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붕가붕가'라는 말이 들어간 우스개가 돌아다녔다. 어느 원주민 부족에게 잡혔는데 '죽을래, 붕가붕가할래' 해서 붕가붕가를 택했더니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는... 이 때의 '붕가붕가'는 '*침'의 의미였다. 친구 중에 웅가라는 녀석이 있어서, 애들이 '웅가붕가'라고 놀렸던 기억도 난다(웅가야 미안해;;).
붕가붕가가 한국에서만 돌아다니는 말이 아니라 글로벌한 용어임은 나중에 알았다. 이 말이 세계 언론에 나오게 만든 건 이탈리아의 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다. 빌 클린턴 때문에 '부적절한'이라는 말이 매우 부적절한 용도로 쓰이게 됐듯이, 베를루스코니는 붕가붕가란 말을 '공식화'했다.
엊그제 <비정상회담>에서 알베르토가 정치인 막말 하면 빠질 수 없는 베를루스코니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 때문에 갑자기 베를루스코니가 검색어로 뜨면서 이 블로그에까지 오는 이들이 늘었고, 여차저차해서 후배와 붕가붕가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런데 대체 이 붕가붕가는 어디서 나온 말이며 정확히 무슨 뜻일까.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Bunga bunga는 "어원이 분명하지 않으며 1910년대부터 여러 의미로 쓰인다"고 돼 있다. 그렇구나! 역사가 오래됐구나! 호주에는 1852년에 모어튼 베이 지역을 붕가붕가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는데 이 땅은 아무 관련이 없는 듯.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붕가붕가라는 말을 100여년 전 썼던 사람들 중에는 버지니아 울프도 있다. 아일랜드 시인 호레이스 드 비어 콜, 버지니아 울프(당시는 버지니아 스티븐)와 그 동생 에이드리언 스티븐 등 몇몇 무리가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의 왕자'인 척 하고 당대 세계 최고급 전함이던 영국의 드레드노트 호에 올랐다.
드레드노트의 장난꾸러기들. 맨 오른쪽에 수염 붙인 사람이 버지니아 울프다.
이들이 전함에 타고 되도 않는 엉터리 외국어를 외치며 실컷 장난을 즐겼는데, 그 때 외친 말들 중에 '붕가 붕가!'도 있었다고. 그래서 당시 이 말이 장난꾼들의 유행어??가 됐다고 한다. 에이드리언 스티븐은 언론 인터뷰 "우리는 붕가붕가라는 말을 했고 그 말은 당시에 유행어가 됐다"고 했는데, 정작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아마도 재미 삼아 만든 구호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들이 '만든' 말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말이다.
붕가붕가는 20세기 중반 대중문화에 다시 등장한다. 1950년 루니툰스의 벅스 바니 시리즈 중 하나인 단편 애니메이션 '부시 헤어(Bushy Hare)'에 "웅가 붕가 붕가(Unga Bunga Bunga)"라는 말이 나온다. 벅스 바니가 호주 애버리지니 원주민 소년을 만나서 말도 안 되는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 나온 말이라고 한다.
애니메이션 '부시 헤어'
이쯤 되니, 앞서 내가 대학 때 들었던 '원주민 농담'이나 20세기 초반 버지니아 울프 등의 '아비시니아 장난질' 등을 엮는 일관된 무언가가 드러난다. '아프리카 토인 말(혹은 인간 이하 취급을 받았던 애버리지니 언어)'을 비하해 흉내내는 표현이라는 것. 실제로 내가 들은 붕가붕가 유머의 '원전'은 유럽에서 나온 것이다. 식민통치 시절 유럽 탐험가들이 아프리카에 갔다가 원주민들에게 붕가붕가(애널 섹스)를 강요당했다는 유머가 한국에까지 왔던 것이니.
남아프리카 여성 세라 바르트만은 엉덩이가 크다는 이유로 백인들에게 잡혀가 구경거리가 됐고, 나중에는 시신까지 모욕을 당했다. 이른바 '호텐토트의 비너스'. 여기서 '호텐토트'는 네덜란드인들이 듣기에 바르트만이 속한 코이코이 부족의 말이 유아어처럼 '호텐토텐'하는 것으로 들린다 해서 붙여진 비하적인 이름이었다. 벅스 바니 만화의 웅가붕가붕가는 애버리지니를 향한 '호텐토텐' 같은 용어였던 셈이다. 동아프리카 사람들이 쓰는 스와힐리어의 인삿말 '잠보'가 아프리카의 무언가를 상징하는 말이 된 것은, 그나마 가치중립적이라 하겠다.
2010년 베를루스코니 스캔들에서 문제가 된 것은 성매매 여성들을 포함해 그 작자와 여러 명이 벌인 일명 '붕가붕가 파티'였다. 난잡한 파티에 참석한 여성들은 베를루스코니가 성행위 중 "붕가붕가!"라고 외치곤 했다고 증언했고, 그 파티의 이름은 붕가붕가 파티가 됐다. 덕택에 붕가붕가는 섹스파티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이 스캔들 뒤 Urban Dictionary에 올라온 말뜻은 이렇다.
"붕가붕가는 강력한 리더와 몇몇 벌거벗은 여성들이 연루된 에로틱한 예식. 예) 만찬 뒤에 우리 모두 붕가붕가를 즐겼다."
아.... 내가 지금 이런 거 찾아보고 있을 때가 아닌데...
'이런 얘기 저런 얘기 > 딸기네 다락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고기의 혀 (0) | 2017.10.23 |
---|---|
세계의 멋진 공중정원들 (0) | 2016.11.03 |
위니더푸, 도널드덕, 헬로키티, 고질라... 우리와 함께 나이 들어 가는 전설의 캐릭터들 (1) | 2014.12.19 |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집은? (0) | 2014.09.08 |
장자일기/ 마침내 끝 (2) | 2014.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