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92

[기자협회보] 2024년, 미국과 아시아의 선택은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올해 국제 이슈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여파가 큰 사건이 있다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겠지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동에서마저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서 세계는 시끄러웠고, 숱한 이들이 고통을 겪었고, 그 고통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80억명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일어날 일들을 미리 내다보지는 못한다 해도, 11월 5일의 미국 대선을 비롯해 세계에 영향을 미칠 선거 일정이나 기념하고 기록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볼 수는 있지요. 중요한 일정들을 통해 한 해를 얼추 그려볼까요. 먼저 중요한 선거 스케줄이 있습니다. 아시아에 유독 큰 선거가 많습니다. 인구대국들이 줄줄이 선거를 치르는 까닭에, 내년에 한 표를 행사하는 지구 ..

[창비주간논평] 팔레스타인의 비극과 세계 시민의 역할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싸움은 ‘중동 분쟁’ 따위의 모호한 이름으로 불렸다. 그 자체에 프레임이 녹아 있다. 어느 정도는 ‘대등한’ 세력들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슈를 가지고 다투고 있다는 듯이, 그로 인한 난민이나 사망자 수도 전쟁이라 하기엔 아무래도 적다는 듯이 인식을 호도하는 용어이니 말이다. 세계는 그동안 이스라엘이 전투기를 띄우고 미사일을 쏘고 팔레스타인 땅에 탱크를 들여보내도 이스라엘의 침공 혹은 전쟁이라 부르는 대신 양측의 이름을 동시에 붙인 분쟁이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용어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였던 듯싶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공격한다며 레바논을 침공한 2006년, 하마스를 응징한다며 가자지구를 공격하고 국제법상 금지된 백린탄까지 쏘았던 2009..

[기자협회보] 이스라엘 덫에 빠진 미국, '중재자' 나선 중국

2000년대 중반, 이스라엘에서 테러 공격이 일어났습니다. 현장 사진에 무참히 희생된 민간인들 모습이 찍혔는데 공교롭게도 분쟁과 아무 관련 없는 중국인 노동자들이 많아서 놀랐던 적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저임금 노동력으로 활용하며 나름 ‘공생’해온 이스라엘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충원하면서 팔레스타인 쪽에 분리장벽을 세우고 기만적인 공생의 제스처마저 집어치우려 하고 있던 때였지요. 이집트가 아직 호스니 무바라크의 통치를 받던 시절, 홍해에 특별경제무역을 만든다며 중국 톈진 경제특구 운영당국의 도움을 받아 요업공장을 건설하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2011년 ‘아랍의 봄’ 시민혁명 뒤 리비아에서 내전이 일어나자 중국이 전세기를 띄워 수만 명에 이르는 자국민 노동자들을 호송해오던 장면도요. 2016년 시진핑 ..

[기자협회보] 탁신, 훈센, 봉봉… 아시아에 ‘민주주의의 모델’은 없나

합법적인 선거로 선출된 탁신 친나왓 정권이 2006년 축출된 이래로 태국 정치권은 탁신계와 반탁신 세력으로 나뉘어 극심한 대립을 벌였지요. 성공한 기업가 출신이지만 서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탁신은 왕실에도, 군부에도, 기득권 정치엘리트들에게도 눈엣가시였습니다. 군부는 그가 유엔 총회에 간 사이 무혈 쿠데타로 몰아냈죠. 그러나 2008년 선거에서 탁신계가 다시 승리했습니다. 군부와 반탁신계는 탁신을 부패죄로 기소했고, 탁신은 영국으로 망명했습니다. 탁신을 지지하는 시위로 방콕이 마비되자 군부가 무력 진압에 나서 90여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핍박을 했는데도 2011년 선거에서 또 탁신계가 승리했고 탁신의 여동생 잉락이 총리가 됐어요. 2014년 헌재는 직권남용으로 몰고가 잉럭을 쫓아냈고 쿠데타로 군..

[한국언론진흥재단] 국제뉴스, 무엇을 보고 어떻게 쓸 것인가

작년에 언론재단에서 '국제 보도 가이드북'을 만든다고 해서 기고했던 내용입니다. 유튜브 영상으로도 찍었어요. 이 영상과 글은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거지만 뉴스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어떤 기사에 어떤 문제가 있나, 어떤 것이 좋은 보도인가를 판단할 때 참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국제뉴스의 중요성이 저평가되어 있다’, ‘한국 언론은 국제뉴스를 소홀히 다룬다’는 비판들을 많이 합니다. 뉴스의 독자(시청자)의 시각에서 보면 어떨까요. 국제뉴스를 접할 때는 누구든 거리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아무래도 남의 나라 이야기인 탓이 크겠지요.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갈등, 유럽과 러시아의 대립, 아시아 패권 다툼 등 너무 커다란 이야기들이 주로 오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나’와 관련 없는, 먼 세상 큰..

