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도와주는 그림책들이 여러권 나왔습니다. 하나같이 풍성한 색감에 재미난 발상으로 어린이들의 눈길을 확 잡아끌 것 같은 책들입니다. 국내 동화작가들의 것도 있고, 프랑스와 아르헨티나, 미국, 일본 유명작가의 작품들도 있습니다. 여름날을 소재로 한 동화들을 골라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단연 눈에 띄는 책은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림작가 아이린 하스의 <한여름밤 이야기>(비룡소). 그림이 그야말로 '환상'입니다. 위의 그림이 이 책의 한 장면이예요.
'엄지공주'의 모티프를 훨씬 몽환적으로 만들어서, 부드럽고 따뜻한 색채로 그렸습니다. 아마 제가 어린 시절에 이 책을 봤으면, 완전히 뿅갔을 거예요.
또다른 미국 작가 마크 티그의 <길기리 아주머니께>(달리)도 재미있습니다. 흑백톤과 파스텔톤이 번갈아 나오는데 그림도 재미있고 발상도 재미있습니다.
'강아지 아이크의 감옥 탈출작전'이라는, 다소 헐리우드적인 소재를 편지체와 신문기사체의 독특한 문장으로 엮었습니다. 그림과 글을 어떻게 슥삭슥삭 배치했는지 눈여겨보세요. 구성 능력이 아주 돋보입니다. 번역자와 출판사가 신경을 많이 썼는지, 사람이름과 지명도 우리식으로 재미나게 잘 고쳤어요.
오드리 우드와 돈 우드 부부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그런데 임금님이 꿈쩍도 안 해요>(보림)도 눈에 띕니다. 미국에서 여러 출판단체들이 어린이책에 주는 상을 받았다는데, 영화처럼 세밀한 고전적인 인물데생이 두드러집니다. 너무 서양 팬터지영화같은 그림이기는 한데요, 엘리너 파아전 식의 줄거리(이게 얼마나 큰 찬사인지 아는 분은 아실 거예요)가 제법 괜찮았습니다.
아이들도, 엄마들도 모두 좋아하는 이와사키 치히로의 책은 자세한 설명이 필요없겠죠. 반전·인권운동가로도 유명한 이와사키는 도쿄 시내에 자기 이름을 딴 미술관까지 있을 정도로 일본에서 사랑받는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이미 '창가의 토토'로 어른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이와사키의 서정적인 그림과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출판사에서 6권짜리 '치히로 아트북'으로 펴내고 있습니다. <비오는 날 집보기>, <치치가 온 바다> 같은 작품에서는 아이들의 마음을 무조건 밝게만 그리지 않습니다. 순간순간 스쳐가는 불안감과 외로움을 수채화처럼 어찌나 맑게 그려내는지. 특히 저는 <비오는 날 집보기>가 아주 재미있었어요.
아트북과 함께 이 출판사에서는 이와사키의 시화집 '전쟁속의 아이들'을 내년 봄 펴낼 예정이라고 하는데 기대됩니다. 이와사키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긴 글로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요.
클라우디아 벨린스키의 <좋아좋아>와 <아이좋아>(국민서관)는 2-3세 유아들에게 보여주면 좋을 그림책입니다.
작가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어린이잡지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데, 아주 단순한 문장으로 가족·공동체 속에서의 즐거움을 심어주는 탁월한 감각을 발휘합니다. 크레파스 터치의 단순한 그림이지만 색감이 풍부합니다. 이렌드 드켈퍼와 프랑스와 뤼이에가 공동창작한 <강아지형제 이야기>(배동바지)는 만화풍 그림에 유머가 빛납니다. 에리히 케스트너의 고전 '쌍둥이 로테'의 강아지 버전. 단편 몇편이 같이 묶여있는데, 눈알 데굴데굴 강아지들이 나오는 첫 번째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어요.
리오넬 르 네우아닉의 <사랑에 빠진 마녀 루시>와 <엄마가 된 마녀 루시>(행복한아이들)는 독특한 어린이용 성교육 도서입니다. 그런데 구석구석에 (제가 생각하기엔) 좀 잔인한 장면들이 끼어있어서 어른이 설명해주면서 같이 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국내 작품 중에서는 창작과비평사가 의욕적으로 내놓은 '우리시 그림책' 첫 번째 작품인 권윤덕의 <시리동동 거미동동>도 볼만합니다.
아이들이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제주도 '꼬리따기노래'를 줄거리삼아 제주 풍광을 살린 그림을 그렸습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하는 노래 다들 아시죠. 그런 걸 '꼬리따기노래'라고 하나봐요. 그림이 아주 맘에 든 것은 아니었지만 돌무더기 느낌 좋았고, 같이 노래부르면서 보면 좋을 듯합니다.
길벗어린이에서 나온 권혁도의 <세밀화로 보는 곤충의 생활>은 동화책은 아니지만 책장을 넘기는 순간 곧바로 진가가 드러납니다. 수채화 필치로 곤충들의 한 살이를 섬세하게 묘사했는데 어른이 봐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물땡땡이 버들잎벌레 고려나무쑤시기 꼬마줄물방개 같은 이름들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단순 스케치가 아니라 짜임새 있게 자연 속에 곤충을 배치해 정말 공부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처음엔 흔한 곤충도감류(실제 이 작가가 세밀화로 곤충도감을 그린 적 있습니다)인 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꽤 시간이 걸리고 재밌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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