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금융위기 이해하기

딸기21 2008. 9. 19. 10:49
728x90
금융위기, 금융위기 하는데 대체 왜 저모양 저꼴이 됐는지, 경제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요. 한번 차근차근 볼까요. 소로스의 책과 외신기사들을 참고해서, 지금까지 제가 나름으로 이해한 수준에서 정리를 해볼께요.


# ‘시장’의 위기, ‘미국’의 위기 

우선 지금 현재 어떤 상황인지부터.

미 금융당국이 파산 위기에 몰린 보험회사 AIG를 살리기로 결정했지만 시장의 불안은 오히려 가중되는 분위기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신뢰의 위기’에 있기 때문에 개별 기업에 대한 구제조치로 시장 시스템 전체를 구해내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금융자본주의의 축인 ‘자유시장’과 그 뒷받침이 됐던 ‘미국’ 자체가 불신의 대상이 된 상황이라는 겁니다.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한지 사흘째인 17일, AIG에 이어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의 주가도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AP통신이 보도했습니다. 기업어음(CP)에 투자했던 머니마켓펀드(MMF)까지 휘청이기 시작했다는군요.
채권에 주로 투자하는 MMF는 가장 안전한 투자대상으로 여겨져왔는데, 이것마저 안정성을 의심받는 상황이 된 거지요. (저도 외환은행에 소액;;의 MMF 계좌를 하나 갖고 있는데.... 이거마저 날아가면 어쩌지요)

미 재무부가 AIG 등 부실기업 구제조치를 잇달아 내놓자 재무부 채권(TB) 수익률도 하락했습니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동안 TB는 위험성이 없는 채권으로 간주돼, 다른 나라의 채권들이 TB 금리에 맞춰 가산금리를 정하고 있었습니다. TB의 불안은 자칫 각국 채권시장의 연쇄적인 불안정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군요.

‘시장 책임론’에서 ‘대마불사론’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미국 정부의 일관성 없는 구제금융은 시장의 혼란과 불신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에 과연 시장을 살릴 ‘실탄’이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됩니다. CBS방송은 “이달말로 회계연도가 끝나는 미 재정적자는 4000억달러로 역대 최대 수준”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당국이 AIG에 850억달러를 긴급대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과연 재원을 갖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고 방송은 지적했습니다.
재무부는 17일 35일 만기 국채 400억달러 어치를 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재무부는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자금이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애써 강조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금융시장의 거품 축적과정 

금융시장의 위기를 불러온 것은 역설적이지만 시장 그 자체입니다. 

2000년대 이후 미국 경제는 신용 부실과 리스크를 쌓아올리며 거품을 키워온 과정이었습니다. 출발점은 1990년대 정보통신(IT)경제 거품이 빠진 뒤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몰린 것이었다고 합니다.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끼면서 2000~05년 미국 전체 주택 시가총액은 50%가 뛰어올랐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로의 합병이 결정된 메릴린치 보고서에 따르면 거품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5년 상반기에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50%가 주택시장에서 창출됐을 정도였습니다. 

이 돈의 대부분은 ‘대출’을 통해 유통됐습니다(집값이 부풀려졌으니 그걸 담보로 대출받을 수 있는 돈도 부풀려졌지요).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경제학교수는 “1997~2006년 10년 동안 주택담보대출을 통한 유동성 흐름은 9조 달러에 이르렀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실물경제의 성장은 받쳐주지 못했습니다. 임금상승이 안 따르고 대출이 시들해질 조짐을 보이자 주택시장과 월가의 합작품인 ‘변동금리모기지’(ARM)라는 것이 탄생했습니다. 대출자들이 2년간 낮은 금리를 누린 뒤 다른 대출로 갈아타게 만든 이 상품을 이용해 은행들은 수수료를 챙겼고,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신용등급을 웃도는 저금리 혜택을 봤습니다. 
리스크가 큰 대출은 금리가 높아야 정상인데, 신용시장의 기본 룰이 깨진 겁니다. 이 과정을 거쳐 부동산 리스크는 금융시장으로 옮겨갔습니다.

위기의 탑을 쌓아올린 두 번째 단계는 이른바 ‘증권화’ 과정이라고 합니다. 

금융기관들은 신용 위험도를 낮추기는커녕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이란 것을 만들어 부실대출을 제도화했습니다. 증빙서류조차 필요없는 ‘닌자(no income no job no asset) 대출’까지 등장했었지요. 

그러다가 신용불안이 축적되자 은행들은 리스크가 높은 대출채권을 ‘부채담보부증권(CDO)’이라는 상품으로 만들어 팔았습니다. 은행의 채권이 ‘얼마나 부실한가’를 놓고 투기하는 시장이 생겨난 겁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CDO’와 CDO’’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이 시장들이 애초의 부동산 대출시장보다 몇배나 커지는 기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 동안 금융회사들은 수수료를 챙겼습니다. 투자가 조지 소로스는 “리스크는 남에게 떠넘기고 눈앞의 이득만 챙기려는 얄팍함이 비즈니스의 기강과 신뢰를 흔들었다”고 지적합니다.

증권화 광풍은 신용디폴트스와프(CDS)로 이어지면서 대규모 파생증권시장을 창출했습니다. 당초의 주택시장 채권 규모를 훨씬 웃도는 희한한 투기시장이 태어난 겁니다.
원래 CDS는 90년대 유럽에서 은행들 간 채권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서로 교차 보증하는 포트폴리오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투자은행들과 헤지펀드의 투기상품으로 변질됐습니다. CDS 발행규모는 총 42조6000억달러로 추정됩니다. 미국의 연간 GDP가 13조8000억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실물 없는 이 사상누각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지요.


# 시장지상주의 못 벗어나면 붕괴 계속될 것 

지난해 6월 미국 5위 투자은행이던 베어스턴스가 모기지 헤지펀드의 마진콜(금융계약을 이행하기 위한 보증금인 증거금을 확충하라는 요구)을 감당하지 못해 부도를 냈습니다.
투자은행들은 CDO 가치가 떨어지자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라는 것을 발행해 현금을 확보하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이미 부동산대출의 신용이 무너진 상태여서 대출채권과 관련된 돈줄은 모조리 말라갔습니다.
그런데도 조지 W 부시대통령은 “펀더멘틀은 괜찮다”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데에만 집중했습니다. 딱 누구누구를 보는 것 같습니다.
결과는 금융회사들의 연쇄 도산이었습니다. 결국 대출 모기지에 투자하고 모기지증권 보장보험을 판매한 보험회사 AIG까지 쓰러질 지경이 됐습니다.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가장 안정적이라던 채권과 MMF마저 못 믿게 된다면 금융시장은 어디로 갈까요. 거품은 계속 꺼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투기가 판치면서 작은 종잣돈을 부풀려 투기하는 ‘레버리지’ 이용이 일반화된 탓도 있습니다. CDS의 경우 1.5%의 레버리지만 갖고도 거래가 가능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꺼질 거품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위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미 의회에서는 부실채권을 인수하기 위한 정리신탁공사(RTC) 같은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기구를 만들어 구제의 기준을 정하면 시장의 불안과 비판이 줄어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부실 채권이 파생금융상품으로 이어져 있는 탓에, 부실의 규모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합니다. 소액투자자들의 불안 막아 소비위축 등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치도 필요하다는군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CNN 인터넷판 기고에서 금융상품심의위원회나 금융시스템안정위원회 등을 만들어 적절한 규제를 가하고 시장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728x90