[기자협회보] 맥사(MAXAR), 상업 위성이 보여주는 대결과 갈등의 세계

콰테론 암초. 중국명 화양자오(华阳礁). 필리핀에선 칼데론 리프. 말레이시아 이름은 터룸부 칼더론, 베트남 식으로는 바이처우비엔. 남중국해에 있는 바위의 이름입니다. 면적은 0.22㎢, 섬이라기에도 뭣한 곳을 중국이 매립해 사방이 직선으로 이뤄진 섬으로 만들었습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스프래틀리 군도, 중국명 난샤(南沙) 군도, 베트남명 쯔엉사 군도에 속한 암초랍니다. 남중국해 분쟁의 역사는 꽤 됐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미국이 가세해서 중국과 본격적으로 날을 세우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닙니다. 중국이 이 바다의 바위들에 시설물을 짓기 시작했고 2012년부터 그 사실이 확인되면서 분란이 거세졌습니다. 미국의 한 장성이 만리장성에 빗대 ‘모래 장성(Great Wall of Sa..

[기자협회보] '기후동맹' 요구하는 바이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새 계획을 발표하면서 총 15억 달러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에너지 및 기후에 관한 주요 경제국 포럼(MEF)' 참가국 정상들과 화상회의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브라질의 아마존 숲이 더 베어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 5년간 5억 달러 기금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개발도상국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유엔 녹색기후기금(GCF)에 10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마존 기금에 미국이 돈을 붓겠다고 하니 브라질은 당연히 환영했죠. 브라질의 루이스 이냐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러시아와 중국 편을 드는 듯한 모습을 보여 미국이 격앙됐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는데, 아마존 문제에선 바이든 정부와 룰라 정부..

[바람과 물] 지구를 지키는 여성들

감비아의 사회활동가 이사투 시세이는 1971년 은자우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감비아는 세네갈에 삼면이 둘러싸여 있고 서쪽만 대서양으로 통해 있는 작은 나라다. 우리에겐 낯선, 부국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곳에서도 은자우는 가난한 시골마을이었고 시세이 역시 이웃 여성들처럼 어릴 적 잠깐 학교를 다닌 것 외에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받지 못했다. 하지만 가난하고 개발이 덜 된 마을조차 지구를 휩쓰는 자본주의 상품의 물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상품의 물결은 소비가 끝나고 나면 곧 쓰레기의 물결이 된다.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그 쓰레기들을 치우고 재활용할 능력이 모자란다. 시세이는 1997년 여성들을 모아 은자우에 재활용센터를 만들었다. 왜 쓰레기를 줄여야 하는지, 비닐봉지와 플라스틱이..

[기자협회보] GPT가 말하고 딥플이 옮겨주는 세상

프랑스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 개혁,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고령화와 연금 고민은 프랑스만의 것이 아니죠죠. 세계의 언론들, 전문가들은 이 이슈를 어떻게 다른지 들여다봤습니다. 먼저 구글 영문 뉴스에서 프랑스 시위와 연금을 키워드로 넣어 검색을 하고, 제목을 보며 몇 가지 기사를 골라 읽어볼만한 것들을 클릭합니다. 연금과 관련된 국내 기구들과 연구자들이 프랑스의 사례를 보고 분석해놓은 과거 자료들도 찾아봅니다. 외교부 자료도 나오네요. 둘러보니 프랑스에는 가장 기본이 되는 비기여식 연금(ASPA)이 있고, 그 외에 평생에 걸친 노동기간과 개인 기여분 등을 연계해서 받는 돈이 있습니다. 의무가입해야 하는 개인 연금과 직장(직역)연금, 선택적으로 가입하는 민간 연..

[인권연대] 국가의 잘못, 국가의 역할

택시를 타고 서울 이태원을 지나가는데 극우 시위대가 집회를 하고 있다. 기사 아저씨가 물으신다. “그래서, 누가 잘못한 거예요?” 참사의 원인은 무엇이며 누가 잘못한 것일까. 핼러윈이라고 놀러왔던 사람들? 현장에 배치되지 않은 경찰? 하필이면 빨간색으로 구청장의 소속이 바뀌어 늘 하던 축제 대비도 제대로 못한 용산구?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느닷없이 ‘용와대’로 옮겨가 안전을 놓치게 만든 대통령? 스스로 ‘진보’라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조차 ‘미제 귀신’ 씌운 사람들을 탓하는 걸 봤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놀러왔던 사람들은 잘못이 없다. 아무도 그런 사고가 일어날 거라고, 이태원 골목에서 150여명이 목숨을 잃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테니까. 공교롭게도 사고가 난 그 길은 나도 종종 지나치는 곳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