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드론 회사인 중국의 DJI가 26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는 당분간 드론을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DJI는 "여러 수출 지역에서 준수해야 할 요건들을 내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수출을 잠정중단한다고 밝혔다.
[DJI] DJI Reassesses Sales Compliance Efforts In Light Of Current Hostilities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지난달 "러시아가 DJI 드론을 이용해 어린이를 살해하고 있다"며 DJI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인 왕타오(汪滔)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군의 침공에 쓰인 드론들이 러시아, 시리아, 레바논 등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고 DJI에 이 지역들로의 드론 판매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우크라이나는 또 DJI가 자국의 군사 관련 자료를 러시아에 넘기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DJI는 그동안 이런 의혹이 '거짓말'이라며 전면 부인했다. “우리는 소비자를 위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드론에 탄약을 탑재하려는 시도는 분명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면서도 수출중단 요청을 거절했다. 러시아군이 자기네 드론을 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영상이 공개됐는데도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드론 사용까지 우리가 통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DJI 측은 또 드론을 판매할 때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에어로스코프 시스템을 장착해두고 있으며 이 시스템을 끌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측의 설명에 따르면 러시아군에 동원된 이 회사 드론들은 우크라이나 측의 레이더를 피해갈 수 있도록 시스템이 조작된 상태였다. DJI는 드론이 우크라이나 상공을 비행할 수 없도록 지오펜싱(지리적 울타리)을 설치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런 미온적인 태도에 비난이 계속됐고, 결국 수출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DJI 대변인은 중국 언론에 "특정 국가를 겨냥한 성명서가 아니라 우리의 원칙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분쟁지역에 드론을 팔아 인명살상을 키운다는 비판에 결국 밀린 셈이다.
[IEEE] Puzzling Out the Drone War Over Ukraine
2014년 크림반도를 병합 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내전이 시작됐고, 러시아군은 사실상 이 때부터 개입해왔다. 우크라이나는 이 무렵에 러시아군이 드론을 전술임무에 통합하고 전쟁에 동원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세계 최대 기술전문 협회인 미국 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의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 시기 이후 약 90억 달러를 들여서 500대의 무인기를 자국에서 생산했다.
'날아다니는 폭탄'으로 볼 수 있는 소형 드론에서 대형 드론까지, 군용 드론은 크기와 기능이 매우 다양하다. 대형 무인폭격기는 날개폭이 25m에 달하고 30~40시간 동안 고공에 머물 수 있다. 전쟁터에서 수천km 떨어진 곳에서 조종할 수 있으며, 공대지 미사일을 정밀하게 발사할 수 있다. 중간 크기의 드론은 주로 감시와 정찰을 위해 사용된다. 러시아의 드론 비행대에는 다양한 모델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 소형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는 잘라키브(Zala Kyb),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사용한 엘레론(Eleron-3SV)과 오를란(Orlan-10) 등이 대표적인 러시아군 드론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러시아군은 정찰용 드론 오를란-10을 이용해 키이우 외곽의 우크라이나 기지를 찾아내 파괴했다. 대형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드론으로는 미국의 프레데터(MQ-1 Predator)와 유사한 크론슈타트 오리온(Kronshtadt Orion)을 갖고 있다. 러시아군은 지난달 초 오리온으로 우크라이나 군 사령부를 공습했다.
다만 러시아의 드론들은 기술적으로는 서방에 뒤처진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뒤 제재를 받아왔기 때문에 광학장비, 동체 제작에 필요한 경량소재, 전자제어장치 등 핵심 기술과 부품들을 수입할 수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 정작 이번 침공에서 러시아산 드론들의 공격은 성공적이지는 못했고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드론에 밀리는 양상을 보였다.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를 빼앗기고 나서 체계적으로 드론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드론비행대에 300여대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추는 우크라이나에서 설계하고 제조한 퓨리(A1-SM Fury)와 정찰용 드론인 렐레카(Leleka-100)으로 2020년과 2021년 각각 취역했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군에 맞선 우크라이나 드론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날개 길이 12미터에 레이저 유도폭탄 4개를 장착할 수 있는 터키산 드론 바이락타르(Bayraktar TB2)로 30여대를 보유하고 있다. 미군 전투용 드론을 대표하는 리퍼(MQ-9 Reaper)와 기능이 비슷하면서 제작비는 100만~1000만달러에 불과해 훨씬 저렴하다. 전쟁이 시작된 뒤 미국은 폭발물을 장착할 수 있는 소형 드론 스위치블레이드(Switchblade) 100대 등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우크라이나는 또 나토 드론시스템의 도움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측이 신호를 교란하기 위해 설치한 대드론시스템들을 이미 3개 이상 파괴한 것으로 파악된다.
