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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중국사- 당>

딸기21 2023. 7. 5.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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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중국사 당 - 열린 세계 제국
마크 에드워드 루이스, 김한신 옮김. 너머북스 

 

 

이 책만 두드러지게 번역 문장이 매우 나쁨. 영어 직역이라 비비꼬인. 

 

대다수의 중국인은 당 왕조(618-907)를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화 제국의 절정기로 인식하고 있다. 당 제국은 청 왕조 이전 중국 왕조 중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고 종교, 문자, 그리고 다양한 경제적 정치적 제도로 연결되었던 동아시아 세계의 중심이었다. 당대의 문인들은 중국의 위대한 서정시의 전통에서 최상의 시들을 만들어 내었고, 그것들은 중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 최고 수준의 문학 장르로 남았다.
정치와 예술에서의 초기 업적에 대한 찬양은 후대 왕조들에서 더욱 강조되었다. 당 왕조는 최후의 위대한 '중국 민족’ 왕조였다. (군사적으로 약체였던 명 왕조에 대해서는 고려치 않은) 이러한 생각은 당 왕실이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변방의 오랑캐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무시한 것이었다.
-17-18

당대 가장 큰 변화의 하나는 중화 제국의 공간에 대한 재정립이었다. 황하는 북서부의 오르도스 분지로부터 함곡관 동쪽의 비옥한 중원 평원을 통과하여 동북부 해안의 범람원에까지 이르는데 이는 생산성이 가장 높고 인구가 제일 많이 밀집한 지역들을 지나는 것이었다.
당 왕조가 멸망할 즈음에는 그 모든 것이 완전히 변하였다. 과거의 대도시는 다시 한 번 폐허가 되고, 장안과 같은 도시들도 제국의 수도로서의 이전과 같은 지위를 회복하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중심지였던 북서부 지역은 장기간의 경제적, 생태적 쇠퇴가 시작되어 오늘날과 같은 빈곤하고 반 사막인 후배지로 전락하게 된다. 북동부(오늘날의 하북성과 산동성)는 거의 이민족화되어 경계 지역이 되었고, 후기 중화 제국 시기 내내 비한족 '정복왕조들'의 본거지로서 유지되었다. 
양자 강 하류 지역과 그 남부 지역은 중국의 인구학적 그리고 경제적 중심지로서 점차 황하 유역을 대체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남조 시대의 4세기 동안 착실하게 발전해 왔고 당대에 중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28-30

비옥한 양자강 하류 지역은 훨씬 남동쪽에 있었고, 그곳에서는 당 조정과 북서부 지역을 위한 대부분의 식량과 사용 가능한 세입을 생산하였다. 부유하지만 상대적으로 비군사화된 남부가 전략적인 이유로 북부에 위치한 수도를 실질적으로 그리고 재정적으로 지속시켜 주는 지정학적인 구조는 후기 중화 제국의 전형이 되었다.
-40

 

중국 본토와 외지 사이의 구분은 고대 시기부터의 다양한 문학적 전통 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중국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는 내지(內地)는 기원전 4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상서(書經)』  「하서(夏書)」 중 ‘우공(禹貢)’ 편에서 묘사된 세계와 일치한다. 이 글에서는 두 개의 강 유역 사이에 위치하는 지역을 생산품의 차이에 따라 다시 아홉 개의 구역으로 나눈다. '구주'라고 하는 이 명칭은 결국 중국 전체를 나타낸다.
이러한 동심원적인 모델은 구주가 더 거대한 대륙의 한 구석에 불과하였다는 전국시대 말기와 전한 시기에 등장한 새로운 세계관의 도전을 받았다. 한대 이후의 몇 세기 동안에, 북동부, 북부, 그리고 북서부 지역의 외지와의 관계는 크게 변화하였다. 4세기 초반 이후 황하 유역을 다스렸던 모든 왕조들은 이민족들로부터 기원하였다. 중국 본토에서 벗어난 북부 세계는 무엇보다도 군사들의 공급자이자 지배자로서 필연적으로 내지의 정치 질서에 휘말려 들어갔다. 후한 초기부터 당대까지 지속된 비중국인의 내지 이주는 또한 중국 인구의 인종적 구성을 변화시켰다.
-63-64

 

구주는 알쥐... 구주천공성 구주표묘록 곡주부인 등등. <구주표묘록>은 정말 장관이었는데, 시즌2가 안 나와...  이런 급의 드라마는 시진핑 3기의 중국에서 앞으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음 ㅠㅠㅠㅠㅠ

 

<구주표묘록>.


천공성은 유치한 맛에 보는 거고(쥐징이를 발견한 것이 내겐 가장 큰 소득), 천공성 2는 두어편 보다 말았고, 해상목운기는... 황현이 맘에 들지 않음. 중간까지 보다가 별다른 이유 없이 안 보고 말았음.

