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 올림픽과 '망명'

딸기21 2021. 8. 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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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가 망명을 했다.
동유럽 벨라루스의 육상 선수 크리스티나 치마누스카야(24)가 올림픽에 참가하고 있다가 갑자기 망명을 해버리는 일이 생겼다. 치마누스카야는 망명을 신청한 폴란드의 바르샤바로 가는 비행기에 타려고 했다가 공항 도착 뒤 항공편을 바꿔 오스트리아로 가는 항공기를 탔다. 4일 빈으로 이동한 뒤, 그곳을 거쳐 6일 폴란드에 안착했다.

Belarusian Sprinter Krystsina Tsimanouskaya who took refuge in the Polish embassy in Tokyo, arrives at Narita International Airport to leave for Vienna in Narita, east of Tokyo, Japan August 4, 2021. REUTERS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영화 같은'이라는 표현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올림픽 참가 중 급히 도쿄를 떠나게 된 과정에서, 거의 납치당할 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치마누스카야는 육상 단거리 선수로 100m와 200m에 출전했다. 그런데 예정에 없이 1600m 계주에 출전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이와 관련해 자국 육상 코치팀을 비판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이것이 벨라루스 내에서 국영방송 보도로 문제가 됐다. 벨라루스 올림픽위원회는 “치마누스카야의 심리 상태에 문제가 있어서 올림픽 출전을 철회하기로 했다”며 그를 귀국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BBC 등의 보도에 따르면, 그러고 나서 2일 도쿄 올림픽 선수촌의 치마누스카야 방에 갑자기 코치들이 들이닥쳐 그를 공항으로 끌고간 뒤 비행기에 타라고 강요했다. 치마누스카야는 급히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코치진의 손에서 빠져나와 하룻동안 호텔에 머문 뒤 도쿄의 폴란드대사관으로 갔다. 말 그대로 '끌려갈' 상황이어서 경찰이 호위를 했고 폴란드 대사관 앞에서도 경찰이 경비를 섰다. 폴란드 정부는 인도주의 비자를 발급하면서 망명 허가를 내줬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벨라루스 올림픽위원회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올림픽 출전 종목이 느닷없이 바뀐 것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선수가 망명까지 해야 했다니. 벨라루스의 반정부 시위와 인권탄압 이슈가 이 사건으로 다시 불거졌다. 


인구 935만명의 벨라루스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에 에워싸인 동유럽의 내륙 국가다. 1990년 소련에서 갈라져 나왔다. 독립 뒤의 혼란기를 거쳐 1994년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취임했다. 이후 27년 동안 그 혼자서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5년마다 대선을 치르지만 무늬만 선거일 뿐, 루카셴코에 반대하는 야권과 체제 비판 인사들은 심하게 탄압해 "유럽의 마지막 독재국가"라고 불린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연합은 이 나라에서 치러지는 선거 결과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Women hold pictures of Belarusian activist Vitali Shishov outside the Belarusian embassy in Kyiv, August 3, 2021 Euronews

 

대규모 시위가 시작된 계기는 지난해 8월 대선이었다. 야당 후보인 스베틀라나 치하놉스카야가 루카셴코에 도전했다. 루카셴코 측은 80% 이상을 득표했다고 주장했지만 야당 지지자들과 서방의 선거 감시단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야권은 자체 집계결과 루카셴코 득표율이 30%이고 치하놉스카야가 57%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와 총파업이 몇 달 간 이어졌다.

 

시위에 참가했거나 반정부 인사로 찍히면 구금과 고문의 위협에 시달려야 한다. 루카셴코 정부의 반체제 인사 탄압과 구금, 고문은 오래된 이야기다. 실종자도 많다. 1999년 루카셴코에 맞섰던 유리 자카렌코 전 내무장관이 실종된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대선도 곡절이 많았다. 사업가이자 유명 유튜버였던 세르게이 치하놉스키라는 사람이 루카셴코에 도전했다가 체포됐다. 대선에 출마한 스베틀라나 치하놉스카야는 바로 그의 아내다. 남편이 체포되자 부인이 다시 독재정권과 맞섰던 것이다. 하지만 정권의 탄압이 계속되자 대선 뒤 스베틀라나는 리투아니아로 피신했다. 시위는 지난해 말 유혈사태 속에 진압됐지만 벨라루스인들의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리투아니아 당국에 따르면 7만 명 이상이 리투아니아로 피신해왔다고 한다.

