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4011

[구정은의 ‘현실지구‘] 시리아 난민들은 ‘활기찬 나비‘가 될 수 있을까

MADE51이라는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에 들어가면 예쁜 공예품들이 올라와 있다. 곧 다가올 연말을 앞두고 내놓은 ‘홀리데이 컬렉션’ 가운데 ‘시리아 트리오’라는 상품을 골랐다. 5만4000원짜리 장식물 세트에는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다. ‘활기찬 나비’라는 이름의 자수 제품, 실을 엮어 만든 ‘용감한 따오기’와 ‘기발한 고양이’. ‘하모니 트리오’는 금속으로 된 별에 매듭을 단 ‘별똥별’이라는 작품과 직물 공예품인 ‘노래하는 예쁜 새’, ‘빛나는 고리들’이라는 고리 모양의 장신구로 구성돼 있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 장식용, 혹은 선물용으로 딱 좋을 것 같은 이 물건들 말고도 쇼핑몰에선 온갖 종류의 수공예품을 판다. MADE51이 여느 쇼핑몰과 다른 점이 있다면 유엔 웹사이트와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

[구정은의 ‘수상한 GPS‘] 푸에르토리코가 “쓰레기 섬“이라고?

미국 대선을 앞두고 푸에르토리코가 이슈가 됐다.  발단은 킬 토니(Kill Tony)'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코미디언 토니 힌치클리프(Tony Hinchcliffe)가 도널드 트럼프 지지 집회에서푸에르토리코를 "떠다니는 쓰레기 섬"이라고 조롱한 일이었다. 라틴계, 유대인, 흑인 등등을 가리키면서 인종차별적인 농담을 했는데 그 중 한 발언이 이거였다. “저기 떠 다니는 쓰레기 섬이 하나 있어. 푸에르토리코라고 불린다지.” 그러면서 아이를 많이 낳는 히스패닉들 운운했나 보다. 아이를 많이 낳아서 미국으로 들어오게 만든다는 식으로. 푸에르토리코는 미국령인데 거기서 미국 가는 사람은 외국계 이민자인 것인가? 그게 문제다. 푸에르토리코의 법적 지위가 복잡하다.  푸에르토리코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아마 '미스..

[구정은의 ‘수상한 GPS] 유리병 편지

프랑스의 디에프(Dieppe)라는 곳이 있다. 프랑스 북부, 영국과 마주보는 해협을 낀 노르망디 지역에 위치한, 3만명 정도 사는 작은 마을이다. 9월 말 거기서 편지 한 장이 발견됐다. 유리병 편지. 유리병 안에 종이를 말아서 넣은 것을 가리킨다. 디에프에 고대 갈리아 유적지가 있다. 거기서 고고학 발굴 작업을 하던 자원 봉사자들이 작은 유리병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 메시지가 있었던 것이다. 고대로부터 온 것은 아니지만, 200년 전인 1825년의 메시지였다. 당시 이곳 Cité de Limes 유적에서 P.J. 페레Féret라는 고고학자가 발굴 작업을 했다. 그러면서 “이 광대한 곳에서 나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라는 내용을 적어 병에 넣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왜 이런 걸 남겼을까. 일종의 기념 아..

[구정은의 ‘현실지구‘] 테겔 공항의 난민촌과 독일의 난민 정책

대형 천막 안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비좁다. 천막마다 여성과 아이들, 노인과 환자들 380명이 뒤섞여 산다. 잠은 14명씩 무리지어진 구획 안에서 잔다. 독신 남성은 담요나 문조차 없이 지내곤 한다. 사생활은 고사하고 개인 소지품을 둘 곳조차 마땅치 않다. 이층 침대 사이의 복도는 너무 좁아서 두 사람이 동시에 지나가기도 힘들다. 기침하는 사람, 우는 아이,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전화. 잠을 푹 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텐트 안에는 쥐와 해충들이 많아 수시로 감염이 일어나고 수두와 홍역이 창궐하고 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저개발국의 슬럼가나 난민촌 풍경이 아니다. 지난달 말 독일 슈피겔이 전한 베를린의 테겔 난민캠프 풍경이다. QR코드를 목에 건 ‘승객’들이 융페른하이데(Jungfernheide)..

[관훈저널] 전쟁의 시대, 기자의 역할

미리 말해 두자면, 전쟁 보도에 대한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서 청탁 전화를 해온 손제민 편집위원에게 먼저 이야기했다. 현재 한국 언론의 전쟁 보도들을 놓고 잘 한다 못 한다 품평하고 싶지는 않다고. 신문사를 그만둔 뒤 국제전문 저널리스트라는 타이틀로 활동하고 있으니 내 정체성은 여전히 ‘기자’다. 소속된 회사는 없지만 30년 가까이 신문사에서 일을 배웠고 일을 했다. 회사를 떠나고 난 뒤에 언론 보도들을 비판하면서 이게 나쁘네 저게 부족하네 하는 것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안다. 더 나은 보도를 지향한다면 신문사에서 일하는 동안에 나 스스로 더 잘 했어야 했다. 그러니 이 글에서 내가 하는 이야기들은 지금 쏟아져 나오는 전쟁에 관한 보도들에 대한 구체적인 비평이나 질타가 아..

