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은이) | 김난주 (옮긴이) | 문학동네 | 1999-05-17
동어반복에, 일부러 독설을 뿜어내는 우스꽝스런 마초이즘--
그런데, 이런 마루야마의 소설이 아주 좋다. 옛날식 소설에 안주하는 게으름뱅이 멍청이 소설가들은 가라, 계집애같고 게이같은 놈들아, 평론가 나부랭이들아, 나는 이렇게 초인적인 열정과 노력으로 글을 써서 승부를 볼 것이다, 영화와 싸울 것이다, 찬연한 이미지를 글로써 만들어낼 것이다! 이런 식이다.
마루야마 겐지는 이런 선언을 할 자격이 있다. 신경숙 씨가 추천사를 쓰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텐데. 일년에 소설 한두권 들춰볼까 말까 하는 나같은 독자에게 완벽한 면죄부를 주는 소설가의 고백록이 아닌가!
지지부진한 소설들, 구태의연한 '옛날 소설들'에 지치고 싫증난 나같은 독자가 마루야마의 소설에 열광하고 말았으니, 자부심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래, 소설가들 잘못이었어, 내가 무식한 독자였던 것이 아니었어, 새로운 이미지를 형상화해주는 새로운 소설만 있다면 얼마든지 읽어주겠단 말이다! 나는 마루야마의 논리에 편승해서 수준높은 독자가 되어버린다.
사실 이 책은,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 혹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전혀 읽을 필요가 없다. 제목 그대로, 마루야마 겐지가 소설가로서 자신의 각오를 쓴 글들이다. 스물 몇살 때부터의 에세이들을 모아놓았는데 다만 놀라운 것은, 어쩜 이 사람은 젊은 시절이나 나이가 들어서나, 말하는 내용이 이리도 똑같을 수 있나 하는 점이다.
녹슬지도, 무뎌지지도 않다니. 이런 인간이니깐 그런 소설을 쓰지... 나는 줄곧 <천년동안에>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를 떠올리면서 이 책을 읽었다.
문장은 의외로 졸문에, 반복에, 재미 하나도 없다. 아무튼 성질 유별난 작자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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