 

중국 역사가들은 태종이 피로 더럽혀지고 불효한 그의 황제 즉위 과정을 보상하기 위해 채택했던 국가 정책들에서 뚜렷하게 표현된 유가적 가치들에 대해서 찬양하였다. 그의 치세의 연호인 정관(627-649)은 이후 중국 역사에서 선정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의 재위의 마지막 20여 년은 그와 재신들과의 끊임없는 다툼으로 얼룩졌고, 심지어 그가 가장 위대한 승리를 이뤘던 외교 정책도 몇 차례에 걸친 고구려에 대한 재앙적인 전쟁 이후에 뒤틀어지기 시작하였다. 649년 태종의 시의적절한 죽음은 그가 과거 한반도를 침공하였던 또 다른 황제인 수양제의 운명을 재현하는 것으로부터 구제해 주었다.
-81

 

번역이 이쯤 되면 디플이 나앗겠다… 

암튼 이세민 나오면 드라마도 안심하고 볼 수 있다는. 
최근 몇년 새 본 중드 가운데 수작인 <대당여아행(려가행)>. 정말 잘 만들었다! 줄거리도, 촬영도, 화면도...

 

 

줄거리에서 장손황후와 당 황실 굴러가는 것, 당대 풍습과 법제 등등 보는 게 넘나 재미있음.

'믿고 보는 당태종 컨셉'의 타임슬립 <당전>도 재미있었고. 

 

넘나 좋아하는 배우 장자닝.

 

하지만 이세민 역할은 당전의 배우보다는 <려가행> 배우나 <장가행> 배우가 훨씬 맘에 들었음.

 

"황궁과 황성은 10미터 높이의 벽과 그보다 더 높은 문들로 일반 대중과 분리되었다(그림). 그 누구도 허락 없이 황성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188쪽)

중드 볼 때마다 신기했던 것. 드높은 황궁... 

장안의 도시 구조와 외국인들, ‘조로아스터교 사원, 마니교 사원 그리고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사원’(196쪽) 같은 종교 시설들 얘기도 나옴. (오래 전에 이산 출판사에서 나온 <장안의 봄>이라는 책을 앞부분 3분의1쯤 읽었는데 누군가가 책을 훔쳐가버렸다! ㅠㅠ 다시 사야 하나)

머니머니해도 당 배경 중드 하면 <장안십이시진>이지. 

 

<장안십이시진>, 이 드라마는 증말이지 중드의 최고봉입니다!


또 소소하게 생각나는 것들.


"모란꽃에 대한 열광은 수와 당 황제들로 인해 시작되었고 대도시 사회 전체에 전파되었다. 그것은 불교와 연관된 연꽃과 같은 정신성의 상징이 아니라 그 꽃의 별명인 '부귀화'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부귀의 상징이었다." (226쪽)

 

<풍기예상>에서 본 거네. 구리나자 연기만 빼면 <풍기예상>도 상당히 설득력있게 고증 잘 했고 꽤나 잘 만든 드라마였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됨. 

 



"사유지의 등장과 새로운 농업 기술과 장거리 교역의 성장 사이에는 분명한 연결고리가 있었다. …더 큰 부를 필요로 하였던 가장 중요한 기술은 밀가루 제분 방식이었다. 당대에는 제분 제품에 대한 소비가 매우 두드러졌는데, 특히 북쪽 지방의 밀과 남쪽 지방에서는 나는 사고 Sago 가루가 유명하였다. 사고는 야자 열매 가루로 남쪽 지역에서 나는 하얀 씨로 된 율무와 더불어 유명하였다. 특히 도성과 북부 다른 지역 도시에서는 길거리 노점상의 터키식 케이크와 페이스트리는 매우 큰 인기를 끌기도 …"

튀르키예 과자의 유구한 역사… 

 

당 왕조를 창업한 이씨 가문의 먼 조상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지만, 6세기가 되면 그 가문은 북주와 수 왕조 치하에서 한족-선비족 돌궐족 혼혈 귀족으로서 역대로 유명한 군인들을 배출하였다. 
(일부에선 당 황실을 한대의 유력 가문 출신으로 꾸미려고 했지만 돌궐 문제에서는 비한족 유목민과 당 황실 사이의 문화적 유대감이 큰 역할을 했다는 내용~~) 이러한 새로운 정책은 두 번째 황제인 태종의 재위기에 등장하였는데, 이때에 당 제국은 돌궐에 비위를 맞추는 태조의 정책을 포기하고, 대신 그들을 정복하기로 했다… 그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당태종과 그의 정책 고문들이 돌궐의 정치적, 군사적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태종은 점차 천자라고 하는 전통적인 타이틀에서 구현되는 중국의 지배자라는 것과 천가한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이 의미하는 돌궐에 대한 지배권이 결합된 위대한 이원 군주국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298-299