[구정은의 ‘수상한 GPS‘] 병자가 돼가는 독일 경제, AfD와 ‘자라 바겐크네히트‘

9월 1일 독일 튀링겐주, 작센주 주의회 선거에서 극우 독일대안당(AfD)이 승리했다. 득표율 32.8%, 2013년 창당 이후 처음으로 지방선거에서 제1당에 올랐다. 기민당 23.6%로 2위, 급진좌파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BSW) 3위. 집권 연정의 사민-녹색-자민당은 모두 한 자릿수 득표율로 참패했다. 사민당 지지율이 6.1%였단다. 작센 주의회 선거에서도 AfD(아에프데)가 30.6%를 얻어 2위로 선전했다. 22일 치러진 브란덴부르크 주 선거에서는 사민당이 체면치레를 했지만 역시나 '극우의 약진'이 돋보였단다. 독일은 연방국가다. 외교 및 국방은 연방이 맡지만 나머지는 주와 연방의 공동 권한이다. 16개 주로 구성돼 있는데 베를린, 함부르크, 브레멘은 슈타트슈타텐 (도시 주)이고 나머지 13개..

[구정은의 ‘수상한 GPS‘] 이스라엘은 왜 레바논을?

레바논에서 9월 18일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헤즈볼라 이동식 통신장비를 해킹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테러공격으로 의심된다고 한다. 레바논, 우리에게 아직은 낯설면서도 뉴스에 늘 등장해 이름만큼은 귀에 익은 나라다. 어떤 역사가 있기에,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왜 그렇게 복잡해졌을까. 먼저 위치를 알아야 레바논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시리아, 남쪽으로는 이스라엘, 서쪽으로는 지중해와 접한 나라다. 인구는 530만 명. 면적은 10,452제곱킬로미터이니 꽤나 작은 편이다. 수도인 베이루트가 최대 도시다. 지중해 문명권의 일부였고, 역사가 아주 길다. 7000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했다. 멀리 동쪽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부터 지중해로 이어지는 비옥한 초승달의 서쪽 끝부분 정도로 보면 될..

[구정은의 ‘수상한 GPS‘] 교황님이 찾아간 동티모르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 동티모르.87세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달 들어 동남아 순방을 했다. 교황이 들른 곳 중 한 곳이 동티모르였다. 10일 거기서 야외 미사를 집전했는데, 동티모르 인구의 거의 절반이 참석했다고 한다. 인구 절반이 어떻게 미사에 나오냐고? 동티모르 전체 인구가 130만명 정도다. 수도 딜리의 해변 공원에서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였는데 바티칸에 따르면 인구 절반 가까운 60만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미사가 치러진 날 딜리 거리는 나이든 이들부터 유모차 탄 아기들까지, 군중들로 가득했다고. 바티칸의 색깔인 노란색과 흰색 우산을 든 이들이 운집했고, 일부 참석자들은 미사가 시작되기 12시간 전인 새벽 4시부터 기다렸다고 한다. 교황이 도착하니까 "비바 파파 프란체스코"를 외치고, 전통 춤도 추고..

[구정은의 ‘현실지구‘] 리비아의 무덤들, '정의가 없는 평화는 없다'

“타르후나에서 폭력과 인권 침해가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것은,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비아 서부의 타르후나는 수도 트리폴리에서 남동쪽으로 65km 떨어진 인구 15만 명의 소도시다. 시내 한가운데에는 1915년 이탈리아에 맞서 싸운 독립투사 알리 스위단 알하트미의 동상이 서 있다. 알하트미는 1922년 붙잡혀 마을 광장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100년도 더 전에 벌어진 일이라지만 이런 역사적 사건이 후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더 잔혹한 일은, 리비아가 독립 이후 오랜 독재정권에서 벗어나 민주화의 길로 가려고 하는 와중에 벌어졌다. 2011년 ‘아랍의 봄’ 시민혁명과 함께 리비아에서는 내전이 벌어졌고,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쫓겨다니다 처형됐다. 트리폴리를 포..

[구정은의 ‘현실지구‘] 올림픽 난민팀의 태권도 선수들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성대했다. 경기장이 아닌 강변에서 프랑스는 자신들이 세계에 기여했다고 자부하는 문화유산들과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 성소수자와 이주민 인권 등 여러 가치를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선보였다. 나라 이름을 내걸고 벌이는 경쟁 속에 그런 가치들은 그저 볼거리로 끝나버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번 올림픽에서 국가별 대표단과 함께 올림픽 무대에 선 국가 없는 대표단이 있다. 난민 대표단. 이 팀에 속한 복싱 선수 신데 은감바가 처음으로 메달을 확보했다 해서 며칠 새 관심을 끌었다. 지난 5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12개 종목 36명의 선수들이 파리 올림픽에서 ‘난민 대표팀’으로 출전한다고 발표했다. 세계에서 난민 혹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