 

지난해 8월 시위 이래로 지금까지 2500명 이상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수백 명이 구금됐고 구치소에선 고문이 벌어지고 있다. 올들어서도 5월 말 야권 인사가 감옥에서 의문사했으며 6월에는 고문을 당했다고 호소하던 반정부 활동가가 못 견디고 자해를 했다. 이달 3일에도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하던 벨라루스 인권운동가 비탈리 시쇼프가 키예프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Alexander Lukashenko ‘can no longer be allowed to act with such impunity’. AP


망명한 치마누스카야는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정치에 대해 말한 적이 없고 올림픽에서 코치들이 실수를 했다고 했을 뿐이다. 이게 정치적 스캔들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러나 억압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루카셴코 정권의 탄압은 이미 스포츠 선수들도 겨냥해왔다. 지난해 8월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포함한 1000명 이상의 선수들이 고문을 금지하고 대선을 다시 치르라고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그 뒤 95명의 선수들이 구금됐고 7명이 기소됐다.

 

벨라루스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다름 아닌 루카셴코의 아들 빅토르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벨라루스는 금메달 1개와 은메달 4개, 동메달 4개를 땄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는 5일까지 금메달 1개, 동메달 1개뿐이다. 성적이 4년 전에 못 미치자 루카셴코 대통령은 최근 “선수들이 배가 고프지 않아서 그렇다”고 비난했다. “실패에 대한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는 말도 했다. 자칫 코치진의 추가 망명까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올림픽에 참가 중이던 선수나 코치가 망명한 적은 전에도 많았다. 실은 거의 매번 올림픽 때마다 망명신청이 잇따른다. 공식 망명은 아니더라도 귀국을 거부하거나, 말없이 선수촌에서 사라져버린 선수들도 적지 않다.

[도이체벨레] Switching sides: defections at the Olympics

1948년 런던 올림픽 때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여자 체조팀 감독이던 마리 프로바니코바가 첫 사례이자 가장 유명한 사례다. 당시 국제체조연맹 위원장이던 유명인사였는데 “자유가 없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귀국을 거부하고 영국에 머물다 나중에 미국으로 망명했다. 

 

Belarusian Sprinter Krystsina Tsimanouskaya meets Austrian State Secretary Magnus Brunner during a stop at Schwechat airport in Vienna, Austria, August 4, 2021. Federal Chancellory of Austria/Florian Schroetter/Handout via REUTERS


그 후 1950~70년대 내내 동유럽 공산권 국가의 올림픽 참가자들이 망명이 줄을 이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이 열리고 있던 도중에, 헝가리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시민들이 소련군에 진압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이 알려진 뒤 올림픽에 참가한 소련과 헝가리 선수들의 충돌이 일어났다. 이후 헝가리 선수단 83명 중 귀국한 사람은 38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미국 등지로 망명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에는 루마니아 선수 4명과 러시아 선수 1명이 다른 나라로 향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에는 117명이 망명을 신청했으나 이들 개개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 이듬해 열린 모스크바 올림픽은 미국 등 서방 진영의 보이콧 속에 반쪽짜리 대회로 치러졌다. 이 올림픽을 앞두고 아프간 선수들은 줄줄이 나라를 떠났다. 모스크바 대회에 참가했다가 자칫 골치아픈 사건에 휘말리거나, 소련 측 선전도구가 될 수도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대회에 참가했던 이들 중에서도 5명은 중도에 서독과 미국 등으로 망명했다.

 

냉전이 끝난 뒤에도 독재국가에서 인권탄압을 피하기 위한 선수들의 망명 신청이 계속됐다. 뉴욕타임스 보도를 보면 2012년 런던올림픽 때에 영국에 망명신청한 참가자가 82명이었는데 그 중 12명은 동아프리카 에리트레아 선수들이었다. 그밖에 카메룬, 수단 등 아프리카 선수들이 잇달아 망명할 뜻을 밝혔다.


대표단 중에서도 대표 격인 선수단 기수들이 망명한 경우도 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에 이라크 선수단의 깃발을 들었던 역도선수 라이드 아흐메드가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을 비판한 뒤 미국으로 망명했다. 당시 아프간 대표팀 기수였던 권투선수 자위드 아만 무하마드도 캐나다로 떠났다.