 

문장이 극악하여, 스크랩 하기에도 다소 어려움이…

한 멸망 이후 중국 북부 지역을 차지한 유목민 전사들은 유목 사회를 특징지었던 여성과 남성 사이의 평등함을 중국에 가져왔다. 수문제의 부인인 독고황후는 그의 절친한 동료이자 가장 신뢰하는 정치적 조언자였다.
당 왕조의 창업자 당고조는 부인뿐만 아니라 딸 평양공주의 정치적인 도움을 받았는데, 그녀는 정복 전쟁에 참전하여 활약하였다. 당태종도 이와 유사하게 국정 운영에서 장손황후의 도움을 받았다.
강력한 황후들의 존재뿐만 아니라, 당대는 공주들의 정치 참여가 두드러졌던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당고조를 도왔던 평양공주 이외에도, 태평공주는 조정의 업무를 도왔고 어머니 무측천의 자리를 계승하고자 하였다. 안락공주는 705년 이후 조정을 장악하였던 어머니 위황후를 위해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사실 8세기 초반 조정의 역사는 대체로 태평공주가 그녀의 두 명의 주요한 적인 위 황후 그리고 안락공주와 벌인 투쟁의 역사였다. 이러한 투쟁은 710년에 이륭기(훗날의 당현종)가 무장 군인들을 이끌고 궁정으로 침입하여 위황후와 그녀의 딸을 살해하였던 유혈 쿠데타로 종지부를 찍었다.
-357-358


장손씨 헌원씨 이런 성씨 특이함. 

 

<부요황후>의 '장손무극'.


하지만 “가장 간단하게 족보를 조작하는 방법은 자신의 성과 그 조상들의 성을 변경하는 것으로서, 가장 뻔뻔스러운 사례는 바로 당 왕조의 이씨 황실 가문의 경우였다. 여식들이 북주, 수 그리고 당의 황실에 시집을 갔던 명문 독고 씨의 족보는 그들이 한때 유씨의 성을 갖고 있었음을 언급한다. 당대 전기 재상이었던 장손무기는 자신을 탁발 선비족 왕실 가문 출신이라고 주장했는데, 실제 조상은 선비족 중에서 보다 낮은 가문인 발발씨였다.”(388-399쪽)라고 함. 발발씨... ㅎㅎ 시인 이백도 한족이 아닌 것이 거의 확실 안 돼 기원전 99년 흉노에게 사로잡혔던 이릉 장군의 후계라는 식으로 족보를 바꿨다고.

당대가 여성에게 위대한 시기였다는 개념을 심어 준 또 다른 요인은 무덤 장식에서 주 로 발견되는 상류 사회 여성과 궁정의 예능인에 대한 시각적인 표현에 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몇몇이미지에서는 말을 타고, 격구를 즐 기고, 활을 쏘는 여성들이 묘사되어 있다. 
-364


격구하고 말 달리고 싸우고 책략을 쓰고 군대를 지휘하는 여성의 모습은 <장가행>에 잘 나오는데, 문제는 겁나 이뿐 디리러바. 뭐든 열심히 하고 연기를 못하는 건 아닌데도 뭔가가 부족하단 말이지...

 

748년 당 왕조는 진시황제, 한고조, 후한 광무제, 그리고 후한 이후의 대부분의 왕조의 창업주들에 대해서 제사를 거행하였다. 그들은 친족이나 가문의 유산을 포기하면서까지도 통치의 공식적이고, 우주론적이며 윤리적인 특성을 강조하였다. 과거 왕조들을 당 왕조의 의례 속에 포함시키는 것은 당 왕조가 한 가문의 소유가 아님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백거이는 언급하고 있다.
당대에 이르러 책력은 아랍과 인도 천문학에 기반한 보다 정확한 계산을 위한 끊임없는 탐색을 위해서 최소한 아홉 차례 이상 변경되었다. 왕조 가문에 대한 충성을 희생해 가면서, 天에 대해서 책력이 보다 정확하게 상응되도록 만들려는 노력은 다시 한 번 당대 황제들의 공적이고 우주론적인 관심을 분명히 표현한 것이다.
황제의 새로운 비전은 '천'이라는 단어를 황제의 직책에 추가하도록 만들었다. 당태종은 자신을 천가한(天可汗)이자 천자라고 선포하였고, 고종은 자신을 천제로, 무측천은 자신을 천후로 호칭하였다.
-460-461

 

전체적으로 1~2권보다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음. 그렇다고 책이 아주 별로인 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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