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게으름...의 늪에 빠져 살고 있는 날들. 베이비박스에 '게으른 엄마의 변명'을 적었더니 또치 왈, 다른 엄마들도 딸기님처럼만 게으르면 좋겠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었다. 러셀이 핵폭탄에 반대한 것을 알고 있고, 혼자 조용히 반대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서명운동에 가두시위까지 앞장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외에는-- 없다. 영국 사람이라는 것 정도일까나.
맑스의 사위이기도 한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라는 책을 몇년 전에 읽었다. 가만있자, 그게 언제였더라. 아마도 1996년 정도가 아니었던가 싶은데. 라파르그의 책과 러셀의 책을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됐는데, 내용은 사실 비슷하다. 노예가 아닌 그리스 '시민'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사색을 예로 든 것도 그렇고, 여가를 강조한다는 것도 그렇고, 내용에선 별 차이가 없다.
문체를 놓고 보면 라파르그의 책은 위트와 독설이 넘치는 반면 러셀의 책은 내용에 걸맞지 않게 진지하달까. 전자는 '여유와 사색'에 대한 밀도 있는 한편의 에세이인 반면 후자는 러셀의 다종다양한 문제의식이 담긴 글들을 묶어놓은 것이라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러셀의 책은, 솔직히 그닥 재밌지는 않았다. 이 사람, 아니 이 분, 대단한 분이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책에 전개된 주제들에서 논리적 정합성이라기보다는 노인네 잔소리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기나긴 인생에 걸쳐(98년을 살았으니 길긴 길었다) 끊임없이 사색하고 고민하고 투쟁해왔던 내용들을 짧은 글로 정리해놓았으니 외려 '책이 부실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게다. '내가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반대하는 이유' '사회주의를 위한 변명'과 같은 글들에선 시대가 안겨준 고민으로 인해 결국 상아탑 밖으로 뛰쳐나올 수 밖에 없었던 늙은 철학자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나는 독서 경향이 굉장히 편중되어 있던 편이고, 작년까지만 해도 에세이라든가 산문집 같은 것은 거의 보지 않았었다. 일부러 기피했다 해도 될 정도로, 그런것들은 '잡문'으로만 치부했었다. 예외가 있다면 투르니에 정도(정작 투르니에의 그 유명한 '방드르디'를 비롯한 소설들은 한편도 읽은 적 없지만).
일본에 와서 '중구난방 독서' 내지는 '게으른 독서'를 하다보니 일본 철학자의 글(후지따 쇼오조오의 '전체주의의 시대경험')이라든가, 러셀의 책 같은 에세이집을 손에 쥐게 된다. 와나캣양이 사다준 투르니에의 '외면일기'도 펼쳐져 있는 상태. 에세이를 읽으면 쓴 사람의 마음을 읽게되는 것 같아서 의외로 좋은 점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했다.
그나저나 게으름은 게으름. 독서카드를 정리해야하는데 그것조차 쉽지 않다. 게으름에도 가속도가 붙는 것 같다. 여름의 독서내용이 부실하기 짝이 없던 탓도 있고. 이번 여름 무라카미 하루키의 '렉싱턴의 유령'과 레이먼드 카버의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이렇게 두 권의 단편소설집을 읽었다.
모두 와나양의 선물입니다만... 글쎄, 내 취향은 아니었달까. 인간의 단면만 잘라 보여주는 단편소설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단면을 잘라 보여주려면 아주 예리하게 잘 잘라서 혈관과 신경의 끊어진 조각조각을 냉혹하게 보여주든가(박완서 할머니의 내리리는 듯한 단편들처럼!), 그게 아니라면 복잡다단한 여러가지 면들을 고루고루 보여줘서 내 스스로 상상하고 짜맞출 수 있는 쪽을 좋아한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은 재미없는 걸 기를쓰고 읽었는데 별다른 감흥은 없다. 한가지 올여름의 독서에서 수확이라면 드디어 <반지제왕>을 다 읽은 것. 기나긴 독후감 따위는 생략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세 번 눈물이 났다. 한번은, 전에 라이브러리에 올렸던 부분, 골룸이 프로도와 샘의 잠자는 모습을 보고 갈등하는 장면. 두번째는 시오덴 왕의 죽음. 세번째는 끝부분 프로도와 샘의 이별. 아직 '부록'은 다 못 읽었지만 장도를 끝내고 돌아온듯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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