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6)는 지난 12일(현지시간) 기후변화 대응을 외쳐온 이들에게 다소간 실망감을 안겨주며 끝났지만 성과는 있었다. 회의 종료를 이틀 앞두고 포드, 제너럴모터스(GM), 다임러, 볼보, 재규어랜드로버, 중국 BYD 등 10여개 자동차 회사가 내연기관 차량을 단종시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주요 시장에서는 2035년까지 출시를 중단하고, 2040년에는 세계 시장에서 가솔린과 디젤 차량을 내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이 생산하는 차량은 세계 전체 생산량의 25%정도다.
[S&Pglobal] COP26: Major automakers, governments fail to sign 2040 zero-emissions transport pledge
포드는 2030년까지 전체 생산차량 가운데 40%를 전기차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내놨고 벤츠를 만드는 다임러는 이번 선언을 넘어서 “더 야심찬” 목표를 갖고 있다고 했다. 2030년까지 가능한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스웨덴 볼보도 마찬가지다. GM은 2035년까지 목표를 앞당겨 달성할 계획이다. 기술전문매체 기즈모도는 “가솔린 차량이 멸종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평했다. 자동차회사들뿐 아니라 공유차량 운영회사인 우버와 리스플랜 같은 회사 10여곳, 차량보험 등을 판매하는 아비바와 냇웨스트 같은 금융회사, 자동차 회사에 투자해온 투자사들 20여곳도 동참하겠다고 했다.
[Gizmodo] Gas-Powered Vehicles Just Got One Step Closer to Extinction
뉴욕타임스, CNN, BBC 등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탈탄소 시간표를 공개하지 않은 회사들을 적시했다. 그린피스 독일대표 마틴 카이저는 “폭스바겐, 도요타, 현대는 전기차 생산으로 가겠다고 약속하는 이번 선언에 사인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세계의 관심은 선언에 참여한 회사들이 아니라 동참하지 않은 회사들에 쏠렸다. 탈탄소 계획을 발표한 카메이커들과 그렇지 않은 회사들 사이에서 미래지향적이냐 아니냐의 구분선이 그어지는 양상이다.
[CNN] Top automakers won't commit to selling only zero-emission cars by 2040
2015년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했다 들통나 망신을 당한 폭스바겐은 친환경 이미지를 구축하려 애쓰고 있고, 실제로 전기차 생산 투자를 대폭 늘렸다. 2025년까지 전기차 모델 80여개를 내놓을 것이고 이를 위해 유럽에 2030년까지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기가팩토리 6곳을 지을 것이라고 했다. 2030년까지 유럽시장에 내놓는 차의 70%, 미국시장에서는 50%를 전기차로 전환할 계획이다.
[로이터] VW's Diess says to remain CEO, dismisses fossil fuel phase out
폭스바겐이 걱정하는 것은 공급체인이다. 당장 차량용 배터리 생산을 늘리려면 거기 들어가는 소재를 확보해야 한다.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 헤르베르트 디스는 공급망 곳곳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해왔다. 그래서 제로에미션, 즉 탄소배출 제로로 간다는 목표에는 동의하지만 2040년까지 내연기관 차량의 생산을 끝내기에는 시일이 촉박할 수 있어서 선언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했다. 디스 CEO가 독일 언론에 밝힌 폭스바겐의 배출량 제로(넷제로) 목표는 2050년이다.
2020년 기준 세계 자동차회사별 판매량을 보면 1위 도요타, 2위 폭스바겐, 3위 르노닛산비쓰비시, 4위 GM, 5위 현대였다. 도요타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의 일부 지역은 차량 전기화를 진전시킬 환경이 아직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는 선언에 동참하기 어렵다”는 성명을 냈다. 도요타는 지난 9월에 2030년까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 배터리 생산에 1조5000억엔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전기차로 전환하는 목표 시한을 제시한 적은 없다. 또 전기차 기술에 대해 아직 확신이 없어서 수소차량과 병행하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수소차량 판매는 아직 미미하다. AFP에 따르면 도요타가 2014년 내놓은 수소차량 미라이는 지금껏 1만7000대 팔리는 데에 그쳤다. 지난해 도요타가 판매한 차량이 950만대가 넘는데 그 중 200만대가 하이브리드차였고 나머지는 모두 내연기관차였다.
