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앞뒤로 열린 가구

딸기21 2000. 12. 12.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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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가구를 만들었다. 여성잡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홍대앞 '내가 디자인하고 내가 만드는 가구'에 주문을 했는데,
가장 맘에 드는 건 역시나 '내가 디자인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멋지게 폼나는 이쁜 가구는 아니니까
사실 '디자인'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을 떠올리면 안 된다.
그저 집성목을 이리저리 잘라 만든 보통 나무 가구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설계'를 하다보니 재미가 있었다.
내가 중점을 둔 것은 가구를 앞 뒤로 개방하는 것이었는데-
여느 가구처럼 벽에 붙여 세워놓는 것이 아니라
마루 가운데에 놓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높이 150센티, 폭 130센티, 너비 30센티.
맨 아랫칸은 현관 쪽으로 여닫이문을 달았고,
그 위의 두 칸은 마루 쪽으로 책꽂이를 냈다.
맨 위칸은 양쪽을 모두 '개방'했다.
이리 열고 저리 열어야 해서 제법 머리를 썼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난 항상 내가 해놓은 일에 만족을 한다)
물론 값은 좀 센 편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앞뒤를 모두 트이게 놓으려다보니 전체를 나무로 써야 했기 때문이다.
가구값 30만원에 운송비 2만원이 들었다.

기분이 무지하게 좋은 건, 어릴 때부터의 꿈을 이뤘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내가 갖고 있던 꿈이 있다면
우선 요트를 사서 세계일주를 하는 것.
요트로 세계일주를 하는 16살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을 보고 나서 생긴 꿈이었다.
두번째는 뗏목을 타고 페루에서 어딘가(?)로 떠나는 것.
왜 하필 페루냐고?
옛날에, 사람들은 이스터섬의 거석상들을 누가 만들었을까 궁금해했는데,
(물론 아직도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지만)
일군의 학자들이 남미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을 했단다.
그 학자들 중에는 하이에르달이라는 노르웨이 사람이 있었는데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고대에
페루에서 이스터섬까지 항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뒤집기 위해
직접 시도를 했다.
페루의 발삼나무로 뗏목을 만들되
철사나 못 같은 철제를 하나도 안 쓰고 목재만 썼다고 한다.
그 뗏목을 타고 이스터섬에 가는데 성공했다는 실화가 있다.
그래서 나도 페루에 가서 뗏목을 만들어서,
이스터섬보다 더 먼 곳까지 항해를 하고 싶었다.

그 다음은 고고학자가 되는 거였다.
투탄카멘 무덤을 발굴한 하워드 카터 같은 사람이 되어서
엄청난 유적을 발견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고고학과에 진학했는데
엉뚱하게도 난 지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기자'가 돼 있다.

그 외에도 자잘한 많은 꿈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내가 직접 가구를 설계해서 만드는 거였다.
살림에 대해서는 관심이라고는 없었던 주제에
가구만큼은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이제 그 꿈을 이뤘다.
첫번째 꿈은 언제 이뤄질지 모르고,
두번째 꿈은 난이도가 더 높으니 과연 가능할지조차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개라도 이룬 게 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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