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장하준 '개혁의 덫'

딸기21 2004. 10. 2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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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서평' 거리가 될 만한 책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신문이나 방송 기사에 대해서 '미디어 비평'이라는 장르가 정착한지 오래이긴 하지만 이 책을 '책'으로 놓고 보면, 신문에 실렸던 칼럼들을 묶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맘먹고 서평을 쓴다는 것이 우습게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책의 내용중에는 관심거리 내지는 논란거리가 될만한 것들이 많았고, 나 개인한테 던져주는 생각거리들도 많았다.

 


개혁. 개혁이라는 말이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분명 어떤 분야에서든 '개혁'은 의미가 있고 필요한 작업이다. 모순투성이 우리 사회를 고치고 바꾸겠다는데, 사회에 대한 불만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개혁이라는 말 자체에 반기들고 나설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개혁이라는 말은 또한 언제부터인가 무언가 특정한 작업을 지칭하는 일종의 '고유명사'가 되어버렸고(비록 분야에 따라 의미는 다를지언정) 이 단어의 신선도도 많이 떨어졌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개혁의 덫'을 논한다. 아직 개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마당에 덫이라니! 하고 흥분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가리키는 '덫에 걸린 개혁'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뜯어고치기'에 한정돼 있으니, 그를 조선일보 식의 보수우파로 몰아붙일수는 없다. 
오히려 책은 '제대로 된 개혁'을 해보자는 얘기로 가득차 있다. 다만 '개혁'의 잘못된 방향을 꼬집고 있으면서 제대로 된 개혁의 구체적인 모습을 충분히 제시해주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울뿐. 이 점은, 원고지 몇장으로 분량이 한정돼 있는 신문 칼럼의 속성상 어쩔수 없는 한계였다는 것도 인정해주자.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밟아온 과정 혹은 인물에 대해 '섣불리' 말하기가 참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학시절 나는 '혁명'과 '변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선배들이 목청 터져라 외쳤던 두 단어는 옛소련의 붕괴와 함께 물건너간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저 두 단어가 사라진 자리를 '개혁'이라는 어정쩡한 용어가 메꾸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 보고들었던 개념들, 역사관들은 아직까지 내 머리속에 강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나는 그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다. 아주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박정희 정권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바꿔 말하면 한국의 '개발독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장하준 교수는 개발독재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 질타하고 '재벌구조 해체'가 만병통치약인양 주장했던 일군의 '경제개혁가'들을 거세게 비판한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 개발독재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을 재비판하고 ▲ 개발독재의 후유증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미국식/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비판하는 것으로 이뤄져 있다.

최근 몇년간 나의 인식은, 굳이 정리해서 말하자면(아직 제대로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개발독재가 당시의 조건에서는 유효한 발전전략이었다는 것, 박정희 정권의 공과는 따로 떼어놓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 우리 국민 모두가 개발독재의 직간접적 수혜자였다는 쪽으로 변해왔다. 재벌체제 또한 마찬가지다. 문어발 경영의 문제점은 이미 모두가 다 아는 것이지만, 개발독재와 동전의 양면을 구성하고 있는 재벌경영 그리고 국가주도형 경제가 발전의 동력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본다.

 

작년에 도올 김용옥 선생이 문화일보에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인터뷰를 실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나는 김우중이라는 사람을 편들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도망자 처지로 인터뷰에 응했던 그 사람의 말들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는 IMF 경제위기의 수습역을 맡았던 김대중 정권이 자신을 '용서'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물론 그릇된 판단이었다. 이미 그때는 개발독재의 시대는 지나간 뒤였다는 것을 김우중은 몰랐던 것이다. 정부관료와의 결탁을 통해, 대우그룹의 재정적 문제 쯤은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그렇게 판단했던 것이다. 김우중 본인도 자신의 판단이 시대를 읽지 못한 것이었음을 인정한다(그가 자신의 잘못들을 '반성'했는지와는 별개로). 또한 그는 "대우그룹을 해체했던 것처럼 현대그룹을 해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남겼다. 생각해볼 여지가 많았던, 어찌보면 의미깊은 말일 수 있었다. 비록 현대그룹은 안팎의 여러가지 사건들로 이미 해체의 과정을 겪고 있었지만.

어쨌든 시대는 변했다. 지금 개발독재시절의 경제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바보같은 사람은 없다. '파이를 키워줬던' 재벌들을 무조건 두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장하준은
재벌들이 파이를 키워줬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들이 어떻게 파이를 키웠는지, 그들이 파이를 키울수 있도록 국가가 어떤 정책을 펼쳤었는지, 그때의 문제점을 어떻게 고치고 장점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를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그가 비판하는 '잘못된 개혁'이란, 시대가 변했다는 이유로 그시절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비난하면서 그보다 더 못할 가능성이 높은 미국식 자본주의 방법을 무조건 들여오는 류의 조치들이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나는, 개발독재(그시절 사회생활을 하지 않은 어린아이였던 나로서는 그냥 수혜자일 뿐이지만)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입장에서 한걸음 물러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관찰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됐다. 적어도 IMF식, 영미식 '개혁'이 많은 부분 잘못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장하준이 제시하는 수치들 또한 새롭거나 숨겨져있던 것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하준의 지적에 공감하는 나를 보면서 또한 헷갈려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신경쇠약의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직도 죽은 박정희와 싸우고 있는 모양인데, 박정희 정권의 공과 중에 어느덧 '공' 쪽에 눈을 돌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는 것. 진보세력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고 노무현정권의 열광적 지지자도 아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의 보수화를 경계해야 할 그런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자각같은 것일지도. 과거를 부드러우면서도 냉정하게 보되, 기준이 닳아없어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 

장하준의 이 책은, 우리 경제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들과 함께, 그런 고민까지 나에게 던져줬다.

 


서평 거리는 아니라고 했지만 어쨌든 책은 책이고 리뷰는 리뷰다. '필자'로서의 
장하준에 대해 말해보자면, 외국에서 주로 공부하고 지금도 외국에 체류중인 학자치고는 깔끔하게 글을 쓰는 편이라고 해야 하려나. 이 신문 저 신문에 냈던 글들의 내용이 엇비슷해서 지루했던 감도 있지만 그래도 논지가 명확해서 좋았다. 


1997년말, 혹은 98년 초였던가. 외국 신문에 실린 장하준의 칼럼을 번역해서 국내신문에 싣는 일을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으로 그의 글을 접했다. 영문학 전공자도 아닌 주제에 영어 문장의 질까지 들먹일 수는 없겠지만 역시 인상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그가 국내에 전혀 알려져있지 않아서 사진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도 있다.

 

어쨌든 그 뒤로 그는 꽤 알려진 인물이 됐고, 특기할만한 가족들을 둔 덕분에 언론의 주목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만으로는 그의 '학자적 수준'까지 가늠해보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좀 다른 종류의 책이 나온다면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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