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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히말라야가 '제2의 남중국해'? 중국·인도 왜 싸우나

딸기21 2020. 6. 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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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에서 20일(현지시간) 우익단체인 비슈바 힌두 파리샤드(VHP·세계힌두협회) 회원들이 중국군과의 충돌로 희생된 인도 군인들을 애도하며 반중 시위를 열고 있다.  아마다바드|AP연합뉴스

 

인도 북부에서는 수십년 째 국경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카슈미르에서는 ‘통제선(LoC)’이라 불리는 위태로운 선이 파키스탄과의 사실상의 국경이다. 중국과는 무려 4060km에 걸쳐 경계를 맞대고 있다. 그러나 그중 3400km 구간에는 확정된 국경이 없다. 실질통제선(實際控制線·LAC)이라는 모호한 선이 있을뿐이다. 그 선을 사이에 두고 인도의 우타르프라데시, 히마찰프라데시, 시킴, 아루나찰프라데시 4개 주가 중국과 맞닿아 있다. 중국 쪽에서 보자면 티베트자치구가 인도와 접경하고 있다.

 

실질통제선 가운데 중국령 악사이친과 인도령 라다크 사이 구간은 분쟁이 계속돼온 지역이다. 갈등의 씨앗은 인도의 영국 식민통치 때 뿌려졌다. 1865년의 ‘존슨 라인’, 1899년의 ‘매카트니-맥도널드 라인’, 1914년의 ‘맥마흔 라인’ 등 영국 식민당국이 멋대로 주변국들과 협상해 그은 선들이 뒤죽박죽 얽혀, 독립 이후 인도가 불만을 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독립 후 1955년 ‘반둥 비동맹 회의’가 열릴 때만 해도 인도는 중국과 사이가 좋았다. 특히 중국의 저우언라이와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는 교분이 깊었다. 그래도 분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저우언라이가 1959년 네루에게 보낸 서한에서 갈등의 해법으로 통제선을 언급했지만 네루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분쟁이 격화돼 1962년 결국 두 나라 간 전쟁이 벌어졌다.

 

 

수십 년의 갈등과 오랜 협상 끝에 1996년 마침내 ‘인도-중국 접경지대 실질통제선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협정’에 양측이 서명했다. 현실적인 경계선을 인정하고, 실질통제선을 중심으로 폭 2km 지역에선 총이나 폭발물을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번 난투극 사태에 곤봉과 쇠막대기 등의 ‘전근대적인 무기’가 쓰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완충지대를 만들었다 해서 긴장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2013년에도 중국이 인도 쪽 추마르 지역 부근에 군사시설을 만들었다가 양국군이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인도는 그 해 중국이 100번 넘게 통제선을 넘었고 ‘비행물체’를 띄워보냈다고 주장했으나 인도 천체물리학연구소가 “금성과 목성이 밝게 비쳐보인 것”이라 정정해 체면을 구겼다. 그 해 10월 양국은 다시 협정을 맺고 분쟁을 누그러뜨리기로 합의했지만 4년 뒤 도클람(둥랑)에서 다시 양측 군대가 대치했다.

 

인도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 15일의 ‘난투극’은 1975년 이후 처음으로 사상자를 낳았다. 직접적인 이유와 상세한 상황은 밝혀지지 않았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인도의 수브라흐마니얌 자이샹카르 외교장관은 17일 통화하면서 “인도군의 교묘한 도발과 폭력적인 공격”, “중국 쪽에서 먼저 공격한 것”을 비난하며 공방을 벌였다.

 

충돌은 예고돼 있었다. 악사이친과 라다크의 경계를 이루는 갈완 계곡은 해발고도 4300m 이상의 고지대다. 인도는 중국이 갈완 계곡에 군사시설을 만들려 한다고, 중국은 인도가 멋대로 도로를 지었다고 불만을 표해왔다. 인도 측은 중국군이 지난달 수차례 실질통제선을 넘어와 막사를 쳤다고 주장한다. AP통신은 “서로 고함을 치고 돌을 던지던 상황이었고, 인도 방송들과 소셜미디어에는 이런 영상들이 계속 올라왔다”고 보도했다.

 

지난 18일 인공위성으로 촬영된 갈완 계곡의 모습. 이 지역에서 15일 중국-인도 군인들 간 충돌이 일어나 수십 명이 사망했다.  AP연합뉴스

 

직접적인 이유가 무엇이든 ‘힌두민족주의’를 내세운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정부 하에서 긴장이 고조될 수 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 채텀하우스의 개럿 프라이스는 미 NBC방송 인터뷰에서 “인도는 아시아에서 중국과 대등하게 비쳐지길 바란다”며 “인도가 생각하기에, 인도를 충분히 존중해주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바로 중국”이라고 말했다.

 

모디 정부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밀착한 것, 중국이 계속해서 파키스탄을 지원하는 것 등도 배경으로 거론된다. 17일 중국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인도 측의 오만함과 부주의함이 분쟁의 주된 원인”이라며 “최근 몇년 새 인도가 국경 이슈에서 거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미국은 인도에 구애를 하면서 인도 엘리트들의 오판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그러나 중국과 인도의 힘의 차이는 명확하다”고 썼다.

 

인도는 ‘중국의 남하’라는 맥락 속에서 이번 사건을 해석하며 경계하고 있다. 중국은 몇 년 새 남쪽의 아시아 국가들을 자극하며 갈수록 공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갈완 계곡이 ‘히말라야의 남중국해’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힌두스탄타임스는 중국이 “깡패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동중국해, 남중국해, 부탄·네팔 접경지대에서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다고 썼다. 신문은 “라다크는 남중국해가 아니다”라며 “중국 인민해방군이 갈완 지역으로 걸어들어오는 전략을 쓰고 있지만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는 인도군 고위 간부의 말을 전했다. 인도는 남중국해의 동남아 국가들처럼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17일(현지시간) 인도 북동부 스리나가르에서 라다크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중국 접경지대로 이동하는 군 병력이 가간기르 지역을 지나고 있다.  가간기르 AP연합뉴스

 

핵무기를 보유한 아시아 두 대국의 다툼은 역내 불안정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갈등이 더 격화돼 국지전으로 치달을 것 같지는 않다. 두 나라 모두 자제하며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에서 봉합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디 총리는 “단 1인치라도 우리 땅은 굳건히 지킬 것”이라고 했지만 동시에 “우리 땅에 중국 군인이 들어온 적은 없다”는 혼란스런 말을 해 인도 내에서 논란을 빚었다. 자존심을 세우고 ‘강한 나라’의 면모를 보이려다 보니 논리적 모순을 빚은 것으로 인도 언론들은 해석했다. 그럼에도 인도 당국은 양측이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으며 중국 외교부도 양국이 “상황을 진정시키는 데에” 동의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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