[로이터] China's DJI halts Russia, Ukraine sales to prevent use of its drones in combat
기술이 떨어지는 러시아가 중국산 드론들로 보완하고 있을 수는 있지만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DJI는 민간기업이고 재무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드론애널리스트라는 리서치 회사의 자료를 인용해 로이터통신이 보도한 것을 보면 이 회사가 2020년 판매한 하드웨어 매출액 29억달러(약 3조7000억원)이라고 하는데, 러시아가 자국산 외에 중국산 드론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DJI의 공식 명칭은 SZ DJI 테크놀로지(선전DJI과학기술유한공사, 深圳大疆创新科技有限公司)로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 본사가 있다. 상업용 드론과 카메라, 비행플랫폼과 추진시스템, 비행제어시스템을 설계하고 제조한다. 저장성 항저우 출신인 왕타오가 세운 회사인데 1980년생인 왕타오는 홍콩과기대(HKUST) 재학시절부터 드론에 몰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 대학 재학 시절에 DJI를 세웠다. 이 회사는 2013년 대중들을 겨냥한 팬텀(Phantom) 첫 모델을 출시해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2015년에는 라이브스트리밍 카메라를 내장한 팬텀3을 출시, 역시 상업적으로 대성공하며 세계 최대 민간 드론회사로 부상했다.
DJI는 2020년 3월 기준으로 세계 소비자 드론 시장의 약 70%를 차지했다. 주로 음악, 텔레비전, 영화 산업에서 널리 사용된다. 하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이듯 군대와 경찰, 테러 단체들에 의해 악용된다는 비판이 늘 따른다. 2021년 12월 미국 재무부는 DJI의 드론이 중국의 위구르 탄압에 사용된다고 비판하며 미국 개인과 기업들의 이 회사 투자를 금지했다.
[NEW AMERICA] Who Has What: Countries with Armed Drones
하지만 미국이야말로 전쟁에 드론을 많이 써온 나라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부터 프레데터, 리퍼 같은 무인폭격기들을 대거 동원했다. 드론의 문제점은 머나먼 네바다 사막의 공군기지에 앉아 있는 파일럿이 저 멀리 중동과 아시아를 폭격한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전쟁을 전자게임처럼 만들고 비인간화하는 것이다. 특히 파키스탄, 예멘, 소말리아 등 공식 교전 상대국이 아닌 곳들에서 미군이 아닌 CIA가 대테러전을 빌미로 드론 작전들을 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미국 측은 ‘정밀폭격(targeted killing)’이라고 주장하지만 민간인 오폭이 많았으며 2020년까지 최대 2200명의 민간인이 드론 폭격에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Open Society JUSTICE INITIATIVE] Death by Drone
미군 지상군을 줄이기 위해 아프간, 파키스탄에서 드론을 많이 쓰고 오폭도 늘어난 것은 주로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다. 오바마 대통령은 비판이 일자 2016년 행정명령으로 CIA에 민간인 사망 피해를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 의무를 폐기해버렸고 소말리아, 예멘의 드론 공격은 2017년 이후 크게 늘었다. 가장 악명 높았던 것은 2020년 1월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미국이 드론으로 이란 군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The Bureau of Investigative Journalism] Drone Warfare
기술이 발전하고 가격이 낮아지면서 드론 공격은 세계 곳곳의 군사집단들로 퍼졌다.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에도 드론이 등장했다. 2019년에는 미국 드론과 이란 드론이 맞붙는 상황도 벌어졌다. 예멘 반군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정유시설 드론 공격도 잇달아 일어났다. 미국이 중국의 드론 수출을 비난하지만 이중잣대 논란이 가시지 않는 이유다. 급기야 이제는 미국이 중동 등 세계 전역에서 '드론의 역습'을 걱정할 판이 됐다.
[Middle East Institute] The New Face of War: Devastating Drone Attacks in Ukraine Have Implications for the US Military in the Middle East
그럼에도 어쨌든 DJI는 드론 수출을 중단했다. 러시아를 규탄해온 서방의 압력에 중국 기업들도 물러서기 시작한 걸로 볼 수도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이후 중국 주요 기업이 러시아 수출을 중단한 것은 처음이라는 점을 로이터는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의 공식 입장은 '중립'이다. 필요에 따라 러시아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지만 실제로는 거리를 두고, 그러면서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채 교역은 이어왔다. DJI의 조치는 중국의 대기업들에게 러시아와의 거래가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위험요인이 됐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러시아와 거래를 계속하되 노출을 피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온 중국 기업들이, 서방 시장을 아예 다 잃을까 우려해 돌아서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Yale School of Management] Yale CELI List of Companies Leaving and Staying in Russia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 1000여개 기업들을 대상으로 러시아와의 거래를 축소 혹은 중단했는지 조사해 공개하고 있다. 이들의 집계에 따르면 4월 27일까지 750여개 기업이 제재에 동참했다.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한 중국 민간 대기업은 그동안 없었지만 DJI가 처음으로 판매를 끊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중국은행, 중국공상은행, 브릭스개발은행 등 국영 혹은 국가와 관련된 은행들은 러시아와의 거래를 이미 중단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샤오미 같은 회사들은 계속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을 확장하려던 계획을 보류하거나 조용히 축소하는 민간기업들이 늘고 있다.
[뉴스위크] Five Chinese Companies Have Suspended Business in Russia
일례로 미국의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러시아에서 철수하면서 시장 공백이 생기자 중국 최대 신용카드 브랜드인 유니온페이가 사업을 늘리려 했는데, 서방의 제재를 의식해 보류했다. 통신장비회사 화웨이는 기존 영업을 계속하고 있지만 신규 수주는 중단했다. 국영 석유가스회사 시노펙의 움직임이 관심이었는데, 제재에 합류하지는 않았으나 지난달 5억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를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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