[AFP] Here's why Toyota hasn't signed COP26 emissions pledge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 전체에서 인류가 내뿜는 이산화탄소 가운데 약 5분의1이 배와 비행기, 자동차 같은 교통수단에서 나오며 그 가운데 절반을 자동차가 차지한다. 미국 환경보호청(EPA) 추산으로는 2019년 미국 전체에서 사람들이 내뿜은 이산화탄소의 29%가 교통수단에서 배출됐다. 기후대응을 위해 자동차 탄소배출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의문을 갖는 이들도 있다. 전력 생산에서 탄소가 나온다면 전기차로 전환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컨설팅회사 래디언트에너지그룹은 유럽 각국에서 발전 과정에 배출되는 탄소를 포함한 전기차의 직간접적 탄소배출량을 내연기관 차량과 비교했다. 석탄 발전의 탄소배출을 줄인 '청정석탄' 기술이 많이 보급됐지만 폴란드 등은 여전히 오염이 심한 재래식 석탄발전을 하고 있어서 전력 생산 자체에서 탄소가 많이 나온다. 그래서 기름을 태우는 차량보다 전기차의 탄소배출이 계산해보면 오히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부분 나라에서는 전기차의 환경 우위가 입증됐다. 결국 전력을 얼마나 깨끗하게 생산하고 있느냐와 직결되며, 전기차 전환이 발전부문에서 재생가능 에너지원의 비중을 늘리는 문제와 이어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로이터] Is your electric car as eco-friendly as you thought?
에너지연구센터인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전기차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비용은 80%가 줄었다. 전기차로 가기 위한 기술적인 과제들은 계속 진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충전소 인프라는 또 다른 문제다. 폭스바겐의 경우 현재 유럽에서 운영하는 충전소는 3600곳이다. 이 회사는 영국 BP, 스페인 이베르드롤라, 이탈리아 에넬 등 에너지회사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2025년까지 충전소를 1만800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그렇게 해도 유럽 내 충전소 수요의 3분의 1에 그치는 정도라고 회사 측은 보고 있다. 인프라를 더 빨리 깔아야 한다는 얘기다. 폭스바겐은 미국에서는 일렉트리파이 아메리카Electrify America라는 자회사를 두고 충전소를 늘리고 있다. 올 연말까지 북미 지역에 충전소 3500곳을 확보할 방침이고, 중국에서는 2025년까지 1만7000곳으로 늘릴 예정이다.
전기차의 대명사 격인 테슬라는 현재 세계에 충전소 2만여 곳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개별 회사들의 운영을 넘어 각국의 에너지 인프라와 통합되는 게 옳다. 미국 하원은 지난 5일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예산을 통과시켰다. 그 가운데 75억달러, 약 8조9000억원이 전국에 전기차 충전망을 까는 데에 들어간다. 테슬라는 네덜란드에서 충전망을 다른 회사의 전기차들에도 개방했는데 다른 나라들로 비슷한 조치를 늘려갈 계획이다.
2040년까지 국가 차원에서 내연기관 차량을 없애겠다고 발표한 나라들도 있다. 10일까지 30여개국이 선언에 동참했다.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 많고 영국과 네덜란드 폴란드 등도 합류했다. 캐나다, 멕시코, 칠레, 터키, 이스라엘도 들어 있고 케냐, 가나, 르완다, 캄보디아 등 개도국들도 전기차로 이동하겠다고 선언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세계 4위 자동차 생산국 인도의 참여 선언이다. 인도는 지금까지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이었지만 이제는 기후대응 리더십에 참여해야 한다는 쪽으로 전환한 듯하다. 미국 과학자단체 ‘우려하는 과학자들’ 추산을 보면 국가별 탄소배출량은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독일, 이란, 한국,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순이다. 이들 10개 나라 가운데 이번 내연차량 없애기 선언에 동참한 것은 인도 뿐이다.