Raised fists for black power on the podium after the 200m race.   Wikimedia


올림픽은 정치적 항의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IOC는 참가자들의 정치적 표현을 금지하지만, 올림픽은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큰 행사이다 보니 정치적 항의나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는 퍼포먼스가 종종 등장한다.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흑인 민권운동에 연대를 표시한 미국 흑인 선수들의 검은 장갑 퍼포먼스, 일명 ‘블랙파워 살루트(Black Power Salute)’가 가장 유명하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미국의 흑인 육상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200m 달리기를 끝낸 뒤 시상대에서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들어올린 사건이다.

 
사실 120여년에 이르는 올림픽의 역사만큼이나 정치적 퍼포먼스의 역사도 오래됐다. 1906년은 원래 올림픽이 열리는 해 아니었는데 ‘중간올림픽(Intercalated Games)’이라는 이름으로 그리스 아테네에서 일부 종목 대회가 개최됐다. 아일랜드 육상선수 피터 오코너가 멀리뛰기에서 은메달을 받게 됐다. 그 무렵 아일랜드는 영국 점령 하에 있었기 때문에 오코너는 영국 깃발 아래에서 메달을 걸어야 하는 처지였다. 오코너는 이를 거부하며 아일랜드 깃발을 두르고 깃대에 올라, 독립에 대한 열망을 세계에 알렸다.

 

[PBS] ‘Sport is political.’ How athletes are keeping human rights center stage at the Olympics

 

그보다 훨씬 ‘조용한 시위’도 있었다. 1968년 체코 체조선수 베라 차슬라우스카가 소련 선수와 금메달을 공동수상했는데, 당시 체코를 침공한 소련에 대한 항의 표시로 소련 깃발이 올라갈 때 고개를 숙여버렸다. 

 

Silver medalist Raven Saunders of Team USA, gold medalist Lijiao Gong of Team China (C) and bronze medalist Valerie Adams of Team New Zealand (R) pose during the medal ceremony for the women's shot put at the Tokyo Olympic Games. Photo by Ryan Pierse/Getty Images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도 미국 선수의 ‘X자 퍼포먼스’가 화제가 됐다. 미국 포환던지기 선수 레이븐 손더스가 1일 은메달을 딴 뒤 시상대에서 팔을 들어 X자 모양을 그린 것이다. 탄압받는 이들을 위한 연대의 표시인데, 마침 금메달을 딴 선수가 소수민족과 홍콩 탄압 등으로 세계의 비난을 받아온 중국 선수인 까닭에 여러가지 해석이 난무했다. 선수들이 정치, 종교, 인종과 관련한 선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들어 IOC가 손더스를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으나 미국 올림픽위원회는 이 선수의 동작이 "증오 표현이 아니라고 본다"며 조사를 거부했다.


미국 선수들의 검은 장갑 시위도 있었지만, 1960년대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며 아프리카 국가들이 올림픽을 보이콧 하는 등 '세계의 축제'를 둘러싼 정치적 소용돌이가 거셌다. 그런 분위기 속에 IOC는 1975년 올림픽헌장 50조에 상업적 표현이나 정치적 프로퍼간다(선동)를 금지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를 거부하는 선수들은 계속 나온다. '정치적 항의'라고 볼 수는 없지만, 도쿄 올림픽에서 독일 여자 기계체조 선수들은 노출을 줄인 '유니타드'라는 긴 바지 유니폼을 입어 눈길을 모았다. 축구 선수들은 인종차별에 맞선다는 의미에서 경기 시작 전에 잔디밭에 무릎을 꿇는 세리머니를 했다. 올림픽 선수들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그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관을 반영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올림픽헌장 50조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지난해 말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스포츠의 중립성을 강조하면서 정치적 메시지를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다시금 천명했다. 하지만 IOC의 이런 방침에 대한 반론도 많다. 증오감정을 표출하고 갈등을 부추겨서는 안 되지만, 인권과 환경 등 시대적인 이슈에 공감하고 메시지를 표시하는 모든 행위를 중단시키는 것이 옳으냐 하는 것이다.

 

OPEN LETTER TO IOC & IPC LEADERSHIP – ANNOUNCEMENT

 

이번 대회가 개막되던 날, 스포츠 선수 150여명과 학자들과 인권운동가들은 IOC와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에 공동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IOC와 IPC가 인권, 인종적·사회적 정의, 사회적 포용 등에 대해 더욱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보여야 한다며 올림픽헌장 50조를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IOC가 이런 시대적 흐름을 받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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