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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 100억달러 펀드...터키와 손잡는 UAE

딸기21 2021. 11. 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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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터키에 투자하기 위해 100억달러(약 12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아부다비 왕세제 모하메드 빈 자예드(MBZ)의 24일 터키 방문에 맞춰 UAE 국영통신 WAM을 통해 거액 투자 발표가 나왔다. 아부다비 국부펀드(Abu Dhabi Development Holding, ADQ)와 터키 국부펀드인 TVF, 터키 대통령투자실, 그리고 몇몇 터키 기업들이 펀드에 참여해 에너지와 보건 분야에 주로 투자할 것으로 보도됐다.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는 언론들을 대거 문닫게 하고 통제를 강화한 뒤 '소통국'을 만들어서 대외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는데, 소통국 성명에 따르면 양국 협력 관계를 전방위로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모하메드 왕세제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회담한 뒤 트위터에 “우리 두 나라에 이익을 주고 상호 발전의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해 새로운 협력 기회를 찾기를 기대한다”는 글을 올렸다.

 

[TRT월드] Turkey, UAE seek to patch up ties as MBZ visits Ankara

모하메드 왕세제의 방문에서 양국은 에너지, 보건, 기술, 교통, 항만과 물류, 미디어 등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에 합의했다. 자금 세탁과 테러 자금 조달을 막기 위한 협정에도 서명했다. 아부다비 증권거래소와 이스탄불 증권거래소도 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양국 중앙은행들과 관세 당국도 협력을 하기로 했다고 터키 국영방송 TRT월드는 보도했다. 양국 중앙은행은 터키 리라화를 안정시킬 수 있도록 통화스와프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The meeting between President Tayyip Erdogan and Abu Dhabi Crown Prince Sheikh Mohammed bin Zayed Al Nahyan in Ankara, Turkey, comes as the two countries work to mend frayed ties, and amid a currency crisis in Turkey [Murat Cetinmuhurdar/Presidential Press Office via Reuters]


터키는 요즘 환율위기를 겪고 있다. 올들어 리라화 가치가 45%나 떨어졌다. 터키는 중국과 60억 달러, 카타르와 150억 달러, 한국과 20억 달러 등 총 230억달러 규모의 스와프 협정을 맺고 있다. 하지만 리라화 위기가 심각해지자 터키 중앙은행은 다른 나라들로 스와프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가 둔화되면 돈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고집해온 에르도안 대통령이다. 에르도안은 중앙은행이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자 2년 새 3명의 총재를 쫓아냈다. 마지막 교체가 올 3월이었다. 그러고 나서 9월에 중앙은행을 대놓고 압박해 금리를 19%에서 15%로 낮추게 했다. 올들어 물가가 20% 이상 치솟았는데 돈을 더 풀게 만든 것이다. 급격한 금리 인하는 리라의 추락을 더욱 부추겼다. 에르도안이 “일자리 창출과 성장에 도움될 것”이라며 금리 인하를 옹호하자마자 23일 하루에만 리라화는 8% 더 떨어졌다. 미국 달러 대비 최저이고, 유로화와 비교해서도 리라 약세는 연일 기록을 경신했다. 

에르도안 정권은 외교적으로도 고립돼 있다. 에르도안은 사법제도 등 민주적 절차들을 짓밟고 언론사들을 줄줄이 없애면서 재갈을 물리고, 터키 헌법에 규정된 세속주의의 원칙들까지 어겨가면서 이슬람주의를 강화해왔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국들과 마찰이 심했다. 올초에도 터키 주재 미국 대사와 유럽연합(EU) 대사가 에르도안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사법제도를 비판하자 대사들을 추방하겠다고 을러댔다가 철회했다.

 

WSJ


에르도안은 지난 몇 년 동안 경제가 휘청거리고 리라가 흔들리면 ‘외국 세력의 짓’으로 돌려왔다. 이번에도 리라 떨어지니까 “터키는 경제적인 독립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가, 궁지에 몰려 결국 UAE에 손을 내민 것으로 보인다. 

[WSJ] Turkish Lira Tumbles After Erdogan Defends Rate Cuts

에르도안 대통령과 만난 모하메드 왕세제는 사실상 UAE를 이끄는 지도자다. 명목상으로는 국가 수장이 아니기 때문에 언론들이 두 나라 지도자 회동을 ‘정상회담’이 아닌 ‘최고위급 회담’이라고 표현하고는 있지만. 


