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들에게 결혼을 허하라?

교황청이 유럽 곳곳에서 일어난 성직자들의 성추문으로 궁지에 몰렸습니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독일 등지에서 일어난 아동 성추행·학대 스캔들에 더해, 교황청 의전담당 비서가 연루된 동성애 의혹까지 드러났습니다. 급기야 유럽 일부 언론들은 “성직자들에게 독신생활을 요구하는 가톨릭 규율이 문제”라고 지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영국 가디언은 아일랜드 가톨릭계를 이끌어온 션 브래디 추기경이 교단 내 아동성학대 스캔들을 감추기 위해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했다고 14일 보도했습니다.
가톨릭국가인 아일랜드에서 사제들의 성추문이 문제가 된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1980년대부터 사제들의 아동 성학대·추행 등이 문제가 돼 정부가 조사위원회를 꾸린 바 있습니다. 가톨릭 교단에서 피해자들과 거액의 배상합의를 한 적도 있었고요.
브래디 추기경은 75년 브렌던 스미스라는 신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피해자 2명과 만나 피해사실을 공개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침묵의 서약’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스미스라는 자는 아동 성학대로 악명높았는데, 결국 징역형을 선고받고 12년 동안 복역하다가 옥중에서 숨졌다죠.
암튼 이 문제로 추기경은 당시의 피해여성과 가톨릭 관계자들로부터 고소당하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교단 안팎에서 사퇴요구가 빗발치고 있다는군요.
이 사건은 성직자들의 그릇된 행위가 드러날 때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숨기기에 급급했던 가톨릭의 치부를 드러냈다는 지적입니다. 지난해 11월 아일랜드 정부조사위는 가톨릭 교단 지도부가 30여년 동안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을 은폐했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습니다.

올들어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독일 등 유럽 곳곳에서 성직자들과 관련된 성추문이 잇달아 터져나왔습니다. 특히 최근 독일에서 불거진 사건은 교황 베네딕토16세의 친형인 게오르그 라칭어 신부가 이끄는 한 학교 성가대에서 성추행과 폭력이 저질러졌다는 것이었습니다.

Picture taken on March 5, 2010 shows the Cathedral of Regensburg in southern Germany. /AFP
게오르그 라칭어 신부가 있었다는, 독일 남부 레겐스부르크 대성당입니다.
이곳 성가대에서 일어난 아동 성학대 사건으로 교황에게까지 불똥이 튀고 있답니다.

베네딕토16세가 80년대 독일 뮌헨 대주교 시절 소년을 성추행한 사제를 다른 곳으로 옮겨주며 감쌌다는 의혹이 일면서, 불똥이 교황에게까지 튀고 있습니다. 페데리코 롬바르디 교황청 대변인은 13일 “아동 성추행 사건과 교황을 연루시키지 말라”고 부인했지만, 파장엔 끝이 없어 보입니다. 지난 8일에는 교황의 의전담당비서 안젤로 발두치가 남성 매춘부와 관계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바티칸이 들썩였습니다. 결국 이탈리아 당국이 수사에 착수했고요.

끊임없는 성추문에 대해 일각에선 “인간 본성을 거부한 독신주의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일랜드 언론들은 “독신생활을 하는 사제들은 스스로가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며, 이 때문에 어린이들이나 여성들을 상대로 직분을 남용하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11일에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크리스토프 숀보른 대주교도 “사제들의 독신주의가 성적 학대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가디언은 14일자 “가톨릭은 사제들을 독신주의에서 해방시키라”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물론 반론도 적지 않습니다. 저런 주장 뒤에는 ‘독신자들은 성범죄자가 되기 쉽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입증되지 않은 생각일 뿐이죠. 또한 결혼이 허용되는 일반 남성들과 비교할 때 가톨릭 사제들의 성범죄 비율을 비교하면, 일반 남성들 쪽이 더 높지요. 교황청 내 교회법 전문가인 주세페 베르살디 주교는 14일 교황청신문 ‘옵세르바토레 로마노’ 기고에서 “성직자 독신주의와 성추문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다시 강조했습니다.

■ 가톨릭 성직자들의 성추문 스캔들

1999   아일랜드 정부, 아동성추행·학대 조사 착수
2002   아일랜드 가톨릭, 1억2800만유로 배상 합의
　     필리핀 성직자 아동성추행·학대 폭로
2003   교황 요한바오로2세 “아동학대 큰 범죄” 인정
2004   미 주교위 보고서 “성직자 4392명 성추행·학대”
2006   미 가톨릭, 15억달러 배상 합의
2009.9 바티칸 “지난 반세기 성직자 1.5~5% 성관계”
2010.3 독일 학교 내 성직자들의 성추행·학대 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