국가 차원이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 전기차 전환 계획을 발표한 곳들도 30여곳에 이른다. 중국과 미국에서도 지역별로 선언한 곳들이 눈에 띈다. 특히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뉴욕, 워싱턴주가 서명했다. 캘리포니아는 총생산(GDP)으로 보면 2019년 기준으로 세계 5위 경제단위다. 인도나 영국, 프랑스보다도 경제규모가 크다. 뉴욕은 국가들과 나란히 놓고 보면 세계 12위다. 이런 주들이 동참한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세계 교통수단이 내뿜는 이산화탄소 가운데 절반이 자동차에서 나온다는데, 그럼 항공기나 선박의 탄소배출도 함께 줄여야 하지 않을까. 항공산업이 세계 탄소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 정도다. 미국 정부는 2050년까지 배출량 순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잡았는데 여기에는 항공산업도 포함된다. 항공업계도 세계의 대세가 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래서 거론되는 것이 지속가능 항공연료(SAF)다. 석유가 아닌 식물성 기름을 쓰면 항공기의 탄소배출량을 많게는 80%나 줄일 수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2030년까지 항공기의 지속가능연료 비중을 5.2%로 높인다는 목표를 잡았다.
문제는 지속가능연료의 가격, 그리고 대량 공급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자동차 배터리처럼 투자와 생산을 늘려 기술을 발전시키고 비용을 줄이는 선순환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 젯블루, 유나이티드항공 미국 항공사들은 지속가능연료 비중을 늘리기 위한 투자를 시작했고 미국 정부도 보조금 등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그런데 석유기반 연료에 식물성 연료를 섞어 쓰면 엔진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항공기 제조사 보잉은 2030년까지 100% 지속가능연료로 날 수 있는 비행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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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는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전기차는 차량 운행에서는 탄소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청정연료를 쓰더라도 항공기 탄소배출은 적어도 20%는 남는다. 항공산업이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나무심기를 지원하는 등의 방식으로 배출한 만큼 상쇄를 해야 한다. 대형 항공사들이 이미 이런 투자를 늘리고는 있지만 정확하게 배출한 양과 상쇄하는 양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가 문제다. 자칫 '그린워싱', 녹색인 양 포장하는 이미지 세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나이티드항공은 비행기에서 나오는 탄소를 즉시 잡아가두는 ‘대기중 직접포집(DAC)’ 기술 연구에도 돈을 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보다는 전기비행기, 수소비행기를 상용화하는 쪽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지난 9월 엔진제작사 롤스로이스는 영국 보스콤다운 Boscombe Down 공군기지에서 전기비행기의 15분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업계에서는 ‘비행 택시’ 개념의 단거리 운항용으로 2~3년 안에 전기비행기가 상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에어버스는 2035년까지 수소연료로 움직이는 항공기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로이터] UN climate summit lands pledges to slash emissions from cars, planes and ships
세계에서 교역되는 물품의 90%는 바다로 이동한다. 선박 운송에서도 미국과 영국 등 19개국이 2050년까지 바다에 ‘녹색회랑(green shipping corridors)'들을 설치하자는 데에 합의했다. 피트 부티지지 미국 교통장관은 “집단행동으로 가는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아니다. 미국은 2050년까지 국제 선박수송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설정하라고 국제해사기구(IMO)에 촉구하고 있다.
아직은 선언일지언정, 미흡할지언정, 세계는 탈탄소로 달려가고 있다. 최소한 COP26은 '탄소중립'이 거부할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이런 움직임들 속에서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들의 자리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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