MBZ로 통칭되는 왕세제는 현 에미르(수장)인 칼리파 빈 자예드의 동생이다. UAE는 7개 수장국들의 연합체로, 아부다비의 수장이 대통령을 맡고 두바이 수장이 총리를 맡는다. 국가 수반은 칼리파 대통령이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모하메드 왕세제가 아부다비를 통치하면서 UAE를 움직이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UAE의 공세적인 외교정책을 주도한 사람이 그다. 작년 8월 UAE가 이스라엘과 전격 수교하면서 중동이 들썩였는데, 그 결정을 내린 사람도 모하메드 왕세제였다. 또 그는 교육, 과학기술, 에너지, 탈석유 경제, 금융 등등 UAE의 전방위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정치 개혁과 민주화만 빼고.

[구정은의 '수상한 GPS']이스라엘과 손잡은 UAE, 중동 판세가 바뀐다

 

Turkish currency has come under pressure days before local elections in what Ankara says is an speculative attack. (AA)

 

아부다비가 돈을 풀어주면 터키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에르도안은 총리로, 그리고 대통령으로 20년 가까이 집권하면서 권력을 강화하고 대외 영향력을 늘리는 데에 치중했다. 현대판 '술탄'이라 불리는 그는 유혈진압을 불사해가며 시민들 반발을 억눌러왔다. 터키 경제에는 에르도안 정권 자체가 리스크다. 아부다비 돈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리라화는 잠시 반등했지만 터키 경제 전반의 문제는 그대로다. 리라는 신뢰를 너무 잃었고, 화폐 가치가 떨어져 국민들의 재산은 1년 새 반토막이 됐다. 앙카라대학의 한 전문가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자해한 환자의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WSJ] Turkey’s Erdogan Looks to Regional Rival for Investment Amid Currency Crisis

어쨌든 두 지도자의 이번 회동은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양측 정상급 만남은 2016년 이후 5년만이며 모하메드 왕세제가 터키를 공식 방문한 것은 2012년 이후 처음이다. 12월 중순에는 터키 외교장관이 아부다비를 답방한다. 터키 통신국은 “양국 관계는 모든 면에서 개선되고 있다”고 했다. 터키측 관계자가 로이터통신에 한 말을 빌면 “UAE와의 사이에 있었던 문제들은 다 과거의 일이 됐다.”

 

[구정은의 '수상한 GPS'] 미·중·UAE 탐사선 발사

 

A board outside an exchange office in Istanbul. PHOTO: SEDAT SUNA/SHUTTERSTOCK


10년 전 아랍의 봄 이후로 두 나라는 내내 싸웠다. 중동에서 외교적 영향력이 크던 이집트 같은 나라들의 역할이 줄어들고 사우디도 경제적, 정치적으로 흔들리던 터였다. UAE와 사우디는 아랍의 봄 같은 시민혁명을 매우 두려워한 반면, 터키와 카타르는 이전의 강국들이 흔들리는 걸 즐기면서 아랍의 봄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한 사우디나 UAE 같은 걸프 왕정들이 경계하는 이슬람세력들을 물밑 지원했다. 이집트에서 아랍의 봄 뒤에 이슬람 정치조직인 무슬림형제단 정권이 들어서자 카타르와 터키는 그쪽 편을 들었던 반면에 UAE는 이집트 군부 세력이 다시 나서서 이슬람 정권을 뒤엎는 사실상의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을 지원했다.

 
[TRT월드] From rivalry to rapprochement: What’s behind UAE and Turkey’s meeting?

리비아에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뒤 양대 정치세력이 내전을 벌였는데 터키와 UAE는 여기서도 서로 다른 세력을 지원했다. 말하자면 아랍의 봄 이후 중동의 격변 속에서 크게 보면 사우디-UAE 진영과 터키-카타르 진영이 나뉘어 곳곳의 분란에 끼어들면서 세력 확대 경쟁을 벌인 것이다.

