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사
유메마쿠라 바쿠 (지은이) | 오카노 레이코(그림) | 서울문화사
내가 가장 먼저 보았던 것은 영화 '음양사'의 한 장면을 담은 사진이었다. 만화책을 보면서, 검은 배경의 그 사진이 자꾸만 생각났는데- 사진 속 세이메이는 만화에서 느껴지는 고상한 후까시를 전혀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영화를 보지 않았으니 다시 만화 얘기로 돌아가면.
만화이건 책이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을까.
기승전결을 좋아하느냐, 옴니버스를 좋아하느냐. 얼토당토 않은 구분일 수 있겠고, 내 대답도 그저 '기승전결이 깔린 옴니버스를 좋아한다'는 것에서 그친다. 완벽한 틀을 갖추고 있는 것도 좋지만, 옴니버스 작품에서 기승전결은 그저 화자의 심리상태의 결말을 보여주는 것 정도로 끝나야지 얘기가 너무 확장되어 나가면 오버하게 된다. 음양사는 처음에 옴니버스로 시작되는 듯했다. 그 멋진 그림- 이 작품의 매력의 99%는 사실 그림에서 나온다. 일본의 여러 만화가 그렇듯이 그림 그리는 이와 각본짜는 이가 따로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림 그린 오카노 레이코는 다름 아니라 데스카 오자무의 며느리라고 들었다. 그림은 100점 아니라 백의 백승을 주고 싶다.
책의 주인공은 네 사람이다. 세이메이의 친구이자 셜록홈즈의 '왓슨'같은 인물이었던 히로마사는 절대순수, 선을 구현하는 인물로 변하면서 오히려 생명력이 없어진다.
히로마사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은 세이메이의 사형일 텐데, 이 인물은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듯한 인상을 풍겼다. 히로마사가 正이라면 사형은 反이고, 둘을 合으로 만드는 것이 세이메이의 몫이다. 세이메이의 연인 마쿠즈는 정-반-합을 이끄는 촉매다. 사실 내가 매력을 느낀 인물은 세이메이보다는 히로마사와 마쿠즈 쪽이었다. 히로마사라는 인물은 평범한, 그러나 평범치 않은 인물로서 외모에서 선량한 느낌을 풍겼고, 마쿠즈는 뭔가 수수께끼의 열쇠를 쥐고 있는 흔치않은 여인으로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세이메이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나선 것인지?
담담하고 고요한 물같던 세이메이, 뭔가 사연을 안고 있지만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는 것 같았던 세이메이는 점차 영웅으로 변모한다. 천지를 구하라! 제각기 사연을 품은 귀신들을 달래고 세상을 좀더 살만하게 만드는 것에 만족해야 했을 세이메이가 천지 음양의 조화를 뒤바꾸는, 즉 이 세계의 패러다임적 전환을 가져올 인물로 격상되면서 '음양사'는 거창해지고 꼬이고 재미가 없어져버렸다. 붓으로 그린듯한 멋진 필치의 그림들마저도 스크린톤으로 범벅이 됐다.
게다가 이 줄거리엔 즐거운 장치들이 거의 없다. 그나마 볼거리가 됐던 것이 세이메이와 마쿠즈의 관계였는데 갑자기 신파로 돌아가버리지 않나, 히로마사는 순수의 화신이 되지 않나... 이 작자가 대체 어떤 식으로 벌려놓은 판을 수습할지.
아무튼 일본에 가면 소장본으로 구입하고 싶은 책임에는 틀림없지만 재미보다 아쉬움이 더 크다.
Tip. 만화 '음양사'의 배경이 된 일화들
아베노 세이메이(安倍淸明)는 최강으로 평가받은 온묘지며, 일본 주술사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실로 온묘도의 상징으로도 할 수 있는 존재이며, 그의 활약은 많은 전설로 남아 있다. 921년에 태어난 아베노 세이메이는 오사카 시 아베 구에 있는 아베노 세이메이 신사가 탄생지로 되어 있다.
출생의 일화
야스나(保名)라고 하는 세이메이의 아버지는 어느 날 시노다(信太) 숲에 살고 있는 여우 한 마리를 도와주었다. 여우는 얼마 후 구스바라는 젊은 여자로 변신해 야스나 앞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결혼을 했다. 이렇게 태어나 아이가 세이메이였다.
가족은 사이좋게 살았다. 그런데 방심하고 있던 구스바가 자신의 정체를 남편과 아들에게 알리고 말았다. 원래 화생(化生)한 자는 정체가 발각되면 떠나야 하는 법이다. 구스바는 "내가 그리워지면 시노다 숲에 만나러 오세요" 라는 시를 남기고, 울면서 아베노 집안을 떠났다. 남겨진 세이메이는 그리움에 못 이겨 시노다 숲을 찾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어미 여우를 찾아냈다. 그러나 집에 돌아갈 수 없었던 어미 여우는 안타까운 마음에 강한 주력을 세이메이에게 주었다.
아베노 세이메이는 85세로 사망했지만, 그의 신비한 주술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오랫동안 전해졌다. 그와 관련된 일화는 고전 '지금과 옛날 이야기(今昔物語)' 나 그 밖의 일화집 등에 많이 실려 있다. 에도 시대가 되고 나서도 세이메이를 소재로 한 죠루리 작품이 만들어졌다.
온묘지로서의 수행
세이메이는 어린시절부터 온묘도의 대가인 카모 타다유키 밑에서 온묘도를 배웠다. 세이메이의 재능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스승인 카모였다.
