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부키
장하준 교수의 '개혁의 덫'을 읽고, 좀더 '정식으로 펴낸' 저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펼쳤다. 이미 '개혁의 덫'에서 맛뵈기로 접했던 논지들이라서 쇼킹함은 별로 없었지만, 선진국의 위선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은 역시나 통쾌했다.
저자가 스스로 밝힌 이 책의 경제사 연구방법은 '역사적 접근법'이다. 주류 경제사학자들이 당대의 이데올로기(지금 같으면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느라 방기해버렸던, 역사를 통해서 경제 제도/정책의 변화과정을 분석한다는 것.
목표는 분명하다. 앞서 말한대로 신자유주의를 목청높여 외치는 선진국들의 위선을 까발기는 것이다.
"봐라, 과거에 너희들도 전부 보호무역주의 했었고, 정부가 경제에 개입했었다구. 이제와서 안면 몰수하고 개도국들을 압박하는건, 뒷사람 못올라오게 사다리를 걷어차는 비겁한 짓이라고!"
이것이 이 책의 논지다.
저자가 지적하는 선진국의 '위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지금의 선진국들도 과거 선진국이 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나라는 산업혁명의 종주국 영국과, 지금 자유무역의 선봉장이 되고 있는 미국이다. 단순히 관세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보호장벽 말고도, 선진국 정부들은 다종다양한 방법으로 경제에 개입해 성장을 시켰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국들과 일본의 사례를 분석하면서 저자는 이같은 주장의 근거를 댄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국가의 개입이라는 측면에서, 과거의 선진국들이 오늘날의 개도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곧, "지금의 개도국들이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과거 선진국들이 시행했던 것 같은 개입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다시 바꿔 말하면 "지금 선진국들은 개도국들이 성장할 수 없도록, 즉 자신들을 따라잡을 수 없게끔, 과거 자기들이 효과를 봤던 개입정책을 못 쓰게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이것이 선진국들의 첫째 위선이다.
"우리는 여기서 명백한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적어도 당신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라면 그럴 것이다. 모든 국가들, 특히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이 강요한) '바람직한' 정책을 사용한 1980년 이후의 20여년보다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을 사용한 1960-80년 사이에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다. (중략) 게다가 흥미롭게도 현재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정책들은 선진국들 자신이 개발도상국이던 시기에 사용한 정책들과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선진국들의 두번째 위선은 경제정책 자체보다는, 개도국들의 정치/사회/문화 전체에 대한 선진국들의 비난과 관계된 것이다.
선진국들은 개도국들, 예를 들면 우리나라처럼 한때 고도성장을 하다가 금융위기와 같은 타격을 받은 나라들을 아주 몹쓸 나라로 만들곤 한다. 그러면서 국제기구들을 통해 '바람직한 통치제도'에 대해 내정간섭 수준의 충고도 서슴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완성도, 사유재산권 보장, 지적재산권 보호, 투명한 관료제도, 자유경쟁 보장, 사회보장의 수준, 경제의 도덕성 등등 개도국들을 비난하는 메뉴는 많고 많다.
장하준 교수는 딱 100년전 선진국들의 모습을 들이대면서 이를 반박한다. '비민주적'인 개도국이라 해도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100년전 선진국들보다 민주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고, 사유재산권도 보호되고 있다. 지적재산권 개념이 확립된 것은 선진국에서도 최근의 일이다. 투명한 관료제도와 자유경쟁 등등도 마찬가지다. 개도국의 도덕성을 논한다고? 선진국에서 아동노동이 사라진 것도 근자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들은 어제의 자신들을 잊은채 지금 개도국 비판에 열중해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과거의 선진국보다 오늘의 개도국이 낫다'고 말하면 시대의 변화를 무시하는 것이 된다. 이에 대해 저자는 "현재 '바람직한 통치제도' 패키지의 일부로 개도국들에 권고되고 있는 대부분의 제도는 선진국들의 경제발전의 원인이기보다는 결과물에 해당된다"고 지적한다. 결과와 원인을 의도적으로 혼동해버리는 선진국들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개도국들의 진정한 발전을 방해하는 장애물임에 불과하다는 것. 더우기 제도는 개별 국가의 사정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현 개도국들과 유사한 발전단계에 있을 때 갖추지 않고 있던 제도를 강요함으로써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으며, 불필요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제도를 강요함으로써 개도국들을 궁지로 몰고 있다". 저자는, 국제기구가 요구하는 것 같은 제도 중심의 해결방안은 개별 국가의 경제실정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되기 힘들기 때문에 제도적 해결책보다 집중적이고 신속한 정책개발에 나서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을 주문한다.
하지만 '힘의 논리'가 우선되는 냉혹한 국제관계에서, 개도국들이 선진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막을 현실적인 힘이 있을까? 저자 역시 이같은 냉정한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실린 주장들이 망상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저자 자신이 밝히고 있듯 '먼저 선진국들의 경제발전에 관한 사실이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국제기구와 협상을 진행하는 개도국 정부들의 판단력과 의지, 그리고 자신들의 견해를 국제개발정책의 주도세력들에게 각인시키는 능력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IMF 구제금융시기 한국 정부가 신자유주의 제도/정책들을 마구잡이로 떠안았던 것은 황당하고 한심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신문에 실린 칼럼들을 읽을 때에는 저자의 글솜씨에 후한 솜씨를 줬었는데, 이 책은 문학성-읽는 재미 면에서는 영 떨어진다. 주제가 주제이거니와 통계가 많이 동원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내용에 반복이 많이 몇몇 부분은 건성건성 읽었다. 하지만 논지가 명확하고 케이스스터디가 잘 되어있어 읽고난 뒤의 느낌은 오히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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