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한국 사회, 안과 밖

[아프간 인질 피랍사태] 와지리스탄 탈레반 '협상선' 부상

딸기21 2007. 8. 2. 18:29
728x90
노무현 대통령 특사로 해프가니스탄에 파견됐던 백종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1일 파키스탄을 방문, 파키스탄 정부를 상대로 탈레반측과의 협상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아프간과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인 파키스탄을 통해 탈레반 지도자급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특히 파키스탄 북서부 와지리스탄 지역은 사실상 아프간과 파키스탄 공동 탈레반 조직에 의해 통치되는 준(準) 독립국가가 돼 있다. 이 일대 탈레반 조직과 그 지도부 등을 파악하는 것은 아프간 탈레반으로 통하는 유용한 길이 될 수 있다.


'탈레바니스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친(親) 탈레반 무장세력과 부족집단들이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는 곳은 파키스탄 서부의 와지리스탄 지역이다. 이 일대는 부족연합통치지대(FATA)로 공식 설정돼 있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과 탈레반 지도자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 등이 숨어지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프간 토라보라 산지와도 가깝다. 

특히 탈레반과의 연계 속에 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아프간 탈레반과 사실상 일체화돼 있는 와지리스탄 탈레반 조직이다. 이들은 1997년 아프간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뒤 `아프간 이슬람 에미리트(제후국)'을 선포한 것을 본떠 `와지리스탄 이슬람 에미리트(IEW)'를 선포하고 와지리스탄 지역을 준독립국가나 다름없이 통치하고 있다. IEW에 장악된 지역은 사실상 아프간 탈레반ㆍ알카에다 옛 지도부와 파키스탄 탈레반 조직에 의해 통치되고 있어, 현지에서는 `탈레바니스탄(탈레반의 땅)'이라 불릴 정도다.

와지리스탄의 탈레반 지도부

IEW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잘랄루딘 하카니타히르 율다셰프라는 두 군사령관이다. 하카니는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아프간 탈레반 군사조직 지도자. 산악지대 자드란 부족 출신으로 전투를 이끌며 과거 탈레반 정권 각료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었다. 지금은 와지리스탄을 사실상 통치하면서 군사작전은 아들 시라주딘 하카니에게 맡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와 함께 IEW를 이끄는 율다셰프는 우즈베크족 출신으로, `우즈베키스탄 이슬람운동(IMU)'이라는 탈레반 유사 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하카니는 탈레반과 파키스탄의 자생적 무자헤딘(전사) 조직인 `라슈카르-토이바'를 연결하며 `훈련생'들을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율다셰프는 아프간, 파키스탄 북부에 거주하는 우즈베크족 중심의 IMU와 알카에다를 이어주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파키스탄 정부는 통치력 한계

지난해 9월 파키스탄 정부는 IEW와 `와지리스탄 협정'을 맺으면서 ▲남ㆍ북 와지리스탄에서 정부군 기지 포기 ▲북와지리스탄 일대에서 정부군 작전ㆍ정찰 금지 ▲정부군이 압수한 IEW 무기 반환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만든 무자히딘 슈라(전사 평의회)에 의한 자치 보장 ▲`와지리스탄 이슬람 에미리트'라는 호칭 인정 ▲외국인(알카에다를 의미) 거주 인정 ▲정부가 구금 중인 알카에다, 탈레반 전사 130여명 석방 등을 약속했다. 명분은 `정전협정'이었지만 사실상 IEW에 이슬라마바드 정부가 백기를 들고 `탈레반 나라'를 인정해준 셈이다. IEW는 이달초 `붉은 사원(랄 마스지드)' 사태 이후 정전협상마저 폐기하고 정부와의 맞대결을 선포한 바 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슬람 세력을 누를 힘도, 의지도 없는 형편이다. 아프간에서 한국 정부 인질 석방 협상팀이 카불 정부 쪽만 믿다가 성과를 거두지 못했듯, 파키스탄을 통한 루트도 이슬라마바드 중앙정부만 바라봐서는 열기 힘들다. 따라서 인질 협상이 장기화될 경우에 대비해 무샤라프 정부 뿐 아니라 와지리스탄 지역과 탈레반에 정통한 파키스탄 정보국(ISI), 2001년 이전 24년간 사우디아라비아 정보국장을 지내며 알카에다의 탄생에서부터 현재까지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투르키 알 파이잘 미국 주재 사우디 대사 등 다양한 통로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오사마 빈라덴이 산악지대에 풀어둔 것이 화근이었다!"

한국인들이 인질로 잡혀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제거하기 위한 미군 주도 다국적군의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아프간 민간인들의 엄청난 희생 속에 진행되는 전쟁은 그러나 그다지 `성공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2003년 이라크전 이후 아프간에서 조금씩 발을 빼려했던 미군은 다시 진창에 빠진 듯한 형국이다.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 뉴아메리카연구소 선임연구원인 피터 버겐은 자신의 홈페이지(www.peterbergen.com)에 1일 "미국이 아프간에서 저지른 10가지 실수"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컬럼을 올려 눈길을 끌고 있다. 
다음은 버겐이 꼽은 10가지 실수.

▲오사마 빈라덴이 토라보라 산악지대로 도망치게 놓아둔 것. 빈라덴은 2001년 11월 미군 공격이 시작될 무렵 파키스탄에 접경한 토라보라 산악지대로 도망쳤다.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은 빈라덴 수색작전을 한다며 산악지대에 미군 특수부대원 60명만을 들여보냈다. 당시 작전을 상세히 알고 있는 중앙정보국(CIA) 현장 지휘관 개리 번스타인이 병력 증파를 요청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아프간 군대를 육성하는데 치중하는 대신 치안유지 활동을 군벌들에게 맡긴 것.
▲이라크에서 또다시 전쟁을 벌이면서 아프간에 투입돼야 할 시간과 돈, 인력을 이라크로 돌린것, 특히 아프간 전황을 잘 알고 있던 제5특수부대를 이라크로 보낸 것.
▲전후 2년 동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발을 카불에만 묶어둔 것.
▲아편 퇴치에 골몰해 양귀비 재배농가를 적으로 돌려 탈레반에 합류하는 결과만 불렀다.
▲2005년 국방부가 미군 철수 방침을 섣불리 발표, 탈레반의 기세만 올려준 것
▲전후 미국이 아프간에 파병한 평화유지 병력은 2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이 해외에 파병한 평화유지군 중에서 파병대상국 1인당 인구 대비 비율로 봤을 때 가장 작은 규모였다.
▲경제원조도 1인당 기준으로 봤을 때 발칸전쟁 이후 보스니아 지원액의 12분의 1에 그칠만큼 적었다.
▲파키스탄이 알카에다, 탈레반 지도부를 방치하도록 내버려뒀다.
▲전쟁 초기 미군 병사들이 현지 관습을 이해하지 못해 민심을 얻는데 실패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편 수출로 돈을 벌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 탈레반이
무고한 한국인들을 희생시키려 하는 모습을 풍자한 이집트 미들이스트타임스 최근호 만평.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