 

Turkish President Tayyip Erdogan, accompanied by his wife Emine Erdogan, is welcomed by Emir of Qatar Sheikh Tamim Bin Hamad Al-Thani in Doha, Qatar, July 24, 2017. Kayhan Ozer/Presidential Palace (Turkey)/Handout via REUTERS


갈등이 극에 달한 것은 '카타르 사태' 때였다. 2017년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걸프국들이 역내 국가인 카타르 따돌리기에 돌입했다. 카타르 항공기가 자기네 영공도 통과 못하게 하고 금수조치를 취했다. 다른 걸프 왕정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방된 카타르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알자지라방송을 없애라며 실현 불가능한 압박을 했다. 심지어 카타르를 테러 지원세력으로 몰아갔다. UAE는 이 때에도 사우디 옆에 섰지만 터키는 카타르 편을 들며 오히려 카타르와 군사협력을 늘렸다. 카타르 왕따 만들기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사우디 편을 들었지만 조 바이든 정부는 다르다. 올들어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자 사우디와 UAE는 물러서서 카타르 제재를 풀어줬다.


예멘 전쟁에서도 UAE는 사우디를 따랐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예멘의 친이란 반군을 진압한다면서 전쟁을 일으켰지만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명백한 실패였고 예멘인들을 인도적 재난으로 몰아갔다. UAE는 결국 먼저 손떼고 나왔고 사우디와도 사이가 벌어졌다.

 

Yemeni security forces loyal to the Houthi rebel government stands guard at a square in the capital, Sanaa, on June 5, 2019.  MOHAMMED HUWAIS/AFP/GETTY IMAGES


때아닌 팽창주의로 진창에 빠진 것은 터키도 마찬가지다. 중앙아시아에서 북아프리카까지, 영향력을 키운다면서 너무 많은 일들에 개입해 여러 나라들과 마찰을 빚었다. 근 10년 중동-북아프리카 곳곳에서 서로 경쟁을 벌였지만 두 나라 모두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역량에 한계가 있었다. 이번 만남은 양국 관계의 전환점이자, 두 나라가 펼쳐온 대립의 전환점이기도 하다. 경제적 효과보다 지정학적 영향은 훨씬 클 것 같다. 역내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라는 얘기들이 나온다.

 

크게 보면, 두 나라의 만남이 중동 정세를 변화시킨다기보다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상징적인 신호라고 봐야 할 듯하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아프간에서 군대를 빼냄으로써 불필요한 분쟁에 휘말려들어 국력 낭비하지 않겠다는 뜻을 세계에 전달했다. 중동보다는 전략적 경쟁상대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의 관계에 비중을 싣겠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한 것이다. 또 트럼프 정부가 엎어버렸던 이란과의 핵합의로 돌아가려고 협상에 들어갔다.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쉽게 풀리지는 않겠지만 바이든 정부의 행보가 터키-UAE 관계개선을 비롯한 역내 대립의 완화에 큰 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다. 


[CNN] What a Crown Prince's trip to Turkey tells us about the post-American Middle East

사우디와 UAE는 미국의 맹방이지만 미국에 대한 신뢰가 계속 줄어왔다. UAE는 러시아나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있고, 이스라엘과도 수교했다. 이란을 견제하면서도 동시에 관계개선 메시지를 보냈다. 이달 초에는 모하메드 왕세제의 동생인 셰이크 압달라 UAE 외교장관이 시리아를 방문했으며 이제 터키와도 손을 잡았다.

 

Israel and UAE signed US-sponsored agreement last year, reportedly in exchange for a freeze of Israel’s annexation of Palestinian lands (AFP)


한 길을 가던 사우디와 UAE의 사이가 벌어졌다고는 하지만 사우디도 결국 같은 길을 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사우디 역시 터키와 가까워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가 이란이나 이스라엘과 이른 시일 내 관계를 풀기는 힘들겠지만 흐름을 거부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란과 아랍권의 대립도 마찬가지다. 이란과 극도로 적대적인 이스라엘, 사우디, UAE 같은 나라들이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이란과 상대적으로 관계가 밀접한 카타르, 이라크, 시리아 같은 나라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대립선이 지금은 흐려지고 있다. 대립선의 중심에는 미국과의 관계가 놓여 있었지만 미국이 탈중동 움직임을 보이면서 역내 국가들이 무의미한 대리전쟁을 계속할 의미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세력 경쟁으로 예멘 전쟁이 벌어졌고 리비아 내전이 격화됐고 결국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안겼다. 하지만 이제는 현타가 왔다. 터키는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에 발목을 잡혔고, UAE 역시 공격적 대외정책에서 평화 중재자로 역할을 바꾸려 하고 있다. CNN은 역내에 일종의 데탕트가 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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