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본 동아시아 - 서남동양학술총서 20
백영서, 전형준, 정문길, 최원식 엮음 / 문학과지성사
상상의 공동체?
내셔널리티의 문제는, 참 뭐라 단언하기 힘들다. 누구는 상상의 공동체라고 하고, 이건 오만가지 책들에서 인용되는 걸로 봐서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상상 나부랭이'로 치부해버리기엔 덩치가 너무 크다.
하지만 '민족이란 무엇이다'(그것을 '국민'으로 번역하든 '민족'으로 번역하든) 딱 잘라 말하기 힘들다 해도, 분명한 것은 있다. 한 사람의 아이덴티티는 국민, 민족, 부족, 종족, 인종, 종파 등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규정된다. 이름을 지은 사람이 타인이든 자신이든 간에, 이런 이름들이 따라붙는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긴 힘들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어떤 이름이 붙건 간에,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삶(사회-문화)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셔널리즘 내지는 네이션의 테두리에 고정된 사고를 버리자고 백날 말해야 무의미하다. 이런 원론은 대가리가 있는 족속이라면 누구나 다 말할 수 있다(그나마도 못 알아주는 꼴통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생각을 진정으로 네이션의 테두리를 넘어 확장할 수 있으려면, 네이션의 테두리 안에 가둬진 자신을 해방시키고 테두리 밖의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구체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이 테두리에 갇혀있음으로 해서 나의 인식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지, 또 나의, 그리고 우리가 테두리를 고수함으로 인해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피해를 입는지를 알아야 한다.
'주변'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는 좀 학술적인 책이다. 어떤 이에게는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셔널리즘의 테두리를 좀 벗어나고픈 사람에게는 반드시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
내 얘기를 하자면, 내셔널리티의 테두리에서 내 인식을 해방시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무슨 얘기냐, 울나라의 꼴통 우익보수파들이 구역질난다는 의미다. 모든 것을 국수적으로 취급하는 재수없는 종족들이 보기 싫다는 그런 의미에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이런 내셔널리즘의 테두리는 내 머릿속에서도 당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아시아? 좋다, 아시아. 누가 뭐래도 나는 아시안이다. 국경을 넘어(울나라는 그나마 제대로 된 국경조차 없지만) 글로컬하게 인식을 확장시키자--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네이션의 테두리 안에서 동아시아를 사고할 경우 '중국-한국-일본-동남아시아 기타등등 여러나라' 이렇게 밖에는 머리가 안 굴러간다는 점이다. 아시아는 나라 이름을 주욱 열거해놓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고, 또한 개별 국가들의 총합과도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아시아를 '아시아 국가들의 총합'으로 볼 경우, 네이션의 틀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집단, 많은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그 특수성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을 뿐더러, 그들을 아예 배제해버리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엄연히 실존하고 있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없애버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강자의 논리대로 테두리를 긋는 것이다. 동북아시아? 동아시아? 동북아시아라 하면 보통 한-중-일을 지칭하는데, 이 경우 명백히 중화문화권이었고 동남아 국가들과 역사적 배경이 다른 베트남을 사상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를 '나라 이름 부르기'로 만들어 버리면, 재일교포와 조선족 같은 한반도 출신 이민자들은 물론이고 우리가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가 '지역 강자'(때로는 중국 때로는 일본)의 그늘에 가리워져 버린다.
책은 그렇게 가리워져버렸던 집단을 재조명하고 있다. 타이완 섬에 살던 원주민들은 청 말기 중국의 이주민들 때문에 한차례 식민주의를 겪었고, 일본과 중화민국에 의해 잇단 지배를 받았다. 우리가 '한때 자유중국'이라 불렀던 그 섬의 이야기를 우린 제대로 알지 못한다. 또한 우리가 한때 그 섬을 '자유중국'이라 불렀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반공주의가 맹위를 떨쳤기 때문에 자의반타의반 '중화민국 국민'으로 정체성을 고정시킬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의 화교 이야기도 알지 못한다. 그들이 2000년 첸수이볜의 승리와 타이완의 '타이완화'를 보면서 갖는 복합적인 상실감에 대해서는 물론 알지 못한다.
뿐만인가. 일본의 근대성을 논할 때,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성을 논할 때 일본과 아시아국가들의 관계만 보게 될 경우 일본 내부의 피식민지들, 아이누와 오키나와는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다. 류큐국에서 일본의 식민지로, 미국 점령지에서 다시 그들 스스로 '일본인'임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오키나와의 슬픈 역사 따위는. 티벳은 또 어떤가. 중국 내 숱한 '회족', 변방의 회교도들은 어떤가. '나라이름 부르기'에서 떨궈져버리는 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반도의 '실험'은 가능할까
책은 중국인과 일본인, 한국인, 한국내 화교, 재일교포 등 다양한 사람들의 짦은 논문을 묶어놓은 형태로 되어 있다. 경우에 따라 너무 학술적이거나 시의성이 없는 것도 있지만 내 경우는 인식의 틀을 조금이나마 넓히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네이션의 틀을 머리속에서 깨뜨리기 위해서는 우선 틀 밖에 '버려졌던' 사람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과 함께, 책에서 재밌었던 것은 '한반도의 실험'으로 제안된 부분이다.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서는 동아시아의 블럭화가 중국-일본 사이의 선점 경쟁으로 엇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우선 남북 화해-경제 블럭화를 통해 중-일이 못 벗어나고 있는 내셔널리즘의 틀을 부수면서 '새로운 동아시아 주의'를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중요한 것은, 남북 화해 역시나, 국가주의를 벗어나 우리가 스스로를 '주변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에나 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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