펼쳐진 것만도 아니기 때문에 규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무바라크는 “내가 무력을 쓰지 말라고 분명히 경찰에 명령했는데 그들이 지시대로 행하지 않았다”며 변호인을 통해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2006년 사담 후세인 재판의 경우는 재판이 1년 정도 갔는데요. 그 때는 후세인이 전쟁에 져서 도망쳤다가 붙잡힌 거였고 이라크 정부가 특별법정을 설치해서 그나마 속전속결로, 입증자료가 있는 학살사건을 골라내어 후세인의 유죄를 증명하고 상급재판 없이 바로 사형을 집행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논란도 굉장히 컸지만요. 
 
무바라크는 그런 식의 반인도범죄 특별법정에서 재판이 진행되는 게 아니라 현행법에 따라 절차가 이뤄지는 모양이네요. 오늘 공판에서는 인정신문으로 출두 사실 확인하고 공소장 읽고 피고인들이 혐의를 인정한다, 하지 않는다 밝히는 절차까지 밟는다고 합니다.
재판장인 아흐메드 레파아트는 현지언론들하고 인터뷰하면서 공판 기일을 연이어 잡아 빠른 시일 내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변호인들은 재판을 한달 정도 휴정해달라며 시간끌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당초에는 재판을 샤름 엘 셰이크에서 하려고 했다가, 비난에 밀려 카이로 시내 컨벤션 센터로 바꿨습니다. 하지만 치안 문제 때문에 다시 카이로 시내 경찰학교로 변경했습니다.
현장 주변에는 군·경 3000여명이 배치돼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고요. 600명이 재판정에 들어와 참관을 하고 있는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피고인들 주변에는 우리처럼 쇠창살을 쳐놨네요. 영어로 디펜던트 케이지, 피고인 우리라고 하는데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니 블랙코미디처럼 보입니다. 법정 밖에서 방금 전 잠시 소란이 벌어져서 10여명이 부상을 입고 10여명이 체포됐다고 알자지라가 보도했습니다.

경찰학교 주변에는 군중들이 모여서 역사적인 재판을 대형 스크린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무바라크 지지세력들도 섞여 있고요. 무바라크가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게 2월 11일 쫓겨난 이후 처음이기 때문에 이집트 내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부가 주도하는 재판이 과연 공정하게 진행될까요?

상당수 국민들은 재판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군부가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무바라크의 죄상이 과연 재판을 통해 낱낱이 밝혀지고 단죄가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자조감인 거죠.
무바라크가 또다시 아프다면서 들어가버리거나, 혹은 재판이 시작부터 지지부진하게 진행될 조짐을 보이면 시민들이 다시 격렬한 시위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이미 혁명의 진원지였던 카이로 시내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분노한 시위대가 계속 산발적으로 집회를 벌여왔습니다. 어제와 그제 이틀 동안 경찰과 군 병력이 광장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시위대를 몰아냈다고는 하는데요. 외신들은 카이로 시내가 지금 일촉즉발의 분위기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역사적인 재판입니다. 이로써 '아랍의 봄'에 또 하나의 매듭이 지어지겠군요.

리비아에서는 지금도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고, 시리아에서는 연일 사람들이 독재정권에 학살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시리아 상황은, 튀니지나 이집트의 혁명 당시 상황보다 훨씬 심각할 뿐 아니라 공습을 불러왔던 당시의 리비아 상황보다도 더욱 참혹합니다. 

그런데 튀니지 혁명 이후 반년 넘게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국제사회가 민주주의를 향한 중동·북아프리카 주민들의 열망에 무관심해지던 차였습니다. 무바라크 재판이 이들 나라 독재정권의 실상에 다시한번 관심을 환기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Egypt’s Mubarak at court to face historic trial /아랍뉴스
사우디아라비아 영자신문 아랍뉴스는 웹사이트 아래 구석탱이에 조그맣게 보도했네요 ㅎㅎ  


무바라크를 법정에 세운다는 사실, 노회한 독재자이자 중동 정세를 주무르던 권력자 무바라크가 초라한 범죄자로 법정에 서는 모습이 화면에 비쳐지는 것만으로도 중동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임팩트로 다가가겠지요. 아랍의 독재자가 국민들 손에 밀려나 법의 심판대에 선 첫 사례니까요.
브루킹스 도하센터연구소의 샤디 하미드 소장은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 “무바라크가 법정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 ‘정의가 살아있다’는 메시지를 준다”고 말했습니다. 중동의 다른 독재권력들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갈 것 같습니다. 어서 정신들 차려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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