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딸기21 2004. 10. 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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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조너선 D. 스펜스 (지은이) | 주원준 (옮긴이) | 이산 | 1999-08-03

 


조너선 스펜스의 책 몇권을 읽었고, 아직 읽지 않은 몇권이 책꽂이에 꽂혀 있다. 스펜스의 책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역사’의 풍요로움을 생각하게 되고, 좀더 비약해서 말하자면 ‘인문학’이라는 것에 대해서까지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무엇이다 딱 잘라 말하긴 힘들지만 ‘과학’이라는 이름이 따라붙는 분야가 존재하듯이, 분명 인문학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스펜스가 보여주는 역사는 무엇보다 풍요롭다. 그가 유려한 문장을 통해 들려주는 것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내가 스펜스의 책을 뽑아들 때에는 ‘옛날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에서 손을 뻗치는 것이고, 역사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해서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본다면 스펜스는 가장 훌륭한 ‘역사이야기꾼’이다. 

그동안 읽은 스펜스의 저작들은 모두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칸의 제국’에서는 맑스 엥겔스 에즈라파운드에서 이탈로 칼비뇨의 소설까지 이르는 서구의 다양한 저작들을 통해 서양인의 눈에 비친 중국을 그렸는데, 이는 중국의 역사와 함께 ‘외부 세계에 대한 서구의 인식의 역사’까지 모두 아우르는 것이었다. 이번에 읽은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스펜스는 ‘여러가지 역사’를 아우르는 작업에 도전한다.

이탈리아인(서양인)이자 예수회 선교사(기독교도)였던 리치라는 인물의 눈을 통해 스펜스는 우선 16세기 중국의 역사를 그린다. 동시에 스펜스는 리치 시절의 유럽을 보여주고, 또한 예수회를 중심으로 한 서구의 ‘세계 진출’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지역과 테마를 넘나드는 여러가지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저자는 ‘기억술’이라는 다소 생소하고 신비적으로 보이는 화제를 택했다. 리치의 ‘기억의 궁전’에는 무장한 전사와 이슬람교도 여인, 추수한 곡식을 들고 있는 농부와 아이를 안은 여인이 있다. 

저자는 기억의 궁전 네 귀퉁이에 자리한 네 부류의 인물들과, 리치가 남긴 네 장의 그림들을 가지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16세기의 역사를 풍요롭게 구현해낸다. 

스펜스가 선택한 테마들은 왕조사 중심으로 교과서에서 배웠던 중국사 혹은 국가의 역사와도 다르다. 분열과 폭력에 얼룩진 이탈리아와 문약에 빠진 중국의 대비, ‘이단’에 맞선 싸움과 전교라는 이름으로 이뤄진 서방의 동방 진출, 예수회와 포르투갈 상선단의 동방 무역, 중국의 동성애에서 성모 신앙의 수용까지, 책에서 다뤄지는 테마들은 모두 흥미롭다. 역사를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루면서 풍요롭게 재현해내는 것은 진정 스펜서만이 갖고 있는 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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