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평전 Ho Chi Minh
찰스 펜 (지은이) | 김기태 (옮긴이) | 자인 | 2001-05-23
대체 이 책이 어디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것일까. 책꽂이에 꽤 오래, 적어도 몇 년간 꽂혀 있었다. 나는 그다지 공간이 넓지는 않지만 매우 너저분하고 뒤죽박죽인 내 책꽂이에서 적어도 이 책이 어느 위치에 놓여 있는지는 계속 파악하고 있었으니 그렇다면 최소한 내 관심권에는 있었다는 얘기인가. 아무튼 어디서 났는지, 돈 주고 산 것인지, 그랬다면 왜 샀는지, 누가 가져다준 것인지 통 기억나지 않는 이 책을 어제 꺼내들었다. ‘20세기 동남아시아의 역사’를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게 읽고 갑자기 동남아에 ‘꽂혀서’ 하늘색 가벼운 이 책, 그러나 가볍지 않은 한 인물의 일생을 담은 책을 펼쳤다.
“호치민의 인격이나 업적을 볼 때, 이상한 것은 마르크스주의나 레닌주의, 스탈린주의, 티토주의는 있는데 호(치민)주의가 없다는 사실이다. 생애 마지막 한 시기에 그가 숭배의 대상이 되었을 때 호산나를 외친 것은 거의 대부분 젊은이였다. 젊은이는 충성심도 변덕스러웠나보다. 아마도 호치민은 ‘주의’와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대표하는 것은 정치적 숭배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철학적 개념이다. 더 나은 표현이 없어서 우리는 그의 공헌을 ‘호치민적인 것’이라 부르기로 한다.” (99쪽)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영국이 처칠을 따랐고 미국이 루스벨트를 따랐던 것처럼 베트남은 호치민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호치민은 베트남 국민에게 있어서 처칠이나 루스벨트보다 위대한 영웅이었을 것이다. 그는 귀족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240쪽)
책은 가볍다면 가볍다. 호치민이라는 사람에 대해 나는 잘 모르고, 베트남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저자는 AP통신 기자였다고 하고, 2차 대전 때 미군 OSS(잘은 모르지만 ‘태백산맥’에서 김범우가 일했던, 그리고 최근 드라마 ‘서울 1945’에서 김호진이 분장하고 나온)에서 일했다고 한다.
저자는 호치민과 직접 접촉할 기회가 있었고, 베트남 문제에 직접 관여를 했었다고 하는데 책이 밀도가 있냐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평전이라고 하는데 치밀하지 못하고, 그대신 문체도 내용도 소탈하고 재미있다. ‘평전’이란 걸 읽게 되면 책의 주인공이 주는 느낌과 전기 스타일이 겹쳐지는데 이 책에서 주인공은 저자를 그다지 압도하는 것 같지 않다. 어쩌면 ‘호아저씨’도 저자도 스타일-문체에서 똑같이 소탈하기 때문일까.
호아저씨는 어릴적 고향을 떠났고, 프랑스에서 공산주의를 접했고, 민족해방 투쟁을 벌였고, 베트남의 국가원수가 됐고, 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났다. 고난과 영광의 길이라 하기엔 그의 생생한 행보와 생각의 여정이 잘 나와 있지 않다. 저자는 호아저씨가 남긴 글이 마오쩌둥처럼 많지 않고 젊은시절 호아저씨에 대한 기록도 별로 없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아마 사실이겠지.
결국 호아저씨는 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적어도 옷깃은 스친 것 같다. 베트남 사람들이 너나없이 그를 아저씨라 부르며 좋아했던 것처럼, 파리 사람들이 그에게 홀딱 반했던 것처럼 갑자기 나도 ‘호아저씨’가 따뜻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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