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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검은 피부, 하얀 가면

딸기21 2004. 12. 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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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피부, 하얀 가면 Peau noire, masques blancs
프란츠 파농 (지은이) | 이석호 (옮긴이) | 인간사랑 | 1998-03-05


진정 필요한 것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꿈이라는 것을 원래의 '고유한 시간대'로 원위치시켜놓는 일이다. 고유한 시간대란 8만여명의 원주민이 인구 50명당 한 명 꼴로 살육당하던 그 시기를 의미한다. 그 꿈의 고유한 공간성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유한 공간성이란 400만 주민들이 살던 섬으로서의 공간성을 의미한다 (130쪽)

백인 세계 내의 유색인들은 자신의 신체 발달 과정에서도 장애를 겪는다. 몸의 의식이 유일한 부정의 기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제3자의 의식이기도 하다. (141쪽)

나는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그 세계는 나를 끊임없이 밀어냈다. 내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합리성의 측면에서 이것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고로 나는 비합리성에 내 몸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나보다 더 불합리한 백인 때문이었다. (156쪽)

나는 내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한 주체가 아니다. 의미는 이미 그 곳에 있었다. 내 이전에 이미 그곳에 선험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며 말이다. 내가 세상을 태워버릴 횃불을 만들 구상을 하는건 내 열악한 검은 불행, 내 사악한 검은 이빨, 내 한심한 검은 궁기 때문이 아니다. 횃불이 이미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반전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169쪽)

흑인의 과거가 없이는, 흑인의 미래가 없이는 내가 내 자신의 흑인성을 살아내는 것, 그건 불가능하다. 완전한 백인도 아닌, 그렇다고 철저한 흑인도 아닌 나는 저주받은 인간이다. 장 폴 사르트르는 망각하고 있었다. 흑인의 신체는 백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백인과 나를 연결할 수 있는 건 오직 초월뿐이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항상성을 나는 소실했다. 내 자신을 내가 절대적 시각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네그리튀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눈물을 머금고 그 기자재를 조립했다. 산산조각난 그것을 다시 부축여 세웠다. 칡뿌리같은 내 양손의 직감에 따라 그것을 다시 구성했다. (173쪽)

태평양 전쟁에서 부상당한 한 절름발이 고참병사가 내 동료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내가 내 의족에 익숙해진 것처럼 그대들도 그대들의 피부색에 그저 죽었다 생각하고 익숙해져 보라구. 우린 어차피 모두 피해자들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심전력을 다해 이 절단된 불구성을 인정하지 않기로 한다. 하나의 영혼이란 세계 만큼이나 무한한 것이므로. 또한 흐르는 강물처럼 깊은 것이므로. 그러므로 나의 가슴은 무한정 팽창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주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게 절름발이의 겸양을 수용하라고 닥달한다. 어제, 세상의 아침을 향해 깨쳐 일어나면서 나는 하늘이 처러하고 완전하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나 역시 똑바로 서고 싶었다. 그러나 내장이 다 드러난 침묵이 내게로 무너져 왔다.

날개가 마비된 채. 책임감도 없이 한 발로는 無, 다른 한 발로는 무한을 떡 버티고 선 채 나는 긴 울음을 울었다.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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