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가 최근 아프리카사령부(AFRICOM)를 출범시켰다. 이로써 미군은 그동안 3개 지역사령부에서 맡아왔던 아프리카 내 군사작전을 총괄하는 새로운 지역 전투사령부를 갖게 되었고, 미군 전투사령부는 5개에서 6개로 늘어 지구 상 한 대륙도 빠짐없이 관할하에 넣게 됐다. 명실상부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 패권의 물리적 기반으로써 구색을 갖춘 셈이다. 그러나 2년여 준비 기간 끝에 이뤄진 새 지역사령부의 출범식은 미국 언론들에조차 그리 주목받지 못한 채 의외로 ‘조용하게’ 치러졌다.
중국의 영향력 견제 의도
미군은 그동안 3개 사령부에서 나누어 아프리카를 관할해왔다. 대부분 지역을 주로 유럽사령부에서 담당했고, 이슬람권에 가까운 동아프리카는 중부사령부가, 태평양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와 모리셔스는 태평양사령부가 맡고 있었다. 신설한 아프리카사령부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임시 본부를 두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아프리카 국가들 중 한 곳으로 근거지를 옮길 계획이다. 아프리카사령부는 중부사령부 관할인 이집트를 제외한 아프리카 전역의 군사작전을 맡는다. 사령관은 윌리엄 워드(Ward) 육군대장이 이미 지난 4월 내정됐다.
9월 23일 윌리엄 워드 미군 아프리카사령부 사령관(오른쪽)이 미군 병사들과 악수하고 있다. _ AFRCOM
아프리카사령부 구상을 내놓은 것은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이었다. 이 계획이 공식화된 것은 지난해 2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아프리카에서의 잠재적인 위협에 대처하고 군사작전을 효율화해야 한다”며 국방부의 사령부 신설 계획을 승인하면서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아프리카에까지 사령부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미국은 “역내 국가들과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통합 전투사령부를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속내에 대해서 의구심 섞인 시선들이 쏟아지고 있다. 미군은 지금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해 자국에서도 반전 여론에 시달리고 있다. 미군 신병 모집조차 제대로 안 되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새 사령부를 신설한 것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미군의 사령부 신설 계획이 나왔을 당시는 중국이 아프리카 각국을 상대로 활발한 원조외교를 펼치면서 군사적 협력도 강화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중국은 최근 몇 년 사이 산유국 수단에 무기를 제공하는 등 아프리카 국가들과 군사 협력을 크게 늘렸다. 에티오피아에 접한 신생국 에리트레아의 경우는 국가 지도부가 중국 본토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외신들은 미국이 사령부를 새로 만든 것을 계기로 향후 어떤 형태로든 아프리카에서 군사활동을 강화하려 할 것이며, 이는 중국과 마찰을 불러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본부 자리 없어 유럽사령부에 더부살이
아프리카인의 반응은 다분히 부정적이다. 당장 아프리카인이 원하는 원조에는 인색하면서 군대만 보내려 하는 미국을 곱게 볼 리 없다. 워싱턴 남아프리카연구소의 케냐인 정치분석가 와풀라 오쿠무는 AP통신 인터뷰에서 “아프리카인은 미국이 아프리카의 이익이 아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사령부를 만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미국의 의도를 많은 이가 의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18일 독일 람스타인 공군기지에서 미군 아프리카사령부 군인들이 경례를 하고 있다. | AFRCOM
실제로 미 국방부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반발로 인해 사령부 본부를 어디에 둘지도 결정하지 못했다. 미국에 반감이 별로 없으면서 치안 상황이 안정돼 있고 인프라도 어느 정도 깔려 있는 아프리카 국가를 찾기는 쉽지 않다. 당초 미국은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알제리 등에 사령부 유치 의사를 타진했으나 거부당했다. 과거 반미국가였다가 관계를 개선한 리비아에까지 의사를 물었지만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는 “그랬다가는 리비아가 반미 테러범들의 타깃이 될 것”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걸프전 때 미군에 기지를 내어준 사우디아라비아는 알카에다 세력의 주요 공격 목표가 돼 테러빈발국이 됐고, 미군의 아프간전 후방기지 역할을 한 파키스탄은 이슬람 강경파의 거센 반발로 아수라장이 됐다. 미국에 우호적인 아프리카 정권들조차 아프리카사령부 유치를 꺼려하는 것은 이런 전례들 때문이다.
미 국방부는 아프리카사령부를 여러 나라에 분산해놓는 방법까지 생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해방노예들이 건국한 나라인 라이베리아가 원조를 노리고 아프리카사령부를 유치하겠다고 나섰으나, 이는 미국이 거부했다. 미국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보다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고 유럽사령부와 협력도 용이한 북아프리카에 사령부를 배치할수 있기를 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프리카사령부는 집이 정해질 때까지 일단 슈투트가르트의 유럽사령부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미국 외교정책의 군사화를 보여주는 것”
현재 아프리카에 머물고 있는 미군은 지부티에 주둔 중인 1800명이 전부다. 지부티는 ‘아프리카의 뿔’이라 불리는 인도양 연안 소말리아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다. 미군은 소말리아 내전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자제하면서 지부티에 군대를 파견해놓고 소말리아 해상 감시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군은 아프리카사령부가 대테러전쟁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정작 대테러전 작전권인 소말리아는 중동 지역을 관할하는 중부사령부가 계속 관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아프리카사령부가 미군의 공식 발표와는 달리 중국 견제나 자원 확보 같은 ‘다른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8월 13일 미 해군 장교들이 아프리카 지부티의 한 학교를 둘러보고 있다. ‘아프리카의 뿔’로 알려진 연합합동군사령부은 이 지역에서 인도적 차원의 복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AFRCOM
아프리카사령부는 다른 전투사령부들처럼 육·해·공·해병·특수전부대 등을 두지 않으며, 군사작전 담당 부사령관과 함께 민-군 합동 부사령관도 두고 있다. 군사작전 부사령관인 로버트 묄러 해군 중장은 “다른 사령부들과 달리 우리는 전투만이 아닌 ‘소프트 파워’를 발휘하는 데도 힘을 쏟을 것”이라면서 “아프리카 대륙의 경제개발을 도울 인도주의 프로그램도 많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본부에 있는 직원 1300여 명 중 비군사 부문 인력은 단 13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미국 언론들은 지적했다.
국제 난민구호기구인 레퓨지 인터내셔널(RI)의 에린 와이어는 “새 사령부 신설은 미국 외교정책이 군사화(militarization)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비판했다. 실제 미국은 2000년대 들어 국방과 관련없는 구호·원조 예산도 상당 부분 국방부에서 집행하는 쪽으로 바꿨다. RI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미국의 대외원조액 중 미국해외원조청(USAID)이 집행하는 예산 비율은 65%에서 40%로 줄어든 반면, 국방부가 집행하는 예산 비율은 3%에서 22%로 늘어났다.
아프리카사령부를 반기지 않는 것은 미국 의회도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이라크·아프간 전비 때문에 재정이 휘청이는 상태에서 금융위기까지 맞았으니 돈만 들어가는 사령부 신설을 환영할 리 없다. 지난달 말 미 의회는 내년도 아프리카사령부 예산안을 국방부 요구액에서 3분의 1이나 깎아 2억2500만 달러로 책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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