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모토 미오 | 미야지마 히로시 (지은이) | 김현영 | 문순실 (옮긴이) | 역사비평사 | 2003-09-25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더니... 가을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면서 나의 독서는 끝장이라도 난듯이, 게으름만 늘었다. 책읽기도 리뷰 쓰기도 모두 귀찮아서 팽개치고 있었건만, 도저히 이 책은 칭찬을 해주지 않고서는 넘어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나의 무지함을 꾸짖어야했고, 일본 학자들의 엄청난 학구열에 혀를 내둘렀다.
'일국사를 넘어선 동아시아 읽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나야 역사에 문외한이라서 이런 분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만일 '비교역사학'이란 분야가 있다면, 이 책은 필히 거기에 속한다. 명-청 시대와 조선시대를 교차 편집해서 보여주는데 서술 방식이 재미있고 내용도 알차다.
어느 정도 알차냐면-- 우리나라 국사교과서를 없애고 이 책으로 고교생들을 가르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 대체 나는 우리 역사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던 것인지! 내 역사지식은 그러고 보면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서 정지된 것이나 다름없다. '고등학생 수준의 지식'이 뭐냐면, 결국 이런거다. '태정태세 문단세'를 외울 수 있고, 훈민정음 창제 연도를 알고 있고... 뭐 이런 식의 단순암기 수준 말이다.
책은 내가 '연도 외우기' 식으로만 알고 있던 것들 뒤에 숨겨진 배경, 역사적 의의를 설명해준다. 때로는 조선시대 어느 양반의 족보를 사례로 들어 양반사회의 진면목을 들춰내고, 때로는 중국-조선-일본-동남아를 오가는 왜구의 움직임을 종횡으로 연결한다.
구텐베르크에 앞선다는 고려의 금속활자는 어떤 의미/한계를 갖고 있는지, 이른바 '당쟁에 빠진 조선인'에 대해 조선인 스스로는 어떻게 보았는지-- 극히 협소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바람에 정작 자긍심은 커녕 최소한의 이해조차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역사교육을 6년간 받느니, 차라리 이 책 한권을 읽는 편이 낫겠다.
농담 아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서양까지 포함해서)의 연구는 어떤 수준으로 진행돼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라서, 책 읽으면서 참 많이 쪽팔렸다.
쪽팔리기만 했나? 재미도 있었지... 책 참 재미있다. 딱히 어떤 '사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역사를 조명하는 일본 중앙공론사 시리즈의 일부분인 만큼 한정된 시대에 대한 개론적인 서술을 하고 있는 것이어서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곁들여진 삽화와 그림에서도 성의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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