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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브라질 방문

딸기21 2007. 5. 11.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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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가 9일 브라질 상파울루에 도착, 4박5일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세계 최대 가톨릭 국가인 브라질 방문을 통해 교황은 생명 존중과 낙태 반대, 가족의 소중함 같은 `가톨릭적 가치'들을 다시한번 설파하고 중남미 가톨릭 부흥을 도모할 계획이다. 교황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과도 만날 예정이다. 가톨릭 보수주의의 상징인 교황과 노동운동가출신 대통령은 가톨릭 가치관과 좌파식 사회복지 해법에 대해 토론을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의 이번 방문이 `가톨릭 대륙' 남미에서 종교의 부흥을 다시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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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16세가 브라질 상파울루 아파레치다 성모 성당 앞에 모인 신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Reuters


빗속 군중들 교황 마중, 한쪽에선 총격전

베네딕토16세가 교황으로 중남미를 방문하는 것은 2005년4월 즉위 뒤 처음이다. 브라질을 찾는 것은 1990년 추기경 시절 방문 이래 17년만이다. 브라질 언론들은 교황 방문에 앞서 정부의 준비와 들뜬 시민들 분위기를 연일 보도했다. 룰라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대표들은 상파울루 과룰류스 국제공항에 나와 교황을 영접했으며 빗속에서도 신자 수천명이 공항 앞에 모여 교황을 반겼다. 시민들은 교황의 애칭인 `벤토(Bento)'를 외치며 깃발을 흔들고 환호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교황은 공항 영접이 끝난 뒤 시민들의 환영 속에 숙소인 상벤투 수도원으로 향했다.
교황 방문을 앞두고 상파울루 주(州) 일대 경찰서가 무장괴한들의 연쇄 공격을 받는 일이 벌어지면서 브라질 정부는 특히 치안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지난해 교도소 폭동을 일으켰던 범죄조직 `제1도시군사령부'(PCC) 소행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치안당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교황의 동선을 따라 연방경찰과 군병력, 주 경찰을 3겹으로 배치하고 경호를 강화했다.

최대 이슈는 `낙태'

신학 교수 출신인 교황은 가톨릭 고위성직자들 사이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인물로 유명했다. 좌파 룰라 대통령은 초등학교 졸업 학력의 노동자 출신이다.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은 10일 오전 상파울루 주지사 관저에서 회담을 갖는다. 교황은 가톨릭 가치를 다시한번 강조하고 룰라대통령은 브라질의 사회복지와 세계 빈곤문제 등을 언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대 화두는 낙태 문제가 될 전망이다. 교황의 이번 방문은 다른 무엇보다도 낙태 합법화를 막는데에 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공항 환영식에서부터 포르투갈어로 인사하면서 낙태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가톨릭 신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중남미에서 최근에는 바티칸 입장과 달리 낙태 합법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지난달 멕시코 멕시코시티 의회가 낙태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중남미 세속 정치인들과 교계의 갈등이 표면화됐다. 멕시코 가톨릭계가 법안에 찬성한 의원들의 교적을 박탈하는 `파문' 결정을 내린 것. 브라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이 이에 대해 묻자 교황은 "파문에 찬성한다"고 명시했다. 페데리코 롬바르디 교황 대변인도 "교황청 차원의 별도 파문절차는 없겠지만 멕시코 주교단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낙태에 찬성하면 앞으로도 주교회의에서 파문할 수 있도록 승인한다는 뜻이다. 가톨릭 교세가 강한 중남미에서 `파문'은 정치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수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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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레치다 성모 성당 앞에 모인 가톨릭 신자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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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에게 환호를 보내는 상파울루의 가톨릭 신자들. /Reuters


중남미 `가톨릭 부흥' 가능할까

그러나 가톨릭 가치관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는 교황청 입장과 달리, 세계 11억 가톨릭신자의 절반이 살고 있는 중남미에서 가톨릭의 위상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낙태 금지와 파문 같은 보수적인 조치들을 교회가 고집하는 사이 젊은층의 종교 무관심과 신자들의 이탈이 계속되고 있는 것. 브라질의 경우 1991년 81%에 이르렀던 가톨릭 인구 비율은 2000년대 들어 64%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중남미 다른 나라들에서도 가톨릭 대신 기독교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개신교파 오순절교회 등이 급성장하고 있다.
특히 오순절교회는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는' 중남미 특유의 토착화된 순응주의와 달리 적극적으로 자본주의 윤리를 설파하면서 세를 불려가고 있다. 이에 대한 교황청의 해법은 전통적인 가톨릭 가치들을 재차 강조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 보수주의만으로는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 가톨릭의 딜레마인 셈이다. 게다가 중남미 가톨릭계 안에서조차 현 교황의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오는 등 불협화음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교황방문 공식 목적은 13일 개막하는 중남미-카리브 주교회의 참석. 전임 요한바오로2세가 즉위 석달 뒤 중남미를 찾은 것과 달리 베네딕토16세는 즉위한지 2년이 지나서야 중남미 방문. 2년전 교황 선임에서 독일 출신 현교황에 밀렸던 중남미 가톨릭 고위층 사이에선 이제는 라틴아메리카 출신 교황이 나올 때가 됐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힘든 여행 될것"

중남미 지역 언론은 가톨릭의 위기에 주목하며 교황의 방문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아르헨티나 일간 라 나시온은 "교황의 브라질 방문은 가톨릭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여행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은 교황이 콜롬비아도 방문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SM)는 "중남미 전체가 교황 방문을 환영하고 있지만 모두가 바티칸의 원칙을 따르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힘든 여행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30여년간 브라질인들이 가톨릭 교리에 대해 품고 있던 의문과 변화 요구에 대해 교황은 분명한 대답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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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로 대주교 시복 가능성

1980년대 엘살바도르 군부독재정권에 항거하다 암살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가톨릭 성인의 전단계인 `복자(福者)'의 지위를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브라질 방문에 나선 교황 베네딕토16세가 9일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로메로 대주교의 시복이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교황은 정치문제에 대한 교회의 개입에 반대해온 기존 입장과 달리 이날 로메로 주교의 용기를 칭송하면서 "가톨릭 신앙을 증언한 위대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다만 교황은 중남미 일각에서 로메로 대주교의 시복과 관련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에는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AP는 전했다. 복자의 지위를 얻게 되면 이후 기적을 추가로 인정받을 경우 성인 지위에도 오를 수 있다.

로메로 대주교는 엘살바도르 내전이 한창이던 1983년 시민들을 학살한 군사독재정권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시위대를 보호해주다가 정권의 조종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암살자에게 피살됐다. 로메로 대주교의 이야기는 1989년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라틴아메리카 반독재 투쟁에서 가톨릭의 역할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엘살바도르 가톨릭교회는 1996년 교황청에 로메로 대주교의 시복을 요청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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