어린 세이메이가 어느 날 밤 소 수레를 끌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 세상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이상한 모습을 한 자들이 세이메이 쪽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었다. 그는 당황하여 스승에게 사실을 알렸다. 수레안에서 자고 있던 카모는 눈을 뜨고 밖을 내다봤다. 그러자 정말로 여러명의 괴물들이 오고 있었다. 그것들은 악귀로서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귀는 사람에게 달라붙어 재앙을 일으키는 법이다. 카모는 주술을 사용해 자신들의 모습을 감추고 귀들을 그냥 지나치게 했다. 결과적으로 세이메이가 귀신의 모습을 보고 그것을 알려준 덕분에 카모 일행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카도는 어린 세이메이에게서 천부적 재능을 느끼고 아낌없이 온묘도의 모든 것을 가르쳤다.
이윽고 세이메이는 그때까지 카모가가 맡고 있던 온묘도의 일 가운데 천문에 관한 일을 담당하게까지 되었다. 이리하여 달력은 카모가가 담당하고 천문은 세이메이의 자손인 츠치미카도가가 맡게 되었던 것이다.
도마 법사와의 싸움
아베노 세이메이와 동시대의 온묘지 중에 아시야 도만(芦屋道滿)이라는 술자가 있었다. 둘 모두 뛰어난 술자였으며 늘 서로를 라이벌로 생각했다. 귀족끼리의 분쟁이 일어나면 두 사람은 반드시 다른 세력에 고용되어 주력을 다퉜다. 하지만 도만은 언제나 세이메이에게 한 발 뒤졌다.
어느 날 도마(道魔) 법사라는 인물이 아베노 세이메이를 찾아왔다. 세이메이는 법사가 데려온 두 명의 동자가 시키가미의 변신임을 금방 간파했다. 법사가 자신을 시험하러 왔다는 것을 눈치챈 세이메이는 몰래 주문을 외어 동자를 숨겨버렸다. 당황한 법사는 세이메이에게 사과하고 자신이 부리고 있는 동자를 돌려받았다. 도마 법사, 그것은 아시야 도만의 별명이었다.
당시 천황이 세이메이와 도만을 불러 힘 대결을 시킨 적이 있었다. 그들은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맞힘으로써 승부를 가리게 되었다. 상자가 나오자 두사람은 똑같은 대답을 했는데, 물론 둘 다 정답이었다. 승부는 몇 번이나 반복되었지만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승부에 끝이 찾아왔다.
귤이 든 상자가 나왔을 때 아시야 도만은 "귤"이라고 대답했지만, 세이메이는 "쥐"라고 말했던 것이다. 상자 속에 귤이 들어있는 것을 알고 있던 황제는 승부가 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이메이는 상자를 꼭 열어봐달라고 부탁했다. 이윽고 상자를 열자 안에서는 귤이 아니라 쥐가 나왔다. 이대로는 승부가 나지 않으리라 생각한 세이메이가 주력을 사용해 귤을 쥐로 바꿔버렸던 것이다.
카잔 천황의 출가를 미리 알다
아베노 세이메이는 천문과 소환술에 뛰어났다. 특히 시키가미 사역에 관해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게다가 장시간 사용할 수 있었다.
카잔(花山) 천황은 후지와라(藤源)의 음모에 걸려들어 천황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했다. 밤중에 천황이 소 수레를 타고 궁중을 나와 세이메이의 집 앞까지 왔을 때, 집 안에서 세이메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황이 양위된 듯하다. 시키가미여, 궁중에 입궐하라."
이 말에 놀란 천황이 주변을 둘러보자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 "천황은 집 앞까지 와 계십니다"라는 목소리가 대답을 했다. 아무도 없는 듯이 보였지만 사실은 시키가미가 있었던 것이다.
이 일화를 통해 두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세이메이는 천문의 이변을 통해 천황의 양위를 미리 알았으며, 집에서 시키가미를 하인 대신 부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수 많은 전설
시키가미 사역은 온묘도 중에서도 최고의 술법이며, 시키가미의 컨트롤은 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세이메이는 시키가미를 마치 수족처럼 간단히 다뤘다. '시키가미를 부리는 술자'로서의 높은 재능이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이메이의 집에서는 아무도 없을때도 창이나 문이 열리고 닫히고 했다. 이것은 세이메이의 명령으로 시키가미가 한 일이었다. 세이메이의 집에서는 시키가미가 매우 요긴하게 사용되었던 듯하다. 그러나 집안 사람들이 이상한 현상과 때때로 모습을 나타내는 시키가미의 괴상한 모습에 겁을 먹었다. 결국 세이메이는 시키가미를 집에서는 부리지 않게 되었다. 그 뒤로 시키가미는 다리 밑에 갇혀 있다가 필요할 때만 소환되었다고 한다.
세이메이는 종이 시키가미를 사용하는 데도 뛰어났다. 세이메이의 주인인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源道長)가 호죠지(法成寺)를 건설할 때의 일이었다. 미치나가가 애견과 함께 절을 짓는 모습을 보러갔다. 그런데 옆에 있던 애견이 경내에 들어가려는 미치나가의 옷을 물고 놓지않는 것이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주문을 걸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미치나가는 세이메이를 불러 그 자를 찾아내도록 명했다.
세이메이는 품에서 종이를 꺼내 새의 형태로 만들고 주문을 외어 던져 올렸다. 그러자 종이는 백로가 되어 날아갔다. 하인이 추적하자 백로는 아시야 도만의 집에 떨어졌다. 도만은 미치나가 앞에 끌려와 심문을 받았다. 결국 도만은 정적의 의뢰를 받고 미치나가에게 주술을 걸려고 했던 사실을 자백했다.
== 숙적과의 대결 ==
출처 : 판타지 라이브러리 소환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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