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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 정체불명의 기묘한 위성TV채널이 등장했다. TV를 켜면 옛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웃는 얼굴이 화면을 채운다. 미군에 쫓겨 민가의 토굴에 숨어있다 발각된 말년의 흉칙한 모습이 아닌, 전성기 때 사담의 모습이다. 2003년 3월 전쟁이 시작되고 넉달 뒤 미군에 사살된 사담의 두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의 모습도 화면에 비친다. 옛 정권의 홍보용 사진들로 이뤄진 정지화면이 대부분이다. 사담이 군복을 입은 모습과 정장을 차려입은 모습 등을 몽타주한 화면도 있다. 미군의 침공을 규탄하려는 의도가 담긴 듯, 미군의 총에 맞아 숨진 사담의 손자 무스타파(사망 당시 14세)의 모습도 등장한다. 배경음으로는 사담의 목소리와 ‘조국을 해방시키자’는 노래 따위가 흘러나온다.
화면에 나타난 방송채널의 이름은 ‘알 라피타(깃발)’ 혹은 ‘알 아라비(아랍)’ 두 종류이지만, 이라크인들은 ‘사담 채널’이라고 부른다. 이라크인들의 악몽을 되살리는, 혹은 옛 사담 추종세력을 부추기는 이 채널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주민들은 모른다.
이 채널이 이라크를 비롯한 아랍권 대부분 지역에 수신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7일. 이슬람 전통 명절인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가 시작되는 때였다. 이슬람 양대 종파인 시아파와 수니파는 서로 조금씩 다른 달력을 쓰는데, 이날은 수니파의 희생제 첫날이었다. 사담은 2006년 1월 희생제 기간 중에 처형됐다.
AP통신은 29일 이 전파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추적해 시리아의 한 민간방송을 찾아냈다. 다마스쿠스의 방송사를 책임지는 인물은 모하메드 자르부아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누가 돈을 대는지, 주요 송출 기지가 어디에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AP 전화인터뷰에서 자신은 알제리인이라면서 “아홉달 전 레바논에서 알 라피타 방송을 시작했고 시리아, 레바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직원들을 모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라크 정부가 방송사 문을 닫으라며 우리 직원들에게 살해 위협까지 하고 있어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바트당(옛 이라크 집권당)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사담의 맏딸로 요르단에 살고 있는 라가드도 관련을 부인했다. 옛 바트당 출신으로 역시 요르단에 머물고 있는 지아드 카사우네는 “레바논, 시리아 등 아랍국들에 살고 있는 돈많은 이라크인들이 후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의도가 무엇이든, ‘사담 채널’은 전파를 타자마자 이라크인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옛 집권층의 지지기반이던 수니파 주민들은 오랜만에 보는 사담의 모습에 애증이 교차된 반응을 보였고 일부는 전쟁 이전에 대한 향수를 드러냈다. 반면 사담 시절 탄압을 받았던 시아파는 “저 따위 채널은 우리에겐 필요없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라크 시아-수니파는 내년초 총선을 앞두고 의회 권력배분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종파